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부러진 의자 위에 앉아 있다
철퍼덕. 쿵. 쿠궁.
어쩌면 당연하게도 지푸라기 의자는 완전히 부서져 나뒹굴었다. 나도 의자도 함께. 모두들 풉, 풉, 거리며 웃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자신들의 입술을 가리고 시선을 돌렸다. 아무도 넘어져 있는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오기를 부리며 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 대신 나를 자극한 매튜를 노려보았다. 그는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낄낄거리고 있었다.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
스무 살 겨울 방학, 대학교 새내기로 신나는 1년을 보내고 나는 돌연 필리핀 다바오로 떠났다. 그때는 스테로이드를 2년가량 최대치로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과 몸은 퉁퉁 붓고 살이 쪄 있었다. 원래 나가던 몸무게에서 10kg이 더 해진 상태였다. 맞는 옷이 하나 없어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사댔다. 몇 년 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대학 가면 예뻐진다는 말도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날은 바다가 보이는 2층 테라스에서 야외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로델 선생님은 필리핀의 맥도널드인 졸리비에서 콜라 플롯과 커피 플롯, 치킨 등을 사 왔다. 나는 전 수업 선생님과 떠들다 부랴부랴 장소에 도착했다. 의자는 단 하나만 남아 있었다. 꼭 지푸라기로 만든 것 같은, 누가 앉아도 폭삭하고 무너질 것만 같은 의자였다. 나는 의자를 한 번 바라보았다가 내 펑퍼짐한 뱃살을 한 번 쳐다봤다. 자신이 없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또 의자를 한 번 툭툭, 두들겨도 봤다가 내 엉덩이를 떠올렸다. 안 될 것 같은데... 나의 망설임을 눈치챈 매튜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 앉지 그래?"
그는 약간 조롱을 섞어 말했다.
"왜~ 앉아봐. 하긴, 네가 앉으면 의자 부러질 수도 있겠다."
사실 누가 앉아도 부러질 것 같은 의자였기 때문에 만약 진짜 부러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꼭 나 때문이 아닐 거니까 덜 쪽팔릴 것 같았다. 그러나 철퍼덕, 넘어지고 의자와 함께 나뒹구는 순간 내게 쏟아지는 시선들과 웃음소리는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저기 있는 마른 애슐리가 겪었으면 누군가 손을 내밀고 어떡해, 하고 말 일이었을지도 모를 텐데. 나는 홀로 흙먼지를 툴툴 털며 일어났다. 매튜를 잠깐 쏘아보았다. 그는 양 손바닥을 하늘 위로 으쓱하며 '내가 뭐?'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나무 의자만 보면 나를 놀려댔다. 매튜는 눈짓만으로도 비아냥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장난을 걸어오는 정도였지만 그는 악의를 담았다. 그는 내가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나는 이미 거울 속 나를 싫어하고 있었고 그의 노골적인 언사는 나를 자꾸만 자꾸만 더 작아지게 했다. 말을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받고 싶지 않은 선물처럼 돌려주면 된다고 했던가. 그런 좋은 말은 실제로는 잘 먹히지 않았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른 같은, 이십 대 후반은 족히 넘어 보이는 그에게 나는 "하지 마세요"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그의 모욕은 그가 안 보일 때에도 내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뚱뚱해지고 못생겨서 그런 말을 듣는 건가, 내가 예쁘고 날씬했다면 그럴 일이 없지 않을까. 결국 내가 문제지 뭐, 하면서 가슴을 치며 울었다. 마음에 박힌 말들이 떨어져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얼마 전까지 뚱뚱한 몸을 가졌을 때에는 이제 더 이상 얼굴에 연연하지 말자고, 그때그때 생긴 대로 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태도가 나를 줄곧 흔들었고 결국 내 다짐은 얼마 가지 못했다. 옷을 사러 가서는 종종 "그게 맞겠어요?"라거나 "우리 집엔 아가씨 사이즈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무리 살이 붙었대도 66을 넘지 않는 사이즈였는데도. 나는 그럴 때면 숨고 싶었다.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날씬한 얼굴일 때에는 "예쁘세요"라거나 "이 옷도 정말 잘 어울리겠어요, 뭐든 잘 어울릴 거야" 하는 말들을 들었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라서 남자들이 줄 섰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무난한 친절을 베풀었다.
그럴수록 나도 나를 다르게 대했다. 뚱뚱한 얼굴일 때에는 두 턱을 가리기 위해 항상 마스크를 하고 펑퍼짐한 옷으로 몸을 가리고 다녔다. 번화가라도 가는 날에는 어쩐지 어깨를 말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왠지 나를 보고 수군거릴 것만 같았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숨어 지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던진 말들을 또다시 던졌다. 살찐 게 아니라 아프다는 걸 나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너는 내가 아니라고, 나는 이런 얼굴이 아니어야 한다고, 제발 얼른 사라져 달라고 말했다.
지금은 끊었지만 이식을 하고 나서 혹은 루푸스가 재발하면 언제든지 스테로이드를 다시 먹게 될 것이다. 여태까지 먹은 스테로이드만도 이만 알이 넘어서, 이제는 소량을 잠시만 먹어도 금세 달덩이 얼굴이 된다. 몇 번의 변신 같은 변화를 겪고 나서도 나는 아직, 얼굴에 초연한 마음이 되지 못했다. 외모에 묶인 내 마음이 어쩌면 매튜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를 울리고 욕했던 건, 매튜가 아니라 나일지도. 거울 속의 나를 헐뜯고, 미워하던 게 나였던 것처럼.
여전히 나는 그 부러질 것 같은 의자에 앉아 있다. 지금 앉아 있는 곳은 안전한 건지, 앞으로도 계속 안전한지 알 수 없어 초조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