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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Mar 31. 2020

오래된 배터리

내 몸의 소비기한은 이미 지나버린 게 아닐까


    "엄마, 나 재수하고 싶어"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선희를 마주치자마자 말했다. 선희는 요리를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찡그린 표정이었다. 선희는 다시 프라이팬으로 눈을 돌렸고 등 뒤의 내게 말했다.

    "왜?"

    심드렁한 말투였다. 얼마 전부터 학교가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렸기 때문에 으레 하는 소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거실 한복판에 가방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드러누우면서 속사포같이 빠르게 말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수능을 다시 봐서 내 레벨에 맞는 곳에 가야겠어. 너무 힘들어"


    고작 스물한 살이었다. 일 년을 서울대에서 지내고 보니 도저히 여기는 내 세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친구들은 사춘기 때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서울대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루기 전까지 잠시 아픈 것-그때에는 곧 나을 거라고 생각했으므로- 빼고는 안 되는 일이 없었다. 학교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알았고 도전한 것은 모두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대에서는 달랐다. 처음 도전했던 학과 선택조차 탈락하고 말았다.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길만 열린다고 들었는데. 시작부터 어그러지고 있었다. 


    그 무렵 나와 친구들은 "우리는 전산 오류 전형으로 들어왔지"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하고 다녔다. 나를 포함한 일반고 출신인 여자애들이 특히 그랬다. 서울대 인문계열에는 외고 출신이 7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어딜 가도 밀렸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학문의 차이만큼 인맥에서도 차이가 컸다. 그 애들은 AP 시험*을 치르고 토플, 텝스를 마스터하고 GRE* 단어까지 외웠는데 나는 텝스도 한 번 본 적 없는 몸이었다. 그 애들은 대학교 과잠바도 모자라 'A외고-서울대'라고 적힌 과잠바를 입고 몰려다니는데 나는 우리 고등학교에서 나 혼자 서울대에 왔다. 아니, 심지어는 우리 구에서 나 혼자였다. 외고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성적이나 과 배정 같은 것에서는 정보도, 실력도, 전산오류 전형인 우리는 뒤떨어졌다.


    전산오류 전형인 애들 중에서도 내가 제일 힘들어했다. 성적만 놓고 봐서는 나도 다른 친구들만큼 해내고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언제나 아득바득 살아야 했다. 그러니까 항상 최선을 다해야 했다는 말이다. 몸을 돌보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들어서 남은 시간에는 시험공부를 하고, 동아리는 꿈도 못 꿨다. 학과도 동아리도 없이 일 년을 넘게 지내다 보니 문득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려고 대학에 온 건 아니었는데. 몸에 맞추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영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수업을 빠지고 외래 진료에 가고, 일주일에 한 번은 아파서 내과에 가고, 잠은 열 시간을 자야 체력이 회복되었다. 네다섯 과목을 들으면서도 수업이 끝난 후에는 집에 바로 와야 할 정도로 지쳐버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고3 때에도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학교에 갔다. 스무 살이 되었다고, 대학생이 되었다고 뿅! 하고 몸이 낫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럴 거라고 기대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루푸스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대학생이 되면 몸이 자연히 나아서 나는 캠퍼스에서 전공책을 끼고 예쁘게 걸어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은 여전했다. 약은 조금 줄였지만 빵빵한 얼굴도, 아픈 몸도 그대로였다. 

    나중에 보게 된 SNS에는 '체력 때문에 공부, 연애, 동아리 중에서 세 가지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에너지가 너무도 부족해서 두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스무 살, 스물한 살의 내 친구들은 기숙사나 자취방에 살며 밤늦게까지 친목을 다졌다. 나는 통금이 없는데도 다음 날 출석을 위해서 저녁을 먹자마자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어제 친구들이 밤늦게까지 혹은 밤새 나눈 이야기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작은 공백들은 점점 쌓여서 그 애들과 내 사이에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 서운해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나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영영 비슷해질 수 없는 사람들일 테니까.


    여느 날과 비슷한 목요일이었다. 저녁에는 중간고사가 끝난 걸 기념하기 위한 학번 모임이 있었다. 뻔대*인 나는 식당과 술집을 예약하고 애들에게 연락을 다 돌렸지만 정작 갈 수는 없었다. 몹시 지쳐버려서 숨이 얕게 자주 쉬어졌고 붕 뜬 기분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의 피로는 언제나 취기처럼 왔다. 약간의 조증과 어지러움을 동반하고 몸에 힘이 풀렸다. 무릎이 퉁퉁 부어 아침에 신이 나서 신고 온 갈색 웨지힐을 길가에 버리고 싶었다. 버릴까? 어디 시장이 있으면 슬리퍼라도 하나 사면 좋겠는데. 5시가 넘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까지 나가는 것만도 30분은 걸릴 것이 분명했다. 호기롭던 아침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학교를 나가는 버스를 탔는데 앉을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몸이 아픈 사람인데. 다들 엄청나게 건강하겠지? 괜히 심술보가 터졌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혼자 씩씩거리기도 했다. 노약자석에 반듯이 앉아있는 등산객들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등산을 다닐 정도로 건강하면서, 나는 겉으로만 멀쩡하지 사실은 지병이 있는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힘든데 왜 아무도 안 내리는 거야!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도 내가 아프다는 걸 알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면서도 앉아있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온갖 짜증을 내고 있을 때 버스가 빠르게 달리다가 급정거를 했고 나는 그대로 넘어졌다. 무릎에 힘이 풀려서. 아얏,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땐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아저씨의 발등 위에 내 엉덩이가 올려져 있었다. 아씨. 황급히 얼굴을 가리며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하고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너무 창피해서 문이 열리자마자 부리나케 내렸다. 아직 내가 내려야 하는 곳도 아닌데. 정말이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창피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또 쪽팔리고.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고개를 떨구고 발끝만 한참 보다가 다음 버스도 놓치고 말았다. 


    그런 날이면, 그러니까 하루를 열렬히 보낸 날이면 다음 날 하루는 침대에 붙어있어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누워있는 걸 '죽어 있다'라고 표현했다. 친구들이 어디서 뭐하냐고 톡을 보내면 죽어 있어,라고 답했다. 어지러워서 휴대폰조차 볼 수 없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산 송장에 가까웠다. 나는 그럴 때면 캠퍼스에서 예쁜 옷을 입고 즐겁게 생활할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 애들은 지금쯤 건강을 누리고 있겠지. 그 애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도 마음껏, 놀기도 마음껏 하겠지. 그러면 성적도 잘 받고 동아리도 하고 싶은 걸 하나 정도는 열심히 할 수 있겠지? 그런 마음이 들면 나는 내가 내 몸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은 캠퍼스를 휘젓고 다니는데 몸은 여기, 딱 침대 한 칸 위에만 붙어 있을 수 있었다. 나는 몸 안에 갇혔구나. 여기에서 언제쯤 빠져나갈 수 있을까? 몸은 언제쯤 괜찮아질까? 조금이라도 빨리 괜찮아지면 좋겠어서 조급해하다 보면 시간은 더 더디게 흘러갔다. 겨우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끼니라도 때울 수 있었다.


    이런 내 컨디션에는 단체 활동이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공연 동아리에 정말 들어가고 싶었는데, 다 같이 준비하는데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선희는 동아리에 들어볼까, 하고 매 학기 초마다 망설이는 나를 말렸다. 너 거기 들어가면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어. 그건 알아야 해. 그 두 마디면 시작을 고민하는 들뜬 마음은 착 가라앉았다. 뭔가를 시작하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나는 다른 애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 몸에 갇혀 있는 듯했다. 정신은 친구들과 함께 캠퍼스를 휘젓고 다니는데 몸은 여기, 침대 위에만 붙어 있을 수 있었다. 언제쯤 내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오늘은 대체 몇 시쯤 괜찮아질까? 조금이라도 빨리 나아지면 좋겠어서 조급해하다 보면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러갔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어두운 거실에서 대충 끓인 죽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노라면 슬픔이 몰려왔다. 대학에 다니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이 몸뚱이로 과연 뭘 할 수 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몸이 지치는 만큼 마음도 지쳐갔다. 내일은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게도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을 아무것도 못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도 멀어지면서 살아야 한다면, 굳이 더 살 필요가 없을 것도 같았다.


    나는 꼭 오래된 배터리 같았다. 조금만 써도 얼마 못 가 방전되어버리는 배터리. 그래서 침대에 온종일 붙여놓아야 겨우 충전이 되는. 닳을 대로 닳아버린 내 몸을 얼마나 쓸 수 있을까, 내 몸의 소비기한은 이미 지나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밤을 보냈다. 그렇게 울다가 잠든 다음 날엔 꼭 몸이 아팠다.






각주:

1. AP 수업: 'The Advanced Placement Program'의 약자. 원래는 북미지역 고등학생들이 대학과정을 고등학교에서 미리 듣고, 미국 대학 진학 후 이수할 과목을 면제받을 수 있는 과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대학 입학을 대비해 한미 교육 위원단에서 시행하는 AP 시험을 치른다. (한미 교육 위원단 홈페이지 참조)

2. GRE: 'Graduate Record Examination'의 약자. 미국의 대학원 수학(修學) 자격시험이다. 주로 미국대학원에 유학할 때 필요하다.

3. 뻔대: 학번 대표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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