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들의 무리 짓기

by 희담

우리 반에는 여자 아이들 무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일고여덟 명의 아이들로 느슨하게 구성된 무리이고 하나는 보다 돈독하고 공고한 무리인데, 후자의 멤버는 아영이, 은하, 희망이, 연서다. 우리 반에 있는 이 네 명과 다른 반에 흩어진 다른 친구들까지 합하면 대략 여덟 명에서 열 명 정도가 4학년 때부터 함께 노는 끈끈한 무리이다. 점심 시간에 교내 정자에 모여 놀기도 하고, 아침에 같이 등교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주말에도 만나서 논다.


여자 아이들이 놀 때 무리가 지어지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교사 입장에서는 늘 신경이 쓰이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학창 시절 때 한 반에 여덟 명 정도나 되는 거대 무리(?)에 속해 봤고, 무리에 있는 대장격 친구와 싸워 무리에서 (그 당시 말을 빌리자면) 튕겨져도 봤고, 학기 중반에 다른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 어색한 몸부림도 쳐봤다. 그런 경험들 덕분에 그 나이 또래 여자애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그래서 제가 서 있을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때로는 너무나 쉽게 누군갈 상처주기도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맡은 반에서 아주 끈끈해 보이는 여학생들 무리가 보이면 '그래, 이맘때엔 친구가 최고지.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쟤네도 다른 애들이랑 놀아봐야 할 텐데. 찢어주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학기 초에 그래서 무리 짓기의 위험성과 교우 관계에서 쿨한 마인드셋 장착하기에 대한 일장연설을 했으나 그게 애들 기억에 남아있기나 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3월, 4월이 넘어가고 어느 정도 무리 짓기도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다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5월 중순, 일이 터졌다.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교정을 걷고 있는데 은하, 아영이, 그리고 다른 반의 여자 아이들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선생님~"

"어 그래 얘들아~"

"저희 연서랑 이야기해야 되는데 연서가 영어실 청소한다고 가 있어요. 영어쌤한테 말씀드리니까 담임쌤한테 이야기하래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말인즉슨 연서가 무리의 다른 아이들과 트러블이 생겨 오늘 점심 시간에 다같이 대화를 하기로 했다는데, 점심 시간에 영어실에 청소를 하러 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대화 할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여 물어봤다.


"근데 연서랑 무슨 할 말이 있는 거야? 선생님이 물어봐도 되니?"

"연서가 저희 뒷담을 깠어요. 근데 아니라고 했다가 맞다고 했다가 또 그래요."

"누구 뒷담을 깠는데?"

"어~ 저랑 누구랑 누구랑 또~"


한두 명이 아닌가 보다. 아이고야. 일단 5교시 마치고 이야기해보자 하고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연서 이야기를 먼저 들어봐야 할 것 같아 교실로 가던 중 분리수거를 하고 있던 연서를 만났다. 어쩐지 평소에 영어실 청소 담당이 아닌데 자원을 했네 싶었는데, 껄끄러운 상황을 모면하고자 영어실 청소를 자처한 듯 싶었다.


"연서야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아까 아영이, 은하, 희망이가 찾아와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던데."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시작하니 연서가 금세 울먹울먹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제가 뒷담 깐 건 맞는데.. 처음에 아니라고 한 건 진짜 생각이 안 나서였고요.. 옆에 있던 다른 애가 알려줘서 그때 생각이 나서 맞다고 한 거예요.."


어쨌든 뒷담을 깐 건 맞고, 모두를 다 깐 건 아니고 누구는 절대 깐 적 없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우선 진정을 시키고 화장실 가서 추스르고 오라고 일렀다. 5교시에 같이 이야기해볼 건데 선생님이 대화를 도와줄 테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오라고.


5교시 수업을 하면서도 아, 이 문제를 어떻게 잘 풀어나갈까 걱정이 되어 정신이 반쯤은 연서한테 가 있었다. 얼마 전에 머리 아프다고 보건실에서 쉬다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한 번도 운 적 없던 애가 서럽게 울면서 보건실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해서 걱정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가 점심 시간 직후였으니 아마 그 날 무리 안에서 이미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갔겠구나 싶다.


5교시에 당사자들 다 모아 부르니 연구실 의자가 부족할 정도였다. 7~8명 되는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서가 저희 뒷담을 깠는데 처음에는 안 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깠다고 인정했어요. 근데 또 나중에 카톡으로 아니라고 하고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 뒷담도 깠어요."

"저도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처음에는 기억이 안 났는데 친구가 알려줘서 그때 기억이 나서 맞다고 한 거예요.. 그리고 누구누구는 맞는데 아영이 뒷담은 깐 적 없어요.."

"근데 그때 제가 들었는데요~"


말이 너무 길어지다보니 상황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연서가 아이들 욕을 한 건 맞고, 아이들이 원하는 건 인정과 사과였다.


연서는 울면서 사과를 했다.


"얘들아.. 욕 해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그 사이에 5교시 쉬는 시간이 끝나버렸고 나는 연서를 먼저 교실로 보냈다. 아영이, 희망이, 은하, 그리고 무리의 주축이 되는 다른 반 아이들 둘이 남았을 때 이렇게 이야기했다.


"얘들아. 너희 오늘 사과 받았고 연서가 인정했지? 오늘 일은 여기서 끝이야. 나중에 다른 일이 생기더라도 이 일을 끌어오거나 앙금을 남기면 안 돼. 알겠니?"

"네."

"그리고 너희들, 너희 무리 안에서도 서로 싸우거나 마음 상할 때 있지? 왜 지난 번에는 은하랑 은빈이 둘이 싸웠잖아."

"네."

"그러다 보면 어때? 옆에 있는 다른 친구한테 서운한 점 이야기하게 되기도 하고, 듣고 있는 친구들은 또 마음 불편해지거나 누구 편을 들어야될지 모르겠는 상황이 생겨. 너희 지금 이 무리가 되게 좋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되게 위험할 수도 있어. 선생님은 좀 걱정 돼. 너희가 잘 지내고 싶다면 이 무리 안에서만 놀기보다 다른 친구들이랑도 어울리는 게 좋아. 그리고 누가 누구 뒷담깠다고 전해주지 말자. 그거 의리 아니야. 나 이런 거 알고 있어~ 하고 자기 영향력 과시하는 거야. 이간질이야."


이거 말고도 넉넉 잡아 두 시간은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6교시 수업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내 이야기가 얼마나 아이들 마음에 가닿았을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이들은 잘못한 건 연서인데 왜 자기네들이 훈화 말씀(?)을 듣고 있나, 싶은 얼떨떨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연서가 여러 명의 아이들 앞에서 울먹이면서 사과할 때, 자기는 결백하게 아영이 뒷담은 하지 않았다고 나를 올려다볼 때, 내 안에서 분명하게 치받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한 환멸과 연서와 동기화된 억울함이. 누군가가 잘못했다고 해서 여럿이서 추궁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나보다 한참은 어린 여자 애들한테 바락바락 따져 묻고 싶은 울분이. 너희도 분명히 언젠가는 누구 뒷담을 깠을 텐데 그럼 너희들 각자도 모두 연서와 같은 입장일 수 있었을 거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그득그득했다.


그런 마음을 최대한 티내지 않고 공정한 재판관이자 아이들의 교우 관계를 걱정하는 자애로운 선생님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했던 건 그런 말들이 연서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애가 받을 상처에 같이 가슴 아프고 미안했지만, 내가 연서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연서와 저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는 여지도 사라질 거라고, 복잡다단했던 십대를 지나 온 내 안의 촉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내가 잘 한 건지 아닌지. 아이들에게 느낀 바 그대로를 말해줬어야 하는 건지.

상황 설명을 너무 디테일하게 듣고, 민지까지 불러서 그렇게 물어봤어야 했던 건지.

아니면 내가 연서한테만 너무 감정 이입을 해서 다른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거나 짐작하는 건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모른다는데, 매번 미묘하게 바뀌는 여자 아이들 관계 속의 역동이나 그 낱낱의 심리는 반의 반 길도 알기가 힘든 것 같다. 알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바뀌어 있기도 하고.


나는 그래도 연서가 결자해지를 해냈다고, 차츰 시간이 지나면 원래 무리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지 않을까 예상을 했는데 다음 날부터 연서는 원래 놀던 아이들이 아닌 민지를 주축으로 한 다른 무리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점심 시간에 함께 놀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에도 민지와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민지는 아이들이 월말 조사서에 늘 '친절하고 착하다'고 써내는 아이인데, 5월 월말 조사서에서 연서는 민지에 대해 이렇게 썼다.


- 어떤 비밀을 이야기해도 말하지 않아서 너무 너무 든든하다.


자기가 한 말이 새어나가고 전해지고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서 곤란했으니까 민지 같은 우직하고 한결 같은 친구에게 마음도 가고 배울 점도 많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연서가 안쓰러운 마음과는 별개로, 또 연서의 행동이 잘못됐고 그건 고쳐져야 하는 게 맞으니까 어떻게 보면 민지와 그 무리 아이들 속에서 지내는 것이 연서에게는 더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연서에게 사과를 받은 희망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줘서 눈물 그렁그렁하며 사과하게 되는 날이 온다. 아이들끼리 싸우지 않아서 좋다고 섣불리 좋아라 했던 5월은 사실, 이런 저런 갈등들이 그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 교실 속에서 조용히 똬리를 틀고 있던 중이라는 사실을 그 이후에 발생한 크고 작은 고발과 눈물과 얼룩들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되려 마음이 놓인다.


아이들이 운다는 것은 감정을 흘려보낸다는 뜻이고

싸우고 해결한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뜻이기에


이 모든 갈등들이 밑거름처럼 쌓여 아이들이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여기에 다 적지 못한 상담들은 다음 장에 적어야겠다. 그러나 6월은 부디 더 평화롭기를..! (점심 시간에 상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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