뒷모습 바라보기
우리는 대학교 새내기였고, 그 날은 어떻게 알게 된지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학교 남자애가 동아리에서 일일찻집을 연다고 나와 친한 무리를 초대한 날이었다. 신촌 바닥에 일일찻집 장소 가는 길을 표시한 형광색 색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시기였다. 장소는 옛날 주점 콘셉트의 술집이었다. 복조리니 키니 하는 것들이 소품으로 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왜 어렴풋이냐면 그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한창 우리는 매화수에 꽂혀있었다. 하루는 셋이서 기숙사에서 몰래 매화수를 먹기로 결의하기로 하고, 반입이 금지된 술을 들여와 진탕 마시고 완전히 취해버린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 중 한 명은 심지어 기숙사생도 아니어서, 혹여 취기에 고래고래 노래 불러 사감선생님한테 들키기라도 할까 봐 걱정했던 기억이, 마찬가지로 어렴풋이 난다. 아무튼 이렇게 사랑받았던 매화수를 마지막으로 즐긴 것이 바로 이 일일찻집이었던 것 같다. 왜냐면 그 다음 날 숙취가 너무 심했었기에.
나는 그날 정말 거나하게 취했다. 애석하게도 그땐 취하면 우는 주사에서 아직 졸업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나는 아마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러다 자리는 파했을 것이고, 하필 왜인지 나는 힐을 신고 있었기에 비틀거리면서 나서려고 했을 것이다.
그때였다.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워졌고, 나는 그 동안 내가 섭취한 것들을 내보내게 되었다. 그것도 선 채로. 그런데 내 친구 S가 글쎄, 그걸 두 손을 모아 받았다고 한다. 두 손을... 내가 서있던 상황이니 사실 그렇게라도 막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상황이 되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S의 어린 딸도 아닌데 나의 그것을 손으로 받을 수 있었을까... 지금도 미스테리하다.
나는 이 충격적인 사실을 다음 날 S로부터 직접 들었는데, S는 무용담을 먼저 들려주지도 않았고 내가 꼬치꼬치 캐묻자 답해주었다. 그 말간 웃는 얼굴로.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 물었더니, 안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했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S는 그런 아이였다. 비위가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종종 남들이 마음에 거리끼어 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곤 했다. 그것이 훗날 우리 사이에 거리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S가 종종 대단해보이게 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이 오래된 기억을 불러낸 건, 밤 9시가 넘어 길바닥에 앉아 있는 한 여자 분이었다. 통화하며 산책을 하던 길이었다. 처음엔 큰 까만 봉지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긴머리를 늘어뜨린 채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는 사람이었다. 잠시 떨어져 지켜보다 다가가,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위험해요, 하니, 뭐라뭐라 웅얼웅얼 하셨다. 인사불성이었다. 숙취해소제를 하나 사와서 먹여보았지만 여전했고, 겨우 대략의 주소를 알게 되어 콜택시를 불렀다. 마침 가까운 거리라 동행하기로 하여 무사히 도착해 내렸는데, 아마 그때 그녀도 속이 안 좋았나보다. 주저앉은 채로 잠시 있다가 실컷 내보내기 시작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러고는 적당히 실랑이를 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걸어가주시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부축했다. 조금은 정신이 든 건지, 원래 술 많이 마시면 이렇게 아파요, 어쩌다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이렇게 많이 마시고 밖에 앉아있음 안 돼요, 재잘거리던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말 좀 하지 마요오오." 약간 짜증이 섞였던 것 같기도 하다. 머쓱.
말없이 잠시간 걸으니 드디어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꽤 으슥한 골목에 집이 있어서 이왕 마음 쓴 거 끝까지 마무리하길 잘했다며, 혼자 으쓱해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 길이었다. 나의 영웅 S가 생각난 것이. 누군가 속을 게워내는 걸 오래 지켜본 것이 아주 오랜만이었으므로.
빚을 이렇게 갚는 건가, 싶었다.
이렇게 인사불성인데 그녀에겐 아무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취한 채로 "다들 갔어요?"라고 내게 묻기도 했다. 겨우 비밀번호를 캐어 열어본 카톡에서도 연락할 만한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의 삶에 행운이 함께하길 기원해보려는데, "말 좀 하지 마요."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또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