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화를 만드는 아이들의 힘

by 희담

5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단 한 건의 싸움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초등교사로서 가장 힘든 점, 골머리를 앓게 하는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교우관계 문제가 아닐까 싶다. 매일 같이 다투고 갈등을 빚는 케이스부터 여자아이들 간의 은근한 따돌림과 고립, 힘이 센 아이가 약한 아이에게 가하는 온갖 종류의 압박과 멸시, 지나치게 뒤쳐지거나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 등등 양상은 다양하다.


이런 교우관계 문제는 내가 모르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쌓아왔던 나름의 역사가 고스란히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고, 가정환경과 본인의 성격, 주변 친구들 간 관계의 역동 등 다양한 요인이 얽히고 설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걸 상담과 교육으로 해결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워지고, 마음과 몸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 소모도 어마어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내 노력보다 아이들 스스로의 역량과 흘러가는 시간의 힘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해결되거나 일단락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5월 중순에 이르도록 우리 반에 (최소한 내가 목격했거나 전해 들은) 단 한 건의 싸움과 다툼, 고자질이 없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물 다섯 명이 복작복작 함께 살아가는데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교사의 뛰어난 자질과 역량 때문이 아닐까? ... 하고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다. 우선 크거나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없다는 등의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아이들 스스로가 좋은 교실 문화를 잘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학급 경영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사실 '어떻게 하면 좋은 교실 문화를 만들까?' 하는 부분인데 이를 테면 이런 거다. 피구를 할 때 누군가 실수해도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주고, 실수한 본인도 담담하게 경기를 이어나가게 하는 것. 잘못하거나 뒤처지는 학생을 조롱하고 배척하지 않고, 도와주고 격려하는 문화. 힘의 논리가 작동해서 비굴한 아이, 으스대는 아이가 생겨나지 않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존중하며 어우러지는 문화. 그게 좋은 교실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 집단이 모이면 이런 문화를 만들기가 대단히 어렵다고도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결국 동물이고, 어떻게 해서든 힘의 우열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런 인간의 본능을 이겨 내고 모두가 존중받는 이른바 '훈훈한' 분위기를 계속 유지한다는 건 결국 모두가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인성을 갈고 닦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를 형성할 때 중요한 건 분위기를 주도해나가는 몇몇의 역할인데, 이 학생들의 말과 행동, 태도에 다른 학생들이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한번 아이들 스스로도 '안전하고 평화롭다'고 느끼는 교실 문화가 정착되면 그 이후로는 그 나름대로의 자율적인 룰로 교실이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이 찾아온다.


우리 반에는 그런 보석 같은 친구들이, 정말 보석 같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친구들이 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두룩.


우리 반 회장인 진원이는 아나운서 같은 묵직한 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분 줄을 서 주십시오.' '출발하겠습니다.' '차렷. 공수.' 이런 기본 멘트를 칠 때에도 분위기를 탁 잡아주는 무언가가 있다. 목소리에 단정함과 힘이 있다. 아이들이 떠들 때에도 '여러분 조용히 해주십시오.' 요청을 하지만, 회장이라서 거들먹거리거나 으스대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진원이의 올해 목표가 '회장 되기'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회장 같은 아이가 왜 그 동안 회장을 못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지, 마땅한 인물을 아이들이 몰라봤는지.


우리 반 부반장인 은정이와 도윤이도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나름의 역할을 멋있게 해내고 있다. 은정이는 일단 밝다. 그리고 누구와도 쿨하게 어울린다. 나와 친한 친구가 아니면 아침에 마주쳐도 인사를 하거나 쉬는 시간에 같이 노는 경우가 드문 이맘때 아이들을 생각하면 은정이의 사회성과 친화력은 그야말로 탑티어. 도윤이도 그렇다. 뭐든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어 하고, 행동과 말에 절제가 있다. (합기로를 해서 그런 걸까?) 친구들이 질서를 안 지키면 나서서 '조용히 해주십시오' 하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학교 생활에 애살이 있다. 그렇게 회장이 안정감을 준다면 부반장 두 명은 조화롭게 아이들과 잘 어우러지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나 할까.


학급 임원이 아닌 다른 친구들이라고 이 친구들보다 못 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한 명 한 명 꼽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중 교실 문화에 크게 기여하는 누군가를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해준이가 아닐까 싶다.


해준이는 전교 임원이라 학급 임원으로 출마할 수 없었던 케이스인데, 반에서 해주고 있는 몫은 그 이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다. 공부도, 운동도 빼어나게 잘 하고 예의도 바르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물론 이런 에이스 같은 친구들은 어느 반에나 한둘 있다.


그런데 해준이의 정말 큰 강점은 그 영향력을 '선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발휘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체육할 때 뒤에서 구령을 열심히 불러주고, 운동회를 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나서서 일을 돕고 응원을 한다. 누가 못하거나 실수해도 다그치지 않고,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때로는 단호한 면모로 누군가의 행동을 지적할 때도 있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교실에서 '게이'라는 말을 장난처럼 사용하자 그걸 들은 해준이가 'OO야.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이 '뭐라고 했는데?' 궁금해서 물어와도 '말 전달하지 마.' 하고 끊는다.


해준이는 물론 공부도 운동도 잘 해서 칭찬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기는 하지만, 다른 모든 장점보다도 나는 이런 삶의 태도에 진정 엄지를 추켜올리고 싶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행동과 태도로서 본을 보이고, 그럼으로써 그 가치를 설득하는 삶의 태도. 가끔 아이들을 보면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어른인가? 하고 묻게 되는데, 해준이에게도 많이 배운다.


이밖에 일일이 호명할 수 없는 많은 아이들이 너무나 자기 몫을 잘한다. 친구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교실 속의 규칙을 지키고, 어른에게 예의바르게 대한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교실 속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고, 그러다보니 그 안에서 친구와의 갈등도 존재하는 것인데 기본을 너무 잘 하고 있어서 다른 갈등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삼, 우리 반 마침 인사인 '기본을 잘 하겠습니다'를 아이들이 이미 잘 해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갈등이 없어야만 좋은 교실이고 싸움 없이 웃는 얼굴만 보여주는 것이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건강한 갈등 해결 방법을 배우는 것도 교육의 일환이고,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무언가도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 스스로 이렇게 만들어 낸 교실 문화의 이점과 안정감을 알고,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의식하는 과정도 충분히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다. 좋은 문화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좋음'을 겪어 봐야, 그 좋음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도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것과 용인되지 않는 것의 경계를 파악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언행을 절제할 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당연히 운도 따른다. 모든 해가 좋을 수는 없다. 아이들도 언제 한번은 고꾸라지고 힘든 해를 보내게 되겠지. 그럴 때마다 기억에서 꺼내어보고, 위안으로 삼을 만한 해가 한 해쯤 있으면 참 좋지 않을까. 올 해를 마무리할 때 아이들이 '아 이번 일 년 참 좋았다!'라고 느끼게 된다면, 그것만큼 뿌듯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나도 우리 교실 속 한 명으로서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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