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은 흔히들 고학년이라 하지만 3월이면 아직 4학년 같은 느낌이 있어 귀엽다. 특히 올해는 아이들을 잘 만난 건지, 아직 학기 초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3월이 지난 지금 보면 우리 반 아이들 참 귀엽다. 요 정도 시간 지났으면 으레 생기겠거니 하는 다툼, 고자질 등도 0건. 어떤 모습들이 귀여웠지? 되돌아보며 아이들과 함께 복닥거렸던 순간들을 기록해 본다.
5학년 사회는 1단원부터 국토의 영역과 위도와 경도 등 어려운 내용이 나온다. 위도와 경도를 알려주기 위해 지구본과 나라 찾기 퀴즈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좀 이해 못 해도 괜찮아, 하는 각오까지 마친 후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수업을 해보니 내가 각오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대부분이 이해하고 몇몇이 이해를 못 한 게아니라, 대부분이 이래흘 못 하고 몇몇이 이해를 했다. 내 수업은 망했다.
결국 한 사람, 두 사람 붙잡고 지구본에 손가락으로 표시해가며 가르쳐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5분짜리 1대 1 수업을 스무 번쯤 한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탈탈 털리고 나도 탈탈 털린 사회 시간.. 결국 그냥 6학년 때 위도와 경도 다시 나오니까 지금 맛보기한 거라고 하자~ 하고 마무리했다.
그러고 다음 시간은 원래 창체 수업으로 표준화검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 애들 검사 시켜놓고 한숨 좀 돌려야겠다~' 해서 시험지를 보니까 문항이 115개.. 게다가 컴싸로 OMR을 체크해야 하는, 설명할 것 투성이인 너무너무 귀찮은 시험지였다.
'아니 수요일 마지막 5교시에 알림장 쓰고 손도 씻기려면.. 이거 절대 시간 안에 못 하겠는 걸..?' 싶었다. 안 되겠다, 오늘 나도 너무 힘들다 싶어서 쉬는 시간 끝나고 표준화검사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그랬다.
"얘들아.. 너희 사회 시간에 머리 쓰느라 힘들었지?"
"네!"
"(민승이) 선생니임.. 위도와 경도 환청이 들려요.."
"에구구.. 힘들었겠네. 우리 5교시 원래 표준화 검사해야 하는데, 너희 지금 상태 어때. 괜찮니?"
"네, 괜찮아요~~"
몇몇 착한 애들이 선생님 마음 쓰일까 웃으며 괜찮아요~ 한다. 그런데 우리 반 똘똘이 남부반장 도윤이 표정이 심상치 않다.
"도율아 표정이 왜 그래. 괜찮아?"
"아니요, 저 지금 진짜 안 괜찮아요."
괜히 반항하겠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진지한 태도로 '지금 괜찮지 않음'을 어필하는 도윤이에게 할 말이 없어졌다. 이런.. 내가 애들을 너무 혹사시켰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원하던 답이 나와서 다행이었다.
"그래. 아유 얘들아. 오늘 고생했는데 우리 5교시는 그냥 나가서 놀까? 머리도 식힐 겸?"
"우와!! 네!!"
"다른 반 공부하니까 조용~히 나가자. 우리 나가는 줄도 모르게."
"네!!"
그러고 그 날은 한 20분 정도 밖에 나가 아이들을 놀렸다. 날씨도 좋고, 운동장에 사람도 없고, 마침 수요일 5교시여서 아이들 놀기에 딱이었다. 애들 노는 거 구경하면서 나도 한 숨 돌리고. 고작 운동장으로 나온 것뿐인데 애들 얼굴 표정부타가 다르다.
노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별 것도 없다. 시소 한 번 탔다가, 구름사다리 한 번 올라갔다가, 또 내려왔다가, 경찰과 도둑 한 판씩 하는 게 놀이 레파토리의 전부다. 그런데도 애들 얼굴에 그늘이 없고 웃음이 가득하다. 사회 수업할 때 도대체 선생님이 불러주는 숫자들, 동경이니 서경이니 북위니 남위니 하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 몰라 씨름하던 얼굴들은 어디로 가고 씻은 듯이 말끔한 얼굴로 뛰어 노는 것이다. 보고 있는 나도 기분이 참 좋았다. 표준화 검사 했으면 아마 나도 컴싸로 애들 이름 표기시키는 단계부터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한가득이었을 거다.
아이들도 이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지, 학급 회의할 때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밖에 나가 논 것을 많이 이야기했다. 사실 이때 한번 놀게 해주고 이후로는 진도에 급급해서 수업만 나가고 있었는데, 쓰다 보니 다시 아이들에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줘야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 반 재용이는 많은 과목에서 부진이고 특히 수학과 국어를 힘들어 해서 내가 수업 시간에 개별 지도를 많이 하는 학생이다. 그런 재용이에게 놀라운 능력이 있었는데 바로 태블릿 PC를 귀신 같이 다룰 줄 안다는 점이었다.
학기 초에 1인 1역을 정하면서 재용이가 태블릿 관리자로 임명이 되었다. 귀찮아서 태블릿 쓰는 수업을 계속 피하다가 어느 날 태블릿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2시간을 잡아놨다. 그날 아침에 재용이한테 일렀다.
"재용아 이제 너의 역할을 다 할 때가 왔다. 저기 태블릿 통 보이지? 안에 먼지 삭삭 닦아내고 애들 이름표 붙여서 정비하자."
"네."
아침 시간에 재용이는 꼼꼼하게 먼지포로 태블릿 통 내부를 닦고, 케이블과 이름표를 착실히 정비했다. 그리고 대망의 태블릿 수업 시간. 이것저것 설명을 하고 아이들에게 하라고 시키는데, 당연히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가 빗발쳤다.
"안 되는 사람 가지고 나오세요!"
"선생님, 이거 안 돼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나와서 따로 따로 봐주고 있는데, 처음이라 설정해야 할 것이 많았다. 크롬을 기본 브라우저로 설정해야 하는데 나도 방법을 몰라서 컴퓨터로 막 찾아보고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가까이서 재용이가,
"선생님 저 그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냈어요."
"뭐, 정말?!"
"네!"
"우와. 재용아 너 벌써 다 끝났어? 좋아, 이제 덜 한 친구들 좀 도와 줘."
"네!"
그러고 재용이는 헤매는 친구들을 찾아 척척 해야할 것들을 알려주고 구글 계정도 연결시켜 주고 내 역할을 많은 부분 도와주었다. 마지막에 태블릿 케이블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얘들아, 이름에 적힌 대로 태블릿 정리해서 넣고 재용이가 마지막에 케이블 정리하렴."
"네~"
그런데 태블릿 쓰는 게 처음이라 애들이 자기 이름 적힌 데에 제대로 넣지 않아 주인을 모르는 태블릿이 몇 대가 생겨버렸다. 그걸 알아내려면 하나 하나 다시 전원을 켜서 구글 계정에 들어가고, 계정 아이디를 통해 번호를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냥 재용이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에구 재용아. 얘네들은 누구 건지 모르겠다. 밥 먹고 와서 점심 시간에 구글 계정 다 확인한 다음에 주인 찾아서 정리해 줘~"
"네."
'아무리 자신이 맡은 역할이라지만 오늘 너무 많은 일을 척척 해주는데?'
재용이가 참을 수 없이 대견했다. 어떻게 칭찬해줄까 하다가 애들 손 씻으라고 화장실에 보내놓은 틈에 후다닥 재용이를 불렀다.
"재용아, 자, 이거 얼른 주머니에 넣어. 초콜릿이야."
"(눈이 동그래지며) 네!"
"선생님이 오늘 고마워서 주는 거야. 수고했다. 자, 모르는 척 해."
모르는 척 하랬더니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는 재용이의 얼굴이, 만면에 웃음이다. 이 녀석이 비밀로 하라니까 얼굴로 다 티를 낸다. 손을 씻고 들어오던 친구들이 재용이를 발견했다.
"너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어?"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어엉? 아니?"
맨날 수학 시간에 선생님한테 이해했냐는 질문만 수십 번 받던, 받아쓰기 10개 치면 1개 맞거나 빵점 맞던 재용이에게 전자기기를 이렇게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이 있었을 줄이야. 재용이의 칭찬할 점을 찾아서 나도 기분이 좋고, 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재용이도 기분이 좋았던 날.
그러고 당연히, 점심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태블릿들은 말끔하게 주인을 찾아 자기 자리에 정리되어 있었다. 재용아 고맙다!
우리 학교는 급식실이 협소해서 그때 그때 자리가 비는 곳에 앉아야 하는데 그래서 매일 같이 먹는 학생들이 바뀐다. 나는 교직원 칸에서 따로 먹기를 선호하지만 가끔 아이들과 앉아서 먹을 때가 있는데, 은정이와 앉을 때면 은정이가 종종 스몰톡을 걸어온다.
"에구 얘들아. 오늘은 선생님이랑 같이 먹어야 할 것 같다~ 맛있게 먹자!"
"아 좋죠~"
그러고 밥을 먹는데,
"선생님."
"응?"
"(내 생선까스 두 개를 보며) 예전부터 궁금했는데요, 왜 선생님들만 맛있는 거 나오면 두 개씩 받아요?"
"선생님은 어른이잖아~ 그래서 너희보다 많이 먹는 거야."
"(납득 못한 표정으로) 아~"
"그리고 있잖아. 너희는 이거 공짜로 먹지?"
"네."
"선생님들은 돈 내고 먹는다.."
"아하!! 이제 알겠어요 선생님. 이해했어요."
어린아이들도 돈의 논리에는 빠삭하다. 돈 냈으니 많이 먹는 거 오케이,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다시 밥을 먹는다.
이 다음 날에는 은정이와 서윤이가 내 앞에 나란히 앉았다. 육개장이 국으로 나온 날이었는데, 둘이 어쩌다가 국밥 이야기로 흘렀나 보다. 나한테 '선생님도 어릴 때 국밥 드셔보셨나'. '맛있으셨나' 이런 저런 걸 물어보다가 자기들끼리 국밥 먹은 이야기를 나눈다.
서윤이가 그랬다.
"은정아 나는 국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국만 먹는다? 그럼 국밥이 아닌데 말이야."
"아 그래? 나는 다 먹어."
"오 그렇구나."
"어. 그리고 있잖아, 다대기랑 새우젓 만약에 같이 있잖아? 그럼 나는 무조~건 새우젓이야."
"우와.. 너 되게 어른처럼 말한다~"
"(듣고 있는 선생님 웃참..)"
이렇게 아이들 옆에 있으면 정말이지 귀엽고 웃긴 순간들이 많다. 내가 체육 시간에 모이자~ 라고 이야기하면 "무이자~ 할부" 하고 드립치는 민승이, 작년 담임선생님께서 숏컷이셔서 언니가 계시다는 말씀하시기 전까지 여자인지 몰랐다던 서윤이 등등.
지금은 이렇게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들도 분명 나중에 11월, 12월이 되면 6학년처럼 변하리라는 것을 안다.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겠지만 눈을 빛내며 호기심을 품던 아이가 무기력해지고 '왜요 선생님 뭐요' 하는 태도를 장착(?)하기도 하는 순간을 보면 마음이 착잡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작년 5학년 전담을 하면서 학기 말로 갈수록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어쩌겠나. 그럴수록 학기 초에 이렇게 귀엽고 예쁜 순간들을 잘 모아뒀다가, 힘들 때마다 꺼내 읽으며 또 복닥복닥 살아갈 힘을 얻는 수밖에.
무사하고 평온하게 지나간 3월에 감사하며,
4월은 아이들과 봄을 만끽하고 더 많이 웃는 시간들로 보내야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