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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람 Sep 04. 2023

서른 살, 여름밤에 든 생각

비, 땀, 눈물 그득한 2023년 여름.

삼성 노트에 421개의 메모가 쌓인 지금에서야 글 다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떤 계절의 밤이든 전부 외롭다만, 여름밤은 특별히 더 아프고 특별히 더 행복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비온 뒤 풀내음을 깊게 들이마시면 손끝 발끝까지 초록이 꽉 채워지는 느낌처럼, 여름은 감정이 더 꽉 채워지는 계절이다.



서른 살이 된지도 벌써 7개월 차. '서른' 이라는 단어만 검색하면 무수히 쏟아지는 글과 노래, 책, 기사, 뉴스. 그래서인지 더 무겁게만 느껴지던 서른이라는 나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훅 찾아왔고, 그리 무겁지 않게 스무스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내가 속으로 '뭐야, 이 세상 사람들 다들 호들갑 떤 거 아니야?' 라는 오만함을 갖고 서른 살의 반을 보내고 있을 즈음, 외할머니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예상했으나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었고, 너무 많은 감정들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회사에서 바쁜 업무가 거의 지나가고 잠시 한숨 돌리고 있던 오후 4시 반 정도였는데, 평온하던 마음이 급격하게 흔들리며 심장 박동이 빠르게 뛰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울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고, 고개를 쳐들어도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빈소에서 엄마와 이모들의 처음 보는 표정과 처음 듣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엄마도 그렇게나 애타게 당신의 엄마를 목놓아 부를 수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요동쳤다.



또한 30년 넘게 대기업을 다니던 아빠는 정년퇴직 후 작은 중소기업에 들어가 천천히 내려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고, 혼자 있어도 편하고 안정적이라던 오빠는 함께 있어도 편안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또 다른 삶을 준비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렵다며 한국을 뜨려는 친구도 있었고, 애매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 몇 명이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가기도 했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을 때, 친구들이 혼란스러워하며 답답한 마음을 내비칠 때, 그런 친구들을 외국으로 떠나보낼 때, 동료들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줄 때, 그리고 나 또한 변화하고 싶은 마음과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불안감, 우울감이 온몸을 지배했을 때. 또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어른이 되는 것이 참 좋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화장터에서 외할머니의 화장이 시작되었을 때 울면서 엄마에게 뜬금없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


'나이 드는 거 진짜 힘든 거네. 너무 슬픈 거네.'


옆에서 가만히 듣던 엄마는, '그럼,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다 그런 거지.' 라며 옅게 웃을 뿐이었다.



서른이라고 해서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 자신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고,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고요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마치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주변에 비바람이 치고 있음을 망각하고 있었나보다.


아무튼 부디 많이 거센 비바람은 아니기를, 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완전히 지나기 전까지 서서히 지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그것들을 온전히 느끼며 마음을 다스려봐야겠다. 글을 쓰며 내 감정을 해소해봐야겠다. 이렇게 마음껏 무엇이든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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