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바라보기
침체된 마음을 이끌고 사월 초파일, 사당역으로 향했다. 사당역 근처 절에 가고 등산을 좀 하자고 친구 둘과 약속을 한 터였다. 석가탄신일이니까 무조건 절에 가야지!, 느낌은 아니었다. 셋 모두 딱히 불자인 것도 아니다. 절이나 등산을 좋아하는 성향이고, 또 한 분은 소원 빌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재계약이 되지 않고, 그렇지만 당장 돌아오는 주에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고, 또 개인사로 인해 마음은 어지럽고... 여러모로 마음이 부산스러웠기에 절에 가는 건 좋은 결정이었다. 가파른 오르막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환기가 되었다. 역시 우울엔 운동만 한 게 없다. 푸른 나무와 든든한 친구들까지 있으니 서서히 몸도 가뿐해졌다.
절에 다다르니 보살님들께서 떡을 나눠주고 계셨다. 분명 맛있는 걸로 소문난 인근 떡집의 떡일 것이다. 중노년 여성 분들의 떡집 픽은 무조건 믿고 들어간다. 잘 봉해진 흰색 절편이 담긴 위생 봉투 밖으로 고소한 냄새가 새어나왔다. 따끈한 걸 손으로 쥐니 기분이 좋았다. 들어가니 사람이 꽤나 많았다. 석가탄신일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사람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애써 집중하며 진행 멘트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합장을 한 채로.
그때였다. 피아노 반주가 들려오더니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앗...? 분명 교회에서 들릴 법한 ‘찬송가st’였다. 절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스타일이었다. 석가탄신일에 여러 절에 가 보았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불자 분들은 지퍼로 찍 돌려 여는 가사집을 펼쳐 노래를 따라부르셨다. 불경도 아니고 우리말 가사였다. 불교방송을 들을 때에 종종 석가모니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접하긴 했지만, 이런 반쯤 성악톤의 찬송가 느낌은 아니었다. 요즘은 절에서도 이렇구나...신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또다른 노래로 놀랄 줄은 몰랐다. 주지스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한 말씀 하는 차례인 것 같은데, 대뜸 “여러분 나훈아 아시지요"라고 말하셨다. 귀를 의심한 것도 잠시, 스님께서는 나훈아 노래를 부르셨다. 그것도 구성지게. 앵콜(?)로 진성의 ‘안동역에서’도 부르셨다. 좀 더 대중적인 느낌으로 불자 분들과 소통하는구나, 우린 서로 눈을 마주쳐 놀라움을 공유하고는 빠르게 수긍하려 했다. 주변 분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한 친구는 기와에 소원도 쓰고, 산신각에서 절도 하고, 나름 할 거 다하고 우린 움직이기로 했다. 둘렛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너른 공터가 나왔다. 우린 받은 절편을 꺼내고, 집에서 싸온 과일, 초콜릿 따위를 나눠먹었다. BGM으로 절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연주가 들려왔다. 꽹과리 같은 걸 치는 건지 꽤나 격렬한 사운드였다. 절 강아지가 소리에 맞춰 얼마간 ‘월!’, ‘월!’ 짖더니 차차 잦아들었다. 그 즈음 우리도 둘렛길을 따라 천천히 하산했다.
세 사람은 우연찮게 다 경상 피플인데, 경상 사람들에겐 등산 필수 코스가 있는 법이다. 등산 열심히 하고 땀 흘린 후에, 하산하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파전, 도토리묵에 동동주나 막걸리를 걸치는 것... 평상이 있고, 백숙도 팔고, 단체 등산객들은 이미 취해버려 거친 경상도 사투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그런 풍경이 우리에겐 익숙했다. 애초에 약속을 할 때에도 하산 하고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합의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내려오며 열심히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등산로가 끝나는 위치엔 식당들이 아니라 아파트만 있을 뿐이었다. 한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서울이 땅을 그냥 내버려둘리가 없지.”
다행히 역 근처로 가니 빈대떡집이 있었다. 정오도 안 된 시각에 사장님은 감사하게도 우리를 받아주셨고, 모듬전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지평막걸리를 곁들어 아주 맛있게 먹었다. 오전 운동도 꽤 했고, 새로운 경험도 함께하고,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 좋은 석가탄신일이었다. 다 먹고 나오며 내년에도 이 코스로 오자고 얘기를 하니, 안에서 사장님이 말하신다. “내년에 오면 어떡해, 금방 또 와야지!” 맞다, 맞는 말이다.
2022.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