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드민턴을 햇수로 3년 정도 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운동으로 눈을 많이 돌리기도 했고, 치다 안 치다 했던 기간도 길었어서 구력에 비해서 실력은 형편없다. 같이 배드민턴을 치는 그룹 내에서는 늘 최약체다.
문제는 나만 못 치는 건 상관이 없는데 복식 경기를 할 때가 대부분이라 늘 파트너에게 민폐를 끼치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실수를 할 때마다 밀려 오는 죄책감과 미안함은 몇 번을 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하든 말든 마음 편하게 내 기량을 다 발휘하게 되는 경기들이 있다. 바로 김OO 선생님과 함께 팀을 이뤄 칠 때다. 40대 남자 부장님이신 김OO 선생님은 배드민턴 대회에 꾸준히 나가실 정도로 열혈 민턴러이신데, 당연히 나보다 훨~씬 잘 치신다. 그런데도 내가 실수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해주신다.
‘아유~ 시도 좋았습니다!’
‘선생님, 실수해고 되니까 아까 배우신 거 다 써먹어보세요.’
‘이런, 제 실수였습니다.'
내가 어이 없는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늘 화이팅 해 주시고, 레슨할때 배운 것을 써보려고 하면 실수해도 괜찮으니 마음껏 해 보라며 독려해주신다. 그러면서 내가 이상하게 친 공을 뒤에서 다 커버해주시니 같이 칠 때 정말 마음이 편하고 나도 모르게 내 기량을 더 잘 발휘하게 되는 것 같다.
아니 이거 교단일기 올라오는 브런치 아닌가? 왜 궁금하지도 않은 배드민턴 운동기만 늘어놓고 있지?
의문이 든다면.. 내가 처한 상황이 요즘 우리 아이들이 주먹 야구를 하면서 겪는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야구야말로 사실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중요한 팀 스포츠다. 문제는 아이들의 타고난 운동 신경과 능력치가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는 모두가 같은 팀원이 되고 싶어하는 선수이고, 누구는 맞먹기할 때 가장 마지막에 남는 선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슬픈 사실이다.
그리고 작은 승부에도 일희일비하게 되는 것이 아이들 특성이니만큼, 경기 중 실수를 하거나 수비력이 따라가주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점수를 내줘야 하는 경우에 당사자인 아이들은 쉽게 위축되거나 소심해지곤 한다.
아이들은 '게임'이나 '경기'라고 하면 이겨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친구가 실수하거나 경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을 때 쉽게 비난하거나 감정적으로 흥분한다. 물론 그건 어른도 그렇다 (나라고 왜 아니겠는가? 민턴 이기면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 나야 나..) 그런데 아이들의 경우에 그 감정과 열정을 컨트롤하거나 다른 친구에게 표현하는 방법이 미숙할 때가 많다. ‘야 거기서 왜 OO 해' 하는 지적뿐만 아니라 '너는 도움이 안 돼,' '아 쟤랑 또 같은 팀이야!'와 같은 원색적인 비난도, 결국은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주먹야구 게임에 필요한 기능 연습을 하고 처음 경기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우리 반에 운동신경이 떨어져서 공을 제대로 치지도 잡지도 못 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재용이다.
어느 날에는 재용이가 수비를 하다가 실수를 했다. 날아오는 공을 잡지 못하고 떨어트렸고, 옆에 있던 수비를 잘하는 규민이가 뭐라고 힐난을 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에 재용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벤치로 빠졌고, 교실로 돌아간 재용이를 여자 아이들이 누나들처럼 감싸면서 달래주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결국 규민이가 재용이에게 떨떠름한 사과를 건네면서 상황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재용이처럼 눈물을 보이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알게 모르게 상처 받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도 마냥 즐겁게 참여하기보다, 실책하는 모습을 보여 욕먹지 않으려고 몸을 더 사리는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일종의 방어 기제처럼 게임을 할 때면 더 날카로워지는 아이들의 신경을, 조금은 물렁물렁하게 만져줘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해, 즐겁게 하는 데 중요해?"
"즐겁게 하는 거요!"
"맞아. 너희가 실수하는 건 당연해, 안 당연해?"
"당연해요!"
"그치. 너희가 실수 없이 주먹야구 할 수 있었으면 선생님은 왜 있고 연습은 왜 하겠어? 우리 그냥 즐겁게 하고, 서로 괜찮다고 말해주자."
한 번만에 바뀌지는 않았지만 게임과 교육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점차 나아졌다. 야구 실력도 나아졌고 팀 안에서 스스로를 격려 하는 태도도 나아졌다.
오늘로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경기를 했는데 한 팀이 거의 8대 영 9대 영 수준으로 지고 있었다. 다른 팀에는 해준이와 같은 스포츠 만능캐가 있었다. 아이들 나름으로 전력을 다 하는데도 점수차가 좁혀지지 않던 와중,
예진이가 공을 던질 차례가 되었다. 공이 날아간 순간, 약간 뚝딱대지만 모든 걸 열심히 하는 은진이가 뜬 공을 잡으려고 공중에서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공을 놓쳐 버렸다. 그 사이 예진이는 1루로 진루했다.
은진이가 혼자 머쓱해하는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만 보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수비를 서고 있던 소망이가 그랬다.
"괜찮아. 잘했어 그렇게 시도해 보는 거야!"
결국 이 친구들의 팀은 15대 3이라는 크나큰 점수차로 패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다른 친구를 탓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포자기하며 대충 경기에 임하지도 않았다. 몇몇 학생들의 '괜찮아' 구호 아래, 끝까지 서로를 독려하며 경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와중에, 여지껏 계속 파울만 당하고 공을 한 번도 제대로 친 적이 없는 서광이가 마침내 두 번의 파울 끝에 약하게나마 제대로 공을 쳐 올린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우리 편 남의 편 할 것 없이 아이들이 모두 서광이를 응원했다.
"서광아, 잘했어 대단하다!"
교사가 옆에서 아무리 '잘했어' '나이스'라고 외쳐준들, 아이들이 가장 뿌듯하게 느끼는 순간은 같이 경기를 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이렇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건네줄 때가 아닐까 싶다.
팀워크를 발휘 해야 하는 순간은 비단 스포츠 경기 뿐만이 아니다.
요즘 과학 시간에는 용액을 만드는 실험을 거듭 하고 있는데, 실험이다 보니 아이들도 쉽게 산만해진다. 뒷정리까지 시간 안에 마치기가 늘 빠듯하다. 그럴 때면 치트키처럼 쓰는 방법이 있다.
바로, 뒷정리를 마치고 실험 관찰을 다 작성한 모둠 먼저 교실로 올라가기!
다양한 방법을 써 봤지만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삽시에 아이들이 일사불란해지며 서로의 실험 관찰을 열심히 도와주기 시작하는 진풍경을 관찰할 수 있다.
며칠 전도 그런 날이었다. 시간 안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말했다.
"뒷정리 다 하고 실험 관찰 다 쓴 모둠 먼저 교실로 올라갑니다!"
한 모둠 한 모둠 자리를 정리하고 재바르게 사라지는데, 4모둠의 아린이가 실험 관찰 마지막 문제에 답을 적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둠에는 진원이도 있었다. 아린이가 마침내 뭔가를 써낸 걸 본 진원이가 이렇게 말했다.
"답이 정말 '같다'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진원이는 그 뒤로도 몇 번의 질문을 끈기 있게 던지며 아린이가 제대로 된 답을 적어낼 수 있도록 도왔다. 이미 다른 모둠 친구들이 다 빠져 나간 과학실에서 4모둠은 마지막으로 검사를 받은 모둠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한 명 서로에게 짜증내지도, 그렇다고 답을 배끼거나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정말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팀워크를 보여줬다.
모두가 잘하고 결과가 좋을 때는 팀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팀웍이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을 때는 모두가 힘들거나 짜증스러울 법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고 모두를 친절하게 이끌 수 있다면, 그 아이가 가진 인격적인 자산은 그 어떠한 능력에도 뒤지지 않는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태껏 과학 수업을 하면서 시간을 맞추기에 급급해 늘 아이들을 들볶는 역할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누군가가 제대로 배워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주고 인내해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뭉클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교실로 돌아와서 이런 진원이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과학실에서 '다 한 모둠 먼저 갈 수 있다!' 라고 하면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크게 3가지 야. 첫째, 친구 재촉하기. 둘째, 느린 친구 비난하기. 셋째, 자기 실험관찰 보여주고 배끼게 하기. 그런데 오늘 새로운 유형의 친구를 발견했어. 이 친구는 다른 친구가 천천히 답을 쓰는 와중에도 재촉하거나 짜증내지 않고, 그렇다고 대놓고 답을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그 친구가 답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계속 해주더라구. 마치 선생님처럼!"
"그게 누구예요, 선생님?"
"우리 반 반장 진원이이야~"
"우와~~!!"
진원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며 두 뺨이 뿌듯하게 차 올랐다.
그런데 같은 날 혼난 친구도 있었다. 서광이었다. 수학 숙제를 하지 않아서 2번 연속 칠판에 이름이 적혔다. 세 번째였던가, 숙제를 또 안해왔길래 왜 안해왔냐고 했더니 시간이 부족하단다. 그 말이 변명처럼 느껴져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숙제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길래 숙제 할 시간도 없냐, 미리미리 했으면 되는 일 아니냐 라고 혼을 냈다. 그리고 다음에는 꼭 해 오라고 당부를 했다.
다음 날 숙제 검사 시간. 우리 반에는 숙제 부장 1인 1역이 있어서 이 친구들이 숙제를 하지 않은 친구들을 확인하고 칠판에 이름을 적는다. 그 날 네 명의 이름이 적혔는데 그 중 서광이의 이름은 없었다. 숙제 부장 학생이 그랬다.
"오, 얘들아 오늘 서광이 숙제했어!"
"우와 서광이 잘했다!"
"대박!"
아이들이 나보다 낫다. 나로 말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기준만 따라 왔던 모범생이고, 그 상태로 무난한 루트를 밟아 교사가 됐기 때문에 숙제나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지 못 하는 학생들을 인내심 있게 참아주고 독려하는 것이 아직도 잘 안 된다. 해 오는 게 당연한 거고 안해 오는 게 혼날 일이라는 생각이 잘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칭찬과 격려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아직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칭찬에 후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때때로 이렇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의 성장을 서로가 찾아주고 칭찬해줄 때, 부끄러움과 뿌듯함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곤 한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 생각하는데 아이들이 나보다 더 낫다. 아이들로부터 많이 배운다.
하루 하루 더 낮아진 자세에서 함께 배우고, 아이들을 독려해가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