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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Mar 10. 2020

친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이방인이 되었다


  "어? 희우 너였어?" 

 효원이는 나를 보고 얼어붙은 채 겨우 입을 떼어 말했다. 그 애의 어깨는 평소보다 살짝 솟아 있었고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주먹을 돌돌 말아 장난치지 말라며, 그 애의 어깨를 툭 치려고 했는데 효원이는 멀뚱하니 입을 벌리고 서있었다. 나는 주먹을 다시 펴내고 효원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너 아까 진짜 나 못 알아본 거였어? 진짜로?"

 효원이는 벌린 입을 다물더니 입술을 움찔거렸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하다가 말없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교실 시멘트 바닥의 점박이 무늬를 하나하나 세는 건지 눈빛이 흔들렸다. 그 애와 내가 얼어붙은 사이로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크게 들려왔다. 


  퇴원 후 학교에 다시 가는 첫날 아침. 평소보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원래의 루틴대로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쉽지 않았다. 팔꿈치가 아프고, 발목이 쑤시고, 몸이 여기저기 퉁퉁 부어 있어서 아무리 몸을 휘어도 전과 같은 곡선이 나오지 않았다. 얕은 숨을 한 번 내쉬고 침대를 툴툴 털고 일어났다. 괜히 마음속 한 군데가 뭉근하게 아픈 것 같았다. 아침 첫 루틴부터 삐그덕거리고 있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려고 화장대 거울을 슬쩍 한 번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에휴. 아냐, 학교에 가는 게 어디야, 하고 나를 달래면서 옷장에 걸려 있던 교복을 꺼냈다. 엄마의 손에 잘 다려졌을 깨끗한 교복. 병원복이 아니라, 교복을 입는다니. 어깨가 들썩이고 손놀림은 바빠졌다. 보름 만에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교복 치마에 발을 넣고 올리는데. 웬걸, 지퍼가 올라가지 않았다. 원래는 내게 조금 헐렁하던 치마였는데. 의자에 걸터앉아 힘을 줘서 당겨 올려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스테로이드 100알 용량인 주사*의 부작용은 엄청났다. 얼굴은 달덩이가 되고 태열이 있는 아기처럼 볼이 발개졌다. 계란형이었던 얼굴은 꼭 서양배같이 아래쪽에 무게중심이 실렸다. 눈이 부어서 덜 떠지는 느낌이 들었고 쌍꺼풀은 애벌레처럼 보였다. 윗볼은 톡 하고 튀어나와 옆에서 보면 바람이라도 불어넣고 있는 것 같았다. 입 속엔 아무것도 없는데도. 보너스로 턱을 두 개 반쯤 더 얻기도 했다. 스펀지밥에 나오는 퐁퐁 부인을 닮은 모습이 거울 속에 있었다. 말랐던 몸에도 살이 여기저기 붙었다. 특히 얼굴, 뒷목, 팔뚝, 배에. 나는 본래 하체에 살이 붙는 편이었는데 약으로 붙은 살은 엄한 곳에만 쪄서 옷에 태가 전혀 나지 않았다. 심지어 교복 치마가 맞지 않는다니.


  어찌어찌 옷을 입었지만 대충 입은 꼴이 되어버렸다. 블라우스도, 치마도 맞지 않아서 그저 걸쳐진 느낌이었다. 조끼 안 블라우스의 단추들은 결국 슬며시 풀렸고 나는 옷을 뜯어버리고 싶었다. 내 몸에 화가 났다. 그건 한 번도 살이 쪄 본 적이 없는 내가 견디기 어려운 종류의 감정이었다. 내가 내 몸을 바라보는 게 이렇게 화가 날 줄이야. 입술을 이빨로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치마는 옷핀으로 겨우 고정되었고 교복 재킷은 겨드랑이가 껴서 입을 수 없었다. 내가 입은 옷 중에서 맞는 옷은 오직 스타킹뿐이었다. 아무렇게나 쭉쭉 늘어나는 스타킹. 


  괜히 신발끈을 묶으며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생 웅이의 등짝을 때리곤 집을 나섰다. 신발도 전보다 꽉 끼는 바람에 대충 꺾어 신고서.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치밀어 올랐던 화는 학교의 모습이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하자 점점 누그러졌다. 침묵의 병원 생활을 보름이나 보내고 나니 원래 내가 있던 자리가 너무도 간절했다. 학교에 가서 모두와 즐겁게 떠들고 나면, 달라진 얼굴이나 몸, 루푸스 같은 것은 없던 일이 될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이겨낼 만한 것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교문에 가까워지자 꺾어 신은 신발의 달그락 소리에도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아직 내가 학교에 오는지 몰랐던 등교 메이트 효원이를 교문에서 마주쳤다. 너무도 반가운 얼굴이라, 효원아! 하고 불렀는데, 그 애는 뒤돌아 내가 있는 쪽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분명 내가 여기 서있었는데. 그래 봐야 여섯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였다. 괜히 민망해서 주변을 훑어보고는 쭈뼛쭈뼛 교실로 향했다. 신발의 달그락 소리가, 나의 어깨춤이 멎었다. 부루퉁해진 입술로 교문을 지나 2층 복도로 들어섰다. 2학년 2반. 우리 반 교실 팻말 앞에 서서 그것을 잠깐 올려다보았다.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생각하면서. 고작 보름 동안 입원한 건데도 세상은 너무도 낯설었다. 원래 여기가 이렇게 생겼던가, 생각하며 교실 문에 달린 작은 창으로 고개를 내리니 효원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애에게로 향했다.

 "야! 너 왜 아까 나 모르는 척하고 갔냐?"

  효원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짓궂은 미소를 띠고 그 애의 어깨를 흔들어댔다. 미워, 미워,라고 말하면서. 효원이는 잠깐 눈이 위아래로 커지더니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어, 어... 하는 소리가 그 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후로도 사람들은 자꾸만 나를 못 알아봤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내내 같이 다녔던 오빠들, 2년간 학생회를 같이 했던 선배들 조차. 복도 끝에서 그들을 마주치면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안녕! 하고 소리쳤는데 상대방 쪽에서는 늘 갸우뚱,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돌아서버리는 꼴이 반복됐다. 그러면 나는 괜스레 손바닥에 전기가 오르는 것 같아 반대쪽 손으로 올렸던 손을 문질렀다. 처음엔 으악, 하며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아무도 못 봤겠지? 못 봤을 거야, 하면서. 어른들은 두 걸음 정도 가까이에서 인사를 했음에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형식적인 눈인사만 해주고 지나갔다. 원래는 희우야, 하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던 선생님들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았다. 내가 없던 사이에 사람들이 나를 지워버린 것만 같았다. 


  학교는 더 이상 내가 있던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학교에 돌아온 지 사흘 째,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았다. 손을 움찔대기만 했다. 상대방이 먼저 알은체를 해오지 않는 이상 나는 손을 번쩍 들지 않았다. 내가 인사를 해도 어차피 그들은 나를 못 알아볼 테니까, 그러면 자꾸 내 손에는 전기가 오를 테니까. 책상에 엎드려 축 늘어진 마음을 기대곤 했다. 쉬는 시간에 쏘다니며 다른 반 친구들을 찾던 나는 없어졌다.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내 자리에만 붙어 있었다. 온 곳이 내 세상인 줄만 알았던 학교에서, 이제는 내 자리, 딱 그 작은 공간만 내게 허락된 것 같았다. 교실 밖에 나가면 나는 다시 이방인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면 내 마음은 몹시 오그라들 것이었다.


  효원이는 그런 나를 달래러 자주 와주었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학교에 간지 일주일째 되던 날, 나는 점심시간에 엎드려 있다가 내 등을 토닥이는 효원의 손을 붙잡고 본관 3층 복도로 향했다. 빨리빨리, 하고 그 애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에 가는 거냐는 그 애의 말에 대답도 해주지 않고, 서둘러 가야 한다며 꺾어진 신발만 달그락거렸다. 도착한 곳에는 입원 한 달 전에 끝난 학생회장 선거 사진이 붙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 얼굴의 사진이 제일 앞에 붙어 있었다. 포즈가 무척 당당해서, 사진 속 그 여자애는 한 번도 무엇을 잃어본 아이 같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사선으로 돌아서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 속 그 애. 나는 그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애써 같은 포즈, 같은 표정을 하고. 그리고 효원에게 물었다.

 "어때?"

 "뭐가?"

 "아, 잘 봐봐. 어때? 많이 달라? 막 다른 사람 같아?"

 "... 에이, 희우야. 그냥 지금 잠깐 그런 거잖아"

  나는 그 당당한 포즈를 한 채로 효원을 잠깐 흘겨보았다. 지금 잠깐 그럴지 계속 그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루푸스는 낫지 않는 희귀 난치병이라서 국가에서 내 병원비의 90%를 내주는데. 지금 잠깐 일리 없었다. 나는 셈이 빠르고 세상을 잘 믿지 않는 종류의 열여덟 살이었다. 


 그때 문자 메시지가 띠링, 하고 울렸다. 진동을 해놓는 걸 깜빡했네, 하면서 폰을 열었다. 

 'K고 여신! 요즘 페이스북 글 안 올리네. 무슨 일 있냐?' 

 옆 학교 친구 상범에게서 온 문자였다. 상범이는 나를 꼭 'K고 여신'이라고 불렀다. 가을 축제 홍보를 위해 학생회에서 옆 학교로 갔을 때 생긴 별명이었다. S고 교문 앞에서 나랑 학생회 애들은 전단지를 나눠주고 놀러 오라고 외쳤는데 그 후 S고에서는 K고 여신이 축제 홍보를 하더라,라고 소문이 돌았다나. S고로 홍보를 나간 애들은 나 빼고 다 남자애들이었다. 상범이는 자기네 학교에서 내가 K고 여신으로 불린다며, 애들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해서 자기가 알려주었다며 으쓱댔다. 그 이후론 나를 K고 여신이라 부르면서 한참을 놀려댔다. 나는 내심 그 별명이 좋아서 가만히 두었다.


  나는 다시 K고 여신으로 불리던 예전의 내 사진을 꼼꼼히 바라보았다. 사진 속 얼굴 한 번, 창문에 비친 내 얼굴 한 번, 그렇게 번갈아서. 처음엔 이마를 따라 동그랗게 시선이 머물렀다가, 다음엔 눈썹의 결을 따라 거꾸로, 그 길을 따라 반듯한 콧대로, 이제는 튀어나와버린 눈두덩이로 시선이 옮겨왔다. 눈두덩이를 바라보다가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볼은, 바라볼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썩이며 히끅히끅 울었다.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을 원망해왔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았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거울 속 내가 낯선 정도였으니까. 효원이 내 어깨를 다시금 토닥여주었다. 나는 토닥, 토닥, 그 리듬에 맞춰 숨을 짧게 내뱉으며 울음을 멎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뜨거운 신음만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효원아, 저, 사진, 이제, 떼어달라고, 하자, 안 보이게"

 나는 한 음절씩 울음을 뱉어가며 효원이에게 말했다. 예전의 내 모습을 이제는 지워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내가 지워질 테니까. 지금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는 지금에 존재해야 했다. 한 달 전이 아니라.


  그렇게 겨우 겨우, 나는 그 시간들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 부작용은 매일 최악을 경신했다. 매일 아침 열두 알씩 집어삼키는 스테로이드는 겨울 방학 동안 내 얼굴과 몸집을 더 빵빵하게 더 부풀렸고 그 사이 나는 고3이 되었다. 새로 올라간 3학년에는 새로운 친구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내가 아프다는, 아니, 내 얼굴이 달라졌다는 소식을 못 들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 애들 사이에는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 같았다. 희우가 지난겨울 방학에 성형을 했는데, 큰 부작용을 겪었다는. 그래서 얼굴이 복어처럼 부푼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나서서 막아줄 효원이는 없었다. 우리는 이번에 다른 반이 되었고 나는 혼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오롯이 껴안고 울었다. 어느 날, 나와 말 한 번 섞어보지 않았던 은영이라는 애가 내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나는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려 그 애를 쳐다보았다. 그 애의 옆에는 1학년 때부터 자기가 짝사랑하는 남자애와 내가 친하다는 둥, 별 이유를 다 붙여가며 나를 질투하고 싫어했던 서영이라는 애도 함께 있었다. 은영이는 내게 물었다.  

 "너 진짜 성형하다 이렇게 된 거야?"

 이렇게? 이렇게가 뭔데,라고 삐딱하니 되묻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입술 사이로 짧은 바람을 허, 하고 내뱉곤 그 애를 지그시 쳐다봤다. 어쩌면 노려봤는지도 모르겠다. 숨을 한 번 짧고 크게 쉬고 대답했다.

 "아니. 아파서 약 부작용으로 이렇게 된 거야."

  진짜? 무슨 약? 어디가 아픈데? 근데 얼굴이 왜 그래? 하며 그 애는 내게 계속 물음표를 던졌다. 내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호기심을 풀고 싶어서. 나는 피곤하다고, 엎드려 이어폰을 꽂았다.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그래도 뒤에서만 속닥거리는 게 아니라 직접 와서 물어보는 은영이라는 애 덕분에, 성형 소문은 잦아들었다. 가슴께는 여전히 뭉근하게 아팠지만.


  "여러분, 죽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돌아온 후 교실 TV 속 교장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은 나를 자주 불러 과자도 챙겨주시고, 내가 낸 공약이라면 뭐든지 동의해주시는 분이었다. 나는 학생부회장, 학생회장을 하는 동안 운동장에 쓰레기를 줍는 교장 선생님과 자주 담소를 나눴다. 그러던 내가 며칠 보이지 않다가 아주 다른 얼굴로 학교에 나타나자, 교장 선생님의 두 눈은 아주 많이 흔들렸다. 나는 그분의 떨리던 눈동자를 기억한다. 그분은 나의 부모인 선희, 성우만큼이나 나의 건강 악화에 타격을 받은 듯했다. 그 후로 매 조회 시간마다 죽지 않아야 한다고 외치는 걸 보면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분은 내게 힘을 주기 위함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수록, 내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겨우 죽음을 면하고서, 아니 죽음을 유예하고서 학교에 와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학생회장으로서의 대외 업무에 부회장인 근수를 내보내고 뒤에 숨어서 가까운 친구들하고만 어울렸다. 오그라든 마음을 가진 채로. 나를 알아보려는 사람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갸우뚱하는 고갯짓을, 수군거리는 속삭임을 감당해낼 자신이 열아홉의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엄마 선희는 내가 속상해할 때마다 얼굴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겪은 경험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얼굴은 하나의 정체성이었다. 얼굴이 달라지고 사람들은 나를 이전의 나로 봐주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아닌 것만 같은 시간들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날 때까지 내 얼굴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나도 내 마음도,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죽지 않고 살았지만, 이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아닌 채로 버텼다. 어쩌면 이전의 나의 그림자로 살고 있는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면서. 반쯤은 이방인인 듯이, 또 반쯤은 지워진 듯이.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어영부영 따라잡으며 살아서일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때의 사진을, 열어보지 못한다.




각주:

1. 스테로이드 펄스:  스테로이드는 루푸스의 치료 조절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증상이 심하여 고용량의 스테로이드가 필요한 경우 단기간 정맥주사로 투여한다. 3-5일간 하루에 1g의 스테로이드를 정맥 투여하는 것을 펄스 치료(충격요법)라고 한다. 장기간 사용 시 부작용으로는 월상안(얼굴이 둥그렇게 살찌고), 멍이 잘 드는 것, 골다공증, 고혈압, 당뇨병, 우울증, 무혈성 골괴사, 백내장, 위출혈, 기회감염의 증가 등이 있다. (아주대병원 류마티스 내과 참조: http://hosp.ajoumc.or.kr/Center/MedicalHealthInfoView.aspx?ai=1108&sc=MP004&ss=MP004&cp=1&sid=&mpc=MP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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