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많던 딸이 가족을 버리기까지
1. 유년의 기억은 늘 불완전했다
나는 부모가 왜 이혼했는지 모른다.
어릴 적 엄마는 가끔 나를 보러 왔다. 그러나 그 방문은 너무 짧았다.
“다음에 만나자.” 그 말은 약속이 아니라 변명처럼 들렸다.
결국, 그다음은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너는 실수로 생긴 아이야. 그래서 뭐든 다 해주고 싶었어.”
그 말은 이상하게 나를 죄책감과 고마움 사이에 가두었다.
나는 고급 분유만 먹었고, 그 분유가 단종되자 남아 있는 가게를 찾아다니며 먹였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래도 사랑받았구나’라고 믿었다.
하지만 같은 입에서 곧 이런 말이 나왔다.
“내 청춘은 없다. 너 때문에.”
그 순간 고마움은 사라지고, 나는 빚진 사람이 되었다.
2. 불편함을 알아차린 건 어른이 되고서였다
사진 속 아버지의 손은 항상 내 가슴 한가운데에 있었다.
어릴 때는 몰랐다. 그게 이상한 건지, 불쾌한 건지.
지금 보면, 왜 항상 거기에 손을 두었을까 의문이 든다.
차를 타면 내 허벅지를 주물렀고, 집에 나만 있을 때 야한 영상을 보다가 들킨 적도 있었다.
그 기억은 먼지가 쌓이듯 내 안에 남아,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3. 조건이 붙은 사랑
사회초년생이 되어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나를 위해 거의 쓰지 않았다.
성과급이나 상여가 나오면 몇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을 의미 없는 날에도 보내드렸다.
그럴 때만 나는 ‘자랑스러운 딸’, ‘고마운 딸’이었다.
하지만 소비를 줄이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스폰 좀 해.”
가족에게 ‘스폰’이라니. 그 단어 하나가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그때 알았다. 이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거래였다는 것을.
4. 강제로 시작된 빚
어느 날, 아버지가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음주운전 과징금이 천만 원인데, 돈이 없다. 네가 대출 좀 받아라.”
나는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내 휴대폰을 뺏어 들고 신용점수를 확인했다.
970점. 높은 점수였다.
“이 점수면 당장 대출 나오겠다. 해.”
거부를 반복하자, 돌아온 건 욕이었다.
“매정한 년, 집 나가라. 그것도 못 해주냐.”
결국, 1년 이내 상환을 조건으로 대출을 받아줬다.
1년 뒤, 돈을 갚아달라고 하자 그는 말했다.
“없다. 연장해.”
그렇게 세 번이나 연장했다. 이자는커녕, 연락도 끊었다.
5. 나만 남은 빚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 이름으로 학자금·생활비 대출을 받아 사용했다.
졸업과 동시에, 나는 1,700만 원의 빚과 그의 1,000만 원 대출까지 떠안았다.
총 2,700만 원.
모은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았고, 가난한 부모가 부끄러웠다.
6. 결혼을 앞두고 내린 결단
결혼을 앞두고, 나는 모은 돈으로 모든 빚을 갚았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는 엮이지 말자. 당신이 말했던 대로,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마라.”
그 후 연락을 차단했다.
그 순간, 나에게 가족은 사라졌다.
7. 결핍을 메우는 방법
사랑과 보호, 지지. 가족에게서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받지 못했다.
그 결핍을 책과 다른 사람들로 채우고 있다.
나는 결핍 속에서 사랑을 배우고 있다.
만약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이 감정을 물려주지 않겠다.
내 아이는 사랑만 알고 자라게 할 것이다.
그게 내가 어릴 적 가장 원했던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