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아이들이라서 작은 이벤트에도 열광적으로 호응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나 강연을 가면, 본인의 관심사라서 찾아 찾아 온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태 눈을 장착한 채 영혼은 잠시 빼두는 경우가 많다(는 교직원 회의 시간의 내 모습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작~은 이벤트, 행사에도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적극 참여하고 마이쮸 하나의 보상이라도 걸리면 마이쮸를 따내기 위해 굉장히 노력한다. 따면 기뻐하고 못 따면 실망하는 그 모습이 매우 투명하다. 따라서 뭔가를 준비해서 건네주는 어른 입장으로서는 그게 참으로 뿌듯하고, 또 동시에 같이 '두근두근'하는 흥미진진한 광경이 된다.
몇 주 전에는 장애 이해 교육 주간이었다. 특수 선생님께서 교육 자료를 뿌리시면서, 이 자료의 내용으로 십자말풀이를 성공해오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지급하겠다고 안내하셨다.
'우왓 한 시간 때우기 딱이다'라고 생각한 나는 창체 시간을 잡고 아이들과 같이 십자말풀이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태블릿PC로 찾아보게 하고, 바로 교무실 앞에 있는 응모함에 활동지를 넣어두게 했다.
그리고 대망의 발표 날!
발표 방법은 이랬다. 금요일 아침 방송 시간에 전교학생회장, 교감선생님 등 여러 사람이 10명씩을 뽑아 총 40명을 뽑는 방식이었다.
"제발 되라 되라 되라..!"
도윤이는 아침부터 두 손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중이었다.
첫 10명. 나도 은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방송을 시청했다.
"지금부터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2학년 1반 땡땡땡"
"아~"
"1학년 2반 땡땡땡"
"아~~"
"2학년 3반 땡땡땡"
"아 선생님 자꾸 저학년만 나와요~~"
그랬다. 처음 10명은 정말 거의 저학년만 걸렸다. (저학년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행사에 참여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그래도 우리 반이 25개나 넣었는데 그 중 몇 개는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두 번째 추첨. 과연 몇 학년일까 귀 쫑긋하고 듣는데,
"5학년.."
"오??!"
"1반 땡땡땡~"
"아~~~"
옆반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그러고 몇 차례 더 기다리니 드디어 우리 반 학생이 처음으로 호명되었다.
"5학년 2반 정예림!"
"와~!!!!!"
"축하해~~~~"
열심히 기도하던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 짝이 대신 당첨이 되었다. 이후로도 정말 다행히 예림이를 포함한 4명이 당첨이 되었다. 다들 5학년 2반, 이라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고 환호해주었다. 분명 아이들 선택에 맡겼으면 하는 애들만 했을 텐데, 다 같이 참여해서 네 명이 당첨된 게 나로서도 무척 뿌듯했다. 게다가 상품은 5000원 상당의 스테들러 문구 세트. 아주 알찬 상품이었는지 당첨된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애용하며 잘 쓰고 있다.
이번 주에는 세계 책의 날을 맞아 도서관 선생님께서 운영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름하야 책이름 피라미드!
12글자인 책부터 1글자인 책까지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 12권을 모두 작성해서 책 이름으로 피라미드를 완성하면 되는 재미있는 행사였다. 이번에도 알림장에 적어주고 한 번 안내해주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아이들이 열심히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며 책이름 피라미드를 금새 완성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아침이었다.
"선생님 도서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응, 그래 다녀와. 책이름 피라미드 제출하러 가니?"
"네!"
아이들이 다녀오고 나서 하리보 젤리 같은 걸 받아왔길래 물었다.
"활동지 제출하면 뽑기권 준다고 했지? 젤리 나왔어?"
"네~ 젤리가 5등이고요, 1등이 오예스 한 상자, 2등이 무슨 문구 세트같은 거예요."
"우와~~ 그래? 1등되기는 어렵겠다."
그랬는데 조금 있다가 재용이가 위풍당당 오예스 한 박사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왔다.
"야 재용이 1등 됐대!"
"와 진짜?"
"야 재용아 좋겠다~~"
"히힛."
맞춤법도 괴발개발이고 책은 만화책 읽는 모습 밖에 (그조차도 잘..) 보여주지 않는 우리 재용이가 무려 세계 책의 날 행사에서 1등을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입꼬리를 씰룩이며 당당하게 들어오는 재용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도 덩달아 들뜨는 마음을 누르며 엄근진 모드로 말했다.
"재용아, 1등 축하해~ 오예스는 사물함에 넣어둬라."
"네."
오늘 하교할 때 재용이는 야무지게 사물함에서 오예스를 챙겨 집으로 갔다.
이런 학교 행사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소소한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 행사 담당자도 아닌 내가 다 뿌듯한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마다 담당 선생님께 덕분에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한다고, 당첨되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참여한다고 전해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무슨 일에도 진심인 아이들이 더 활활 불타서 참여하는 행사가 있었으니 바로 바로
학년 농구 대회!
우리 학교는 농구부도 있고 학교스포츠클럽도 농구를 하고 있어 학생들이 농구에 관심이 많다. 작년 5학년을 하신 옆반 선생님께서 '아유 얘넨 농구 잘 해요~' 라고 하셨을 땐 그래서 사실 기대를 좀 했었다.
"얘들아 우리 다음 주부터 농구 대회 있다~"
"아~~ 농구 대회 싫어요~"
어랏? 내가 생각한 반응이 아닌데? 농구 대회를 연다고 하니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시큰둥해보였고 몇몇은 싫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아 우리 반은 농구를 별로 안 좋아하나보다. 그냥 참여에 의의를 둬야겠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선생님 두꺼운 종이 있어요? 좀 주시면 안 돼요?"
"있긴 한데 그걸로 뭐하려고?"
"응원봉 만들려고요!"
농구 싫다며 징징대던 여학생들이 떼로 와서 종이를 왕창 받아간다. 둘둘 말아서 응원 문구도 쓰고, 아예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서 슬로건처럼 만들기도 한다.
"선생님 저희 팀 언제 뽑아요?"
"다음 주에 뽑을 거야~"
이래 놓고 정작 팀을 구성해야 해서 선수로 참여할 사람 손 들라고 하니까 손은 잘 들지 않는다. 여학생들은 결국 마지 못해 나가는 듯(?)해 보이는 아이들 몇몇이 자원해줘서 5명을 꾸렸다. 아마 아이들을 대표해서 뛴다는 사실이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 어찌저찌 나중에 희망한 학생들까지 교체 선수로 넣어 명단을 구성했다.
농구 대회는 학년별 리그전인데, 남녀 나눠서 1, 3반과 한 판씩 시합을 하면 되는 심플한 일정이었다. 첫 경기는 남자팀 대결. 상대는 1반이었다.
"5학년 2반!!!"
'(짝짝짝짝짝)'
시합이 시작되자 농구공 튀기는 소리보다 우리 반 여학생들 응원소리가 더 클 정도로 아이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반에는 농구 스포츠클럽을 하는 해준이가 있어서 해준이가 계속 득점 찬스를 따냈다. 몇 번의 슛이 실패로 이어졌다가 한 골 한 골이 먹힐 때마다 아이들이 우레와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
나는 학생들 데리고 농구 경기하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그냥 재미있게(?) 구경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해준이가 전력 배분, 팀 전략 등 디테일한 내용을 다 팀원들에게 알려주고 있어서 명목상 감독인 나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 여학생들의 경기 날. 자기 얼굴만한 농구공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공을 가지고 실랑이(?)를 하는 여학생들의 열정적인 농구 경기를 보고 있자니 나도 가슴 어딘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이들의 농구 경기는 농구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누가 공을 들고 있으면 우루루 달려가서 품안에 안겨 있는 공을 빼앗으려 들고, 그럼 그 여자애는 주저 앉아서 공을 안 뺏기려고 하고, 그럼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어 나름 공정하게(?) 공격권을 둘 다에게 번갈아 주는 상황이 이어졌다.
농구공은 실제 공이니까 당연히 크고 딱딱해서 어른 여자도 잘못 맞으면 아픈데, 그런 상황에서 경기를 하는 아이들도 자주 공에 맞았다. 손은 물론이고 얼굴에도 맞고, 다리에도 맞고 그랬다. 그러다 몇 반이고 할 것 없이 눈물 짓는 학생들도 더러 생겼다. 그럴 때마다 심판이
"괜찮아? 계속 할 수 있지?"
라고 물어보면 금방 눈물을 닦는다. 평소 같았으면 보건실 다녀올게요, 선생님 아파요 했을 아이들인데 다시 공을 뺏고 빼앗기는 난투극(?)에 의젓히 동참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조용히 그림만 그리는 해진이, 마르고 왜소한 은지, 조금만 뛰어도 얼굴이 새빨개지는 은정이, 골을 잘 넣기 때문에 전반, 후반 20분을 모두 교체 없이 풀로 달려야 하는 예림이를 포함해 농구 경기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정말 모두가 진심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눈에 또렷이 와 박히는 듯했다.
그래서 몇 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1반에게 졌을 때는 나도, 아이들도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자아이들은 해준이가 너무 잘한 덕분에 확실하게 이겨서 나도 마음 편하게 축하해주기만 하면 됐는데, 여자아이들이 졌을 때는 안타까움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재미있었으면 승자다, 아이들을 위로했다.
"선생님 너무 아쉬워요.."
"괜찮아, 잘 했어. 안 다쳤음 됐어!"
게임에서 직접 뛴 아이들은 아쉬움이 쉬이 가시지 않았는지 그 주 학급회의에서도 농구대회에서 진 일이 가장 아쉬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나 다행히도, 며칠 뒤에 이루어진 3반과의 경기에서는 연장을 두 번까지 한 끝에 2점 차로 우리 반 여학생들이 이기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리고 눈물은 3반 몫이 되었다. (그 날 오후에 3반 선생님께 들은 말로는 여학생들이 너무 울어서 5교시 수업이 안 되겠다며, 아이들 좀 놀아주겠다고 하셨다.)
잘하고 못하고와 관계 없이 새삼 아이들의 열정이 참 순수하고 커다랗다는 생각이 든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응원팀을 꾸리고 다른 반의 전력을 읊어가며 자기들만의 방법을 생각해내고, 얼굴이 시뻘개질 때까지 시합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전반전에 교체로 투입됐다가 후반까지 풀로 뛴 학생이 나중에는, 사실 발목이 아팠는데 그냥 참았던 거라며 발목을 절뚝거리며 걷는다.
어른이었으면 그만큼 진심일 수 있을까? 농구 대회 이거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아이들 성적도 뭣도 아닌데. 그냥 재미있고, 우리 반이 나가니까 무조건적으로 '열심'인 상태가 되는 아이들이 어떻게 보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제 그게 안 된다. 나를 소모해야 하는 다른 일들이 많은 탓도 있지만, 단순히 재미로만 뭔가에 오롯이 열중하는 능력을 많이 잃었다. 정말 순수하게 몰입할 줄 아는 능력 말이다.
이번 농구 대회에서는 그나마 아이들의 열기에 힘입어 같이 몰입할 수 있어서 그 순간 참 즐거웠고 (한 골 넣을 때마다 방방 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주에 하나 남은 3반과의 남자 경기도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모두모두 다치지 않고 즐겁게 임하길!
5학년 2반 짝짝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