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위치에서 얻은 것들
딜레마다.
창작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 반, 생계를 유지하며 창작을 해야겠다는 마음.
사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이 예술업, 그중에서도 영화는 점차 안 좋아지는 시장임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그리고 오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기에, 나는 영상업도 아닌 다른 직업군을 선택하여 회사를 다니며 퇴근 후엔 영화를 만들었다.
9 to 6 근무를 하고 다시 출근하는 이 삶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힘들지도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눈이 반짝이며 생기가 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것만큼이나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늘 나는 두 가지 말에 방어를 하며 살아야 한다.
영화판 사람들에게는 '내가 영화를 진심으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강력 어필' 해야 하고,
사회 사람들에게는 '회사 일을 대충 하는 것이 아니며,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어디에도 명확히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로는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을 결코 취미로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타인이 보기엔 그럴 수 있다.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다고 백번 천 번 말해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아주 가끔은, 나쁘지 않을 때도 있다. 이 애매함 덕에 얻는 것들도 분명 있다.
영화를 만들며, 회사를 다녀서 다행이다 싶었던 순간들은 여럿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보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 것.
우리가 만드는 다양한 콘텐츠들은 자신이 보기 위해 만들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이해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공들인 콘텐츠라도 그다지 의미 없는 양산품이 될 뿐이다.
이러한 면모는 회사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기획자이기에 소비자의 니즈를 더욱 공략하여야 하고, 소비자 친화적인 말투로 구성해야 한다. 이 제품이 살만한 이유를 나열하고, 그들을 설득해야 성공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내 멋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멋진 소재와 더불어 만들었다고 해도, 관객이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실패한 영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고려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런 시각을 돈을 받으며(?) 배울 수 있다는 점은 회사의 이점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창작자가 되어가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결국 '각자의 도메인'이 중요해지는 상황이 올 것이다.
경험한 것이 자산이 되고, 전문성이 또 다른 창작물로 이어지는 순환이 이제는 빈번해질 것이다.
간직하고 싶은 것만으로는 지킬 수 없다.
간직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 나는 영화를 간직하기 위해 회사를 선택했다.
어찌 보면, 한곳에 집중하지 못한 비겁한 선택일 수 있다. 내 딴엔 최선의 선택일지라도.
간직하고 싶었기에, 나는 이 딜레마를 끊임없이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