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부터 지금까지 학생 상담을 조금씩 해오고 있다. 하루에 두 명, 이십 분 정도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옆반 선생님은 '엄마 아빠 얼마나 자주 싸워?'와 같은 아이들 삶과 맞닿아 있는 질문을 하신다던데, 나는 그렇게 속 깊은 대화를 이끌어나갈 자신도, 연륜(?)도 없어서 그냥 질의응답하듯이 이것저것 물어보며 상담을 진행 중이다.
그 중 아이들에게 빼먹지 않고 하는 질문이 지금까지의 학교 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수업과 관련된 기억이 하나 쯤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듣게 되지만 그런 대답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전부는 현장체험학습, 피구했던 일, 놀았던 일 등이다. 아무리 수업이 재미있고 의미 있어도 그게 아이들 기억으로까지 각인되기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얼마 전 현장체험학습을 갔을 때, 체험장으로 아이들을 보내 놓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옆반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아이들 학업에 교사의 영향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냐고. 그래도 30퍼센트는 되지 않을까요? 했더니 아니란다. 70퍼센트가 학부모, 20퍼센트가 친구나 주변 환경, 10퍼센트가 교사란다. 그러니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부모의 역할은 못 따라가니 적당히 내려 놓고 하면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 얘길 듣고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양가감정이 들었다. 나 하나로는 아이들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한계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것저것 해보자! 하는 열정과 해봤자 별 의미 없다! 하는 회의감 모두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 연구 결과에서 특히 공감갔던 것은 가정환경도 그렇지만 친구의 몫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건데, 생활 면에서는 교사가 이래라 저래라 지적하는 경우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평가하게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는 걸 최근에 실감했기 때문이다.
현장체험학습 전날, 3월을 마무리하는 활동으로 우리 반 친구들에 대한 평판 조사를 했었다.
1. 말과 행동이 친절하고 칭찬하고 싶은 학생은 누구인가요?
2.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학생은 누구인가요?
3. 친구를 힘들게 하는 학생은 누구인가요?
크게 문제를 일으켰던 학생은 없어서 3번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는데 1번과 2번은 웬만하면 모두 적게 했다. 모든 결과를 따로 모아뒀다가 이틀 뒤 학급회의를 하면서 다 읽어줬다.
"가장 많이 칭찬을 받은 학생은 우리 반 회장인 진원이입니다. 칭찬의 내용으로는 '회장이 되고 친구들을 차별하지 않고 잘해준다' 등 입니다."
"와! (박수)"
"가장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 학생은 재용이입니다. 선생님이 아닌 다른 어른들께도 다나까를 꼭 쓰며, 수학 시간에 집중을 더 잘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와!! (박수)"
이런 식으로 전체 공개를 하고, 단 하나의 칭찬만 나왔어도 전부 읽어줬다. 신기한 건 아이들의 눈과 교사의 눈이 얼추 비슷하다는 점이다. 친절하고 다정해서 교사가 봐도 예쁜 학생들은 다른 아이들이 봐도 친해지고 싶은 친구이다. 매일 부진 학생으로 여겨지다가 점점 이해가 느는 것이 보이는 학생은 다른 아이들이 봐도 성장하고 있는 기특한(?) 친구이고.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무척 뿌듯해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음에 상담할 때 그런 칭찬이 나올 줄 예상을 했냐고 물어봤더니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는 학생들도 있어서, 아이들의 서로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교사의 몫으로 다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이 해결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 활동은 꾸준히 이어 갈 생각이다.
그러나 교사가 아이들 삶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온 순간도 있었다. 학교 폭력 설문조사를 한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1년에 한두 번 적어내게 하는 설문조사지인데 보통 '없다'고 체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 날도 '별 거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빠르게 넘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있다'라고 응답한 설문지가 한 장이 나왔다. 은지였다.
은지는 늘 포니테일을 하고 다녀 동글동글한 두상이 눈에 띄는 귀여운 여학생이다. 특히나 사정없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잔머리들이 '나 곱슬이요' 말해주는 것 같아 나에게는 귀여움 포인트다. 그런데 그런 귀여운 외형과는 별개로 늘 표정이 어둡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나한테 아주 깍듯한 다나까 말투를 사용하지만 웃는 얼굴을 지어보인 적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과 함께 지내지 않고 외할머니와만 지내는 학생이었다.
그 설문 조사지를 확인한 다음 하교 후에 은지한테만 조용히 남으라고 이야기하고, 결과에 대해 물어봤다.
"은지야. 학교 폭력 실태 조사에 '있음'이라고 되어 있던데, 무슨 일이 있었니?"
"4학년 때.. 운동장에서 애들한테 놀자고 했는데 계속 저 무시하고 괴롭혔어요."
"정말?"
"(끄덕끄덕)"
늘 무표정하고 뚱한 얼굴이 기본값이던 은지가 돌연 울기 시작했다. 등이 들썩이도록.
"남자애들? 지금도 같은 반이야?"
"네, 남자애들이요.. 지금은 다른 반이에요."
"정말 다행이다. 그때 은지 너 속으로 얼마나 힘들었니.."
"..."
말로 달래도 주고, 등도 두드려 보는데 그럴수록 더 운다. 원래 달래면 눈물이 더 나는 법. 눈물로 빼내야 할 감정이 아직 많이 고여 있다 싶어서 충분히 울게 했다. 휴지로 눈물 좀 닦고 진정이 된 은지한테 그랬다.
"은지야,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다가가는 방법을 모르겠는 거야, 아니면 혼자 있는 게 좋고 편한 거야?"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선생님이 친구들 끼리끼리 모여서 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면 어떨 것 같아?"
"부담스러울 거 같아요.."
"그래. 그럼 다같이 놀이하거나 교실에 보드게임을 두는 건 어때?"
"그건 좋아요."
"알겠다. 선생님이 네가 편한 방법으로 도와줄게."
"..."
"오늘 은지 너 선생님이 갑자기 상담하자고 해서 당황스러웠지? 너 선생님 엄청 어색해하는 거 알아."
"네 조금이요.(좀 웃음)"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선생님은 은지 네가 궁금해. 더 많이 알려 줘~"
다행히 마지막에는 은지의 웃는 얼굴도 보고 손 악수도 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사실을 상담을 하면서 은지 바지 엉덩이 부분에 피가 묻어있고 의자에도 핏자국이 많이 묻어있어서 생리에 대해서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어렵게 라포 형성을 시도한 건데 괜히 민망한 얘기 늘어놨다가 아이가 더 숨을까봐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진 못했다. 왜 그런 민망하고 예민한 부분도 부드럽게 끌어낼 만한 섬세함이 나한텐 없는 걸까?
은지를 보내고 의자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지우면서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 내가 어떻게 해야 저 아이의 생활이 좀 밝아질까 고민이 됐다. 은지는 외할머니와만 생활하는 아이라, 어떤 점을 도와줘야 할까 고민이 됐지만 내가 은지가 아니라 모르겠다. 나중에 더 가까워지면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지? 은지 얼굴의 그늘은 오롯이 은지의 몫인 걸까, 교정이나 개선의 대상인 걸까. 그리고 언젠가 은지가 나한테도 빵끗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 올까? 그건 내 욕심일까?
교사가 학생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생각은 오만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오만이 누군가의 삶에는 볕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으리라고 믿는다. 아직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정기 상담이었으면 절대 듣지 못했을 그 아이의 삶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