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까로 말하기

by 희담

올해는 개학하기 전부터 '나만의 학급 운영 철학을 세워야겠다!'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선생님들마다 학급 운영 철학이 다 다르겠지만 결국 그 반에서 무엇인가 안 되었을 때 교사가 제일 분노하는 바로 그 포인트가 학급 운영 철학과 맞닿아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예의 없는 학생들에게 가장 화가 나던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학급 운영의 가장 중심에 '예의'라는 가치를 두었고, 첫날에 아이들에게도 신신당부를 했다.


"선생님이 예전에 가르친 제자가 있었어. 근데 선생님이랑 대화하는 도중에 이런 말을 했어. '제가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겠죠?' 너희가 듣기엔 이 말이 어때?"


그 말을 인용할 때부터 어디선가 '헉'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예의 없어요."

"그치? 그런데 놀랍게도 그 친구는 아주 순하고 착한 아이였단다.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뭘까?"

"..."

"어떻게 말하는 게 예의 있게 말 하는 건지 몰라서 그런 거야. 선생님은 너희한테 1년 동안 예의를 가르쳐줄 거야. 잘 배워보자."

"네!"


이렇게 '1년 내내 나는 너희 잡도리를 할 것이고 그건 다 배움이니라~' 하는 밑밥을 깔아두었다. 그런 예의 교육의 일환으로 애들한테 강조한 것이 바로 '다나까' 말투 사용하기이다. 사실 아이들 말의 어미에 대해서 여지껏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같은 학년을 맡으신 옆반 선생님께서 이런 방법을 쓰면 좋다고 하셔서 나도 냉큼 도입해봤다.


2주 정도 교실 살이를 해 본 결과 칠십 퍼센트 정도는 다나까 말투 쓰기가 잘 이루어지고 있고, 아이들이 쓰는 다나까 말투에는 매우 귀여운 데가 있다.




우리 반 재용이는 좀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의 전형인데 첫날 공책 검사를 할 때부터 알았다. 본인만의 독창적인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구사하는 친구란 걸... 맞는 글자가 없다. 수학도 힘들어 한다. 곱셈 나눗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할 판이라 학원은 다니냐 물어봤더니 놀랍게도 수학 학원에서는 선행 학습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아무튼 이런 재용이에게도 뛰어난 장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선생님이 한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르는 우직함이 있다는 점이다. 첫 날에 아침 시간은 무조건 독서를 해야 한다, 어디 가면 선생님께 꼭 말씀드려야 한다! 고 이야기 했더니 그 다음 날부터 매번 아침이 되면 나한테 와서 이렇게 물어본다.


"선생님 도서관 다녀와도 됩니까?"


멀뚱멀뚱한 얼굴로 그렇게 물어보는데, 도서관이나 화장실 갈 때 말 안 하고 그냥 다녀오는 아이들이 더 많았어서 그런지 그 우직함이 무척이나 기특하게 느껴졌다. 애들 앞에서 칭찬도 해줬다.


"얘들아. 우리 반 아침 시간에 어딜 가더라도 재용이는 꼭 정중하게 물어보고 간다? 너희들도 이제부터 물어보고 다녀라."

"네~"


그랬더니 다음 날부터 선생님 어디어디 다녀와도 됩니까 질문 공세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 그 발언을 좀 후회회 중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선생님 뭐뭐 해도 됩니까, 다녀와도 됩니까 물어보는 걸 보면 꽤나 귀엽다.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말하기 전부터 긴장해하는 게 티 나기도 한다.




개학한 지 2주 정도 지나 이제 애들도 내가 좀 편하게 느껴졌는지 때때로 먼저 말을 걸어 올 때가 있는데, 이때도 다나까 말투를 쓴다. 체육 시간에 피구를 아주 감질나게 하고 교실로 올라오려는 때였다. 줄을 맞춰 세우는데 맨앞에 선 은정이가 물었다.


"선생님"

"응?"

"선생님도 어렸을 때 피구 많이 하셨습니까?"

"어 많이 했지~"

"아~"


많이 했다는 그 말에 부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은정이는 이 다나까 말투를 어찌나 잘 지키는지 쉬는 시간에 안 물어봐도 될 텐데도 늘 화장질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 온다.




교과 수업에 들어가면서 슬슬 우리 반 똑순이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 중 가장 다나까를 잘 지키는 친구는 서윤이다. 서윤이는 전형적인 선생님 바라기 타입의 모범생이다. 첫 주에는 급식 먹고 교실 올라가는 계단에서 마주쳐서 같이 교실로 올라갈 일이 있었다.


"선생님 아까 제가 급식실에서 만난 선생님 있잖아요."

"응."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에요. 엄청 좋았어요."

"그랬구나."

"아 근데 지금은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그래? 고마워~!"


3월 첫 주에 벌써 교사와의 단독 스몰톡(?)을 시도해볼 정도로 붙임성이 있는 친구인데 이제는 완전히 다나까 말투를 장착했다. 오늘 점심 시간에 갑자기 눈이 와서 애들이 부쩍 추워했는데 체육복 차림인 나한테 서윤이가 그랬다.


"선생님 바람막이 부럽습니다~"

"에구.. 선생님도 춥다.."


어찌나 잘 지키는지 모둠 활동할 때 모둠원들한테도 잘 쓴다. 사실 애들끼리 존칭어 쓰라고 해도 안 쓰는 애들이 많아서 별로 기대 안 했는데 그렇게 쓰는 애들을 보면 너무 귀엽고 예쁘다.




물론 어색해하는 애들도 있고 잘 안 되는 애들도 있다. 준호는 까무잡잡하고 운동 좋아하는 남자앤데 생각하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나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친구다. 준호는 아직 내가 낯선지 나한테 와서 뭐 물어볼 때면 되게 조심스럽다.


"선생님... 체육 시간인데 까먹고 크록스를 신고 왔습니다... 오늘만 실내화 신고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다음부턴 까먹지 마라~"


한번은 나에게 빅웃음을 준 적이 있었는데, 첫 주 점심 시간이었다. 우리 반 점심 시간 인사는 '맛있게 드십시오'다. 식판 들고 자기 자리 가면서 나한테 각자 인사를 해야 한다. (처음 며칠은 인사를 까먹었다는 걸 인지하고 가던 길을 멈춰서서 5초 정도 로딩이 걸리거나, 자리로 갔다가 다시 와서 인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동하면서 멈추지 못 하고 인사를 해야 하니 마음이 조급했나 보다. 걸어오면서부터 이미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준호가 내 앞에서 좀 고민하더니


"잘 먹으십시다."


같은 이상한 인삿말을 이상한 표정과 함께 던지고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표정부터가 이미 너무 당황 + 머쓱 + 자기도 웃김이라 그게 너무 웃겼다. 아이들의 이런 주옥 같은 말실수는 내 웃음 포인트다.


그러나 이 정도면 양반이요 그 중에서도 상 양반이고, 성격 자체가 불안이 높아서 다나까는 고사하고 말끝을 매번 흐리는 친구나 말투 자체가 끼가 넘쳐서 '요'체를 버리지 못 하는 친구(선생님 맛있게 드쎄용~ 하고 급식 먹는 친구) 등 다나까가 거의 안 되는 아이도 있다. 그럴 때면 말투 교정을 해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냥 대화 내용에 집중하려고 한다. 애들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겠거니 하고 말이다.




올해 별 생각 없이 해 본 시도였지만 다나까 말투가 주는 이점이 많은 것 같다. 써 보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고, 나에게도 색다르고 재미있다. 애들이랑 벌써부터 친해지고 싶고 농담 따먹고 싶은 위험한(?) 마음이 앞서는데 다나까가 거리감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다행인 일. 앞으로 1년 동안 '예의 장착'을 꾸준히 강조해서 이 건강한 거리감(?)을 잘 유지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학 주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