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어줄 수 없는 그늘

by 희담

발령을 받은 첫 해, 4학년을 맡았는데 정현이라는 아이가 반에 있었다. 공부도 그럭저럭, 교우관계도 괜찮고 성격이 둥글둥글해서 눈에 튀지 않는 아이었다. 그런데 정현이를 보면 왠지 모르게 얼굴에서 그늘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중에 3학년 때 정현이를 맡았던 담임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선생님이 그러셨다.


"아 정현이 선생님 반이구나~ 정현이 얼굴에 슬픔이 있지 않아요?"


맞다, 그거였다. 슬픔. 축 처져서 귀엽다고도 할 수 있는 유순한 눈매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있었다. 1년 동안 정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정현이가 엄마와만 산다는 것, 아버지를 아주 가끔 본다는 것 정도였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어른의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해맑게 생활하리라는 건 어른들의 낙관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간에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한다. 아이들도 그렇다. 살고 있는 환경과 그 애가 겪고 있는 힘듦이 얼굴에 드러난다. 눈가 주름이나 굳어진 인상이 아니라 표정과 눈빛에서. 슬픔을 이고 사는 아이는 슬픈 눈을, 우울을 이고 사는 아이는 무기력한 눈을 하고 있고 그런 눈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서 찾아낼 때는 나도 슬퍼진다.






우리 반 세헌이는 정현이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였다. 남자앤데 덩치도 좀 있고, 공부도 곧잘 하고, 통통한 편에 둥그런 얼굴과 축 처진 눈매가 귀여운 아이다. 다만 얼굴에서 그늘이 보이고 눈이 슬퍼보인다는 게 정현이를 연상시켰다. 표정도 크게 없어 웃거나 인상 쓰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학기 초 작성해 낸 기초조사서와 모든 동의서의 서명이 아버지 성함으로 되어 있길래 막연히 어떠한 이유로 아버지와만 함께 지내는가보다 생각했을 뿐, 워낙 있는 듯 없는 듯하는 아이여서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며칠 전이었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5교시 종이 쳤는데도 세헌이와 호준이, 도윤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좀 더 기다리자 호준이와 도윤이가 쭈뼛주뼛 들어왔다.



"왜 늦게 들어와? 세헌이는 어디 있고?"

"어 그게, 세헌이 동생이랑 3반 누구랑 싸웠는데요 걔네가 교장 선생님이랑 상담을 했고.."



아이들 말을 정리하면 이랬다. 점심 시간에 세헌이의 여동생과 5학년 3반의 남학생이 다투는 일이 생겼다. 세헌이는 그 옆에 있었고, 같이 싸운 건 아니었다. 둘은 교장선생님과 면담하고 교실로 돌아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세헌이가 감정이 주체가 안 되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그 혼자만의 시간을 체육관 근처에서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의문투성이 설명이었지만 일단 수업을 해야했기에 알겠다고 하고 수학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한테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고 시키고 우선 체육관 쪽으로 가봤다. 체육관은 하나의 건물로 따로 떨어져있었는데, 바로 옆이 주차장이었다. 주차장까지 돌아봤는데도 세헌이를 발견하지 못해 우선 교실로 왔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6교시가 될 때까지도 아이를 찾지 못하면 큰 일이니 그때는 교무실에 알려야겠다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지금 나가서 세헌이 좀 찾아볼래? 찾으면 교실로 가라고 전해줘."

"네~!"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찾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찾아냈고, 세헌이가 눈물 자욱이 선명한 얼굴로 교실로 돌아왔다. 세헌이와 연구실로 가서 상담을 했다.


"세헌아, 동생이 ㅇㅇ이랑 싸운 거 맞아? 네가 같이 싸운 게 아니고?"

"네."

"그런데 왜 네 감정이 주체가 안 됐어? 오빠로서 너무 슬펐어?"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세헌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뗐다.


"저랑 동생이랑 많이 싸워요. 아침에도 싸웠는데 점심 때 또 그러니까.."

"너랑 싸운 게 아닌데도 그걸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았구나?"

"네."


세헌이는 할 말이 남아있는 표정으로 머뭇머뭇거렸다.


"근데 이건 그냥 저희 집안일인데요.."

"응, 그래."

"아빠랑 엄마가 이혼하는 거 때문에 엄청 싸워요. 저희한테 누구랑 살 건지 빨리 정하래요. 아빠는 자기랑 살자고 하고 엄마는 엄마랑 살자고 해요. 엄마는 저한테 엄마랑 같이 안 살면 평생 엄마 못 본대요."


세헌이는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했다.


"저랑 동생이랑 누구랑 같이 살아야 되는지, 그거 때문에 맨날 싸워요. 저는 싸우는 거 진짜 싫거든요..? 너무 싫어요."

"아... 그랬구나."

"아빠랑 엄마랑 심하게 싸운 적도 많아요. 막 물건 집어던지고 일어나보니까 뭐 깨져있고.. 경찰 부른 적도 세 번이나 있어요."

"그 때가 언젠데?"

"작년이나 재작년..?"


그 대화를 통해서 나는 세헌이 얼굴에서 느꼈던 어두움과 슬픔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건이 부서지고 경찰관이 오고가는 밤은 고작 10살, 11살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의자를 좀 당겨 앉고 휴지를 준비해줬다. 세헌이는 더 이상 말을 자기 안에 담아둘 수 없다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이런 것까지 말해도 되나 고민이 되는 것처럼 약간의 텀을 두어가며 계속해서 토해냈다.


"아빠가 너무 무서워요. 저는 집에 가면 그냥 누워만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해요.."

"아빠가 무서워?"

"네.. 엄마랑 싸울 때도 아빠가 물건 부수고 그랬어요."

"그래서 집에 가면 아무 것도 안 하니?"

"그냥 침대에 누워 있어요. 저는 학교 오는 게 집에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해요."

"아버지 참관 수업 때 오셨지? 세헌이 최고라고 네 글에 댓글도 다셨던데.."

"그때 저희 엄마도 왔어요."

"아버지랑 따로 따로?"

"네. 그래서 너무 불안했어요."

"왜?"

"공개 수업하는데 아빠랑 엄마 싸울까봐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공개 수업을 하던 4월 마지막 날, 아버님이 한 분 오셔서 세헌이한테 인사하는 걸 보고 세헌이 아버님이시구나 했다. 어머님도 오신 줄 몰랐고 두 분이 따로 따로 오신 줄은, 그리고 세헌이가 부모님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는 줄은 더더욱 몰랐다.



세헌이는 서럽게 울었다. 나도 목이 매였다.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첫 기억은 어린이집도 다니기 전으로 거슬렁 올라간다. 우리 집이 어느 주택집 2층에 세들어 살 때였다. 자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실눈을 뜨며 지켜 본 나는 아빠가 작은 나무 소반을 들고 엎는 장면을 봤다. 밤이었고, 형광등 불빛이 쨍했고,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심장이 미친듯이 쿵쿵댔는데 왠지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깼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아 고른 숨을 연기하며 그 모든 걸 오감으로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에 내 세상의 전부인 부모가 보여줄 수 있는 폭력은, 그게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내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도, 폭력으로 번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주 사소한 기류와 눈빛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긴다. 강렬한 기억으로든, 분위기를 잘 살피는 재능으로든, 남의 눈치를 보는 습관으로든 말이다.



우리 집이 늘 부모님께서 화목하고 정다운 집안은 아니었기에 나도 세헌이에게 일부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사실 이혼을 하네 마네 하시거나 실제로 이혼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세헌이가 느꼈을 불안, 우울, 무기력, 슬픔과 같은 감정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을 한들 위로가 될까 싶었지만 아무 말이나 했다.


"세헌아 선생님도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많이 다투셨거든?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네가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그냥.. 버텨보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도 있어. 선생님이 듣는 건 해줄 수 있어. 앞으로도 털어놓을 곳이 없으면 선생님한테 털어 놔.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 필요할 때는 가져도 되는데, 선생님한테 앞으로는 미리 알려 줘. 안 그러면 걱정하니까."


그러고 세헌이는 연구실에서 좀 더 감정을 추스르다가 6교시가 끝날 때쯤 조용히 들어와 종례를 하고 갔다. 아이들을 다 보내고도 세헌이가 했던 말 중 어떤 말은 잊히지가 않고 계속 생각이 났다.


- 집에 있으면 그냥 누워만 있어요.


그게 그 애가 견디는 방식이라는 게. 집에 있지만 없는 것처럼 부피를, 소리를, 움직임을 줄이고 시간을 죽이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게. 그렇게 체화된 무기력이 그 애의 눈빛으로 읽힌다는 게 너무 슬펐다.


뭐라고 말해줄 수 있었을까. 뭐라고 위로했어야 할까.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다 너무 섣불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문이 이어서 떠올랐지만, 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선생님도 친구도 아닌 가정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 별 거 아니구나, 내가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 큰 족적을 남기리라는 오만은 접고 조금은 마음 편히 해도 되겠다, 안도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때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망가졌을 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세헌이가 그래도 종종 나를 찾아왔으면 한다.

울고 불고 욕을 하더라도 그렇게 털어내려고 몸부림쳤으면 한다. 그 순간만이라도 편해졌으면 한다.

수업 시간이면 집중하는 눈빛으로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그 애의 동그란 눈을 보며 그런 바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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