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세이 4편. 현재들의 대학생들은

노예화된 사회의 대학생

by 따뜻하게 박희도

경제에세이 0편.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경제에세이 1편. 500년 전의 노예에 관하여(1)​

경제에세이 2편. 500년 전의 노예에 관하여(2)​​

경제에세이 3편. 노예와 톱니바퀴​




대한민국의 초, 중, 고등학생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12년이란 시간을 보낸다. 물론 유학을 하러 가서 해외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고, 중도에 공부 외의 다른 길을 찾아 취업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 중에 숨어있는 톱니바퀴는 이후에 따로 주제를 분류하여 얘기하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한다. 부모들도 그러길 원한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수능에 사활을 건다. 마치 수능이 인생의 가장 큰 변환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부분 좋은 대학이 좋은 인생을 결정 짓는다고 착각한다.(장담컨대 절대 좋은 대학이 인생을 결정짓지 않는다)

수능이 끝나면 누구보다 자유롭게 성인이 되어 지내는 것을 상상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선배들이 아니다. 자신의 학과가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전과하는 선배, 대학교 졸업해도 취업이 안된다며 공무원 준비하는 선배, 공모전을 하며 무료봉사(비꼬는 표현이다)를 하는 선배 등 어느 주인에게 존속 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꿈을 읽은 식어버린 청춘들을 맞이하게 된다. 처음엔 의아해하지만 익숙해지다 보면 새파란 청춘들도 그것이 옳은 줄 알고 같이 청춘을 시들게 방치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청춘의 요람 대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예화된 사회를 살펴보려한다.



1.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지원하는 학생들


대학교에 취업하고자 하는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이 가고 싶은 학과를 선정한다. 차라리 중고등학교 때 자신이 진학하고자 하는 학과를 상상했던 그대로 입학을 했다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입시생은 취업이 잘 되는 학과(주인님께 인정받는 학문) 혹은 훗날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학과(좋은 주인님을 만나 엘리트 노예로 지낼 수 있는 학문)로 지원을 한다. 그런 학과에 진학하지 못 하면 주변에서 ‘그 학과 취업 안 되는데 왜 거기 갔어?’라는 비판을 듣는다.

혹시 불쾌함을 느낀 독자가 있다면 앞서 말한 이 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돈은 목표지 꿈이 아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학문으로 가는 학생들은 극소수이며, 이후에 복수전공 혹은 전과를 통해 앞서 말한 인기 많은 학과에서 공부해 학위를 취득한다.


흔히 농담으로 하는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문과대학의 학생들이 취업이 안되는 자신들의 처지를 스스로 비하는 말이다. 난 ‘인문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입학을 애초에 인문대학으로 하여 덕분에 그 곳에서 2년 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문학에 관심이 진심으로 많은 친구도 보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깊게 연구하고자 하는 학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쉽게 톱니바퀴 꿈나무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복수전공 안 하면 나중에 취업하기 힘들걸?’, ‘너희 학과는 취업 안 되잖아... 공무원 준비하게?’ ‘대학원가도 취업 안 된데!’ 등등 대학생들의 모든 기준은 취업에 맞춰져 있다.


2. 모든 초첨은 취업 혹은 공무원으로


취업이 잘 되는 학과나 취업이 거의 보장된 학과의 학생들이나, 공무원에 합격하고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입사를 미뤄두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어깨를 으스대며 다닌다. 얼핏 보면 조선 시대 때 장원급제한 사람의 모습이 저랬을까 싶다. 괜히 다른 학생들은 취업을 걱정하며 기가 죽어 다닌다. 이런 것을 보면 도대체 기본교육과정과 대학에서 배우며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그저 공부와 취업을 하는 기계로 자란 것일까?


앞서 말했지만, 문과대학에서 대학원이라도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더 난리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오는 엑스트라들의 대사가 있다. ‘대학원 가도 취업 잘 안 된다던데?’. 대학원을 왜 가지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대학원을 간다고 하면 세상 많이 아는 어른이 된 양 얘기한다. 인턴, 공모전, 교류 학생 등의 모든 프로그램을 하며 훗날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청춘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정말 자신의 꿈을 펼치려 애를 쓰는 진정한 청춘들이 미래의 톱니바퀴에게 많은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취업의 격렬한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안정적이고 모두가 좋다고 하니 공무원을 준비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이후에 공무원, 공기업이 인기가 많은 사회 풍토를 비판하고자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취업과 공무원 준비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매번 말해도 매번 똑같은 비판이 돌아와 여러 번 강조하지만, 근거와 목적의식 없이 주변에서 무작정 좋다고 해서 이를 준비하는 청춘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성인이면 스스로 미래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 돈이 되고, 무엇이 취업이 잘 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죽기 전에 주인님께 인정받지 못한 것 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더 후회할 것은 뻔하지 않은가? 대학생들의 초첨은 어떤 인생을 살고,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깨닫는데 맞춰져야 한다.


3. 꿈을 가진 청년은 비판의 대상이다.


내가 대학교 때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모두 전국 각지의 대학교(특히 부산이 많았다)로 흩어져 여러 관점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얘기는 한 명문 대학교에 진학했던 한 선배가 자퇴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전교 회장을 하고 공부도 줄곧 잘했던 선배가 사진을 공부한다고 자퇴를 한 것이다. 모두 쓸데없는 우려가 깊었다. 사진가가 되면 취업이 어렵고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지 못 한다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문제였다. 도대체 그들에게 인생은 무엇일까?


자신의 꿈을 찾는 것이 먼저다. 찾았다면 지금의 길과 비교해보고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 당연하다. 목적지가 어디인 줄 모르고 걷다가 목적지를 알게 되었으면, 당연히 경로가 바뀌는 것이지 않은가? 물론 우연히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확률이다.


다른 예로, 사업을 준비하던 한 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노트북을 들고 와 자신이 코딩한 프로그램을 보여주는데 기가 막혔다. 인터넷의 글을 넣으면 요약을 해주는 이제는 식상해진 간단한 코딩이지만, 대학생이 이런 것을 만들다니! 정말 대단했다. 프로그래밍 회사를 만들어 인터넷 웹사이트를 만들어주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지만 나보다 어린 이 청춘이 이런 멋진 길을 선택했단 것이 멋있었다(훗날 알아보니 회사는 더 커져 번듯한 스타트업 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 시선은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이런 아이가 있었다며 신나 얘기하자 ‘그럼 취업 준비는 안 하는거야?’, ‘취업준비 안 하고 사업 준비를 해? 사업은 위험하잖아 왜 하는 거야?’ ‘집에 돈이 많나 보네?’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남에게 고용되어 월급을 받은 것이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안전, 도대체 무엇이 안전하다는 것일까? 안전하다 하더라도, 안전이 행복과 비례할까? 남에게 고용되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평생 가족도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진정 생각하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불행히도 그들은 착각하고 오해하고 속고 있는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경제에세이 - 현대 노예 사회’와 관련된 글을 읽고 거부감이 크게 들거나, 주장하는 바와 독자의 입장에 크게 괴리가 있다면 해당 주제는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성장하였기에 각자의 배경과 마음속에 펼쳐진 세상도 다를 것이다. 당신의 그런 아름다운 철학과 생각을 존중한다. 다만, 아쉽게도 극히 일부는 나와 의견이 조금 다를 뿐이다. 언젠가 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주장에서 같은 입장으로 만나 웃으며 대화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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