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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Mar 13. 2020

미안해, 엄마

병원에서 돌아와서 쓴 편지

    "진짜요? 진짜 오늘 퇴원해도 돼요? 아싸!"

    열여덟, 퇴원하던 날의 나는 무척 신이 났다. 드디어 이 감옥 같은 다인실에서 해방이라니. 포근한 내 침대에서 잠들 수 있다니. 게다가 밤에는 코를 골다가 새벽같이 아침 드라마를 틀어대는 할머니들도 없다니! 나는 선희가 사다 준 1층 편의점의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퇴원을 자축했다. 보름 동안 꽤 늘어버린 잡동사니들을 챙기면서도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얼굴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 팅팅 붓든 말든 집에 가는 것만이 중요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온갖 검사를 받느라 진이 다 빠져 있었고 이제 곧 중간고사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마음이 바쁘기도 했다.     


    선희, 성우 그리고 나는 우리의 오래된 자동차로 향했다. 우리는 11년이 넘은 진초록색 소나타에 함께 올라탔다. 날씨가 좋은 가을날이었다. 햇볕과 바람이 차창으로 들어오고 나는 보름 만에 만나는 바깥세상이 너무도 즐거웠다. 새로울 것도 없는데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바람을 느끼며 건물에 걸린 간판들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그러나 출발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올라갔던 입꼬리는 어깨와 함께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퇴원을 했다고 아직 몸이 다 나은 것은 아니어서 집까지 가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시간이나 가야 한다니, 도저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힘이 들어 방석 끄트머리를 베고 모로 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고작 차를 타고 있는 것뿐인데, 내 몸을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힘든 건지 기가 막히고 이런 내가 한심스러웠다. 성우는 그런 내게 두툼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 주었고 조금 자라며, 심호흡을 하다 보면 잠이 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희우야, 희우야?"

    선희의 다정하고도 걱정이 촘촘히 묻어있는 목소리에 나는 깨어났다. 여기가 어디더라, 하면서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나는 아직 차 뒷자리에 있었다. 방석을 밀어내며 몸을 일으켜 차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성우의 손을 잡고 아파트로 들어섰다. 다시금 내가 집에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와 닿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집은 전에 없이 아늑해 보였다.     


    "아, 우리 집이다. 우리 집."

    나는 꼭 스무 시간은 비행을 하고 날아온 것처럼 이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신발을 대충 벗어두고 곧장 내 방으로 향했다. 내 방은 깔끔히 치워져 있었다. 새로 한 이불 빨래 냄새가 문 앞에서도 잔잔히 느껴졌다. 면역질환을 앓는 딸을 위해 구석구석 쓸고 닦았을 선희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괜스레 벽을 한 번 쓸어보다가 침대로 뛰어가 누웠다. 흐물거리는 병원 침대가 아니라 진짜 내 침대였다. 한 시간을 달려온 몸이 몹시 지쳐버려서 나는 침대에 몸을 붙이고 새근새근 숨을 쉬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빨래 냄새가 포근해서 꼭 선희의 품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선희는 침대에 걸터앉아 내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성우는 그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고 있노라니 이제는 온갖 줄에 꽂힐 일은 다시는 없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만 이어질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평화는 고작 5분짜리였다. 신난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마자 갑자기 속에서 울렁거리는 느낌이 밀려온 것이다.

    "욱, 우웁."

    나는 이불을 박차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엑, 우엑, 하며 속을 게워냈다. 한참을 그렇게 변기를 붙잡고 있노라니 선희와 성우가 달려 나와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바닥을 내밀고 화장지로 입술을 닦아냈다. 변기 속에는 오렌지 주스가 보였다. 나의 자축 세레모니였던 오렌지 주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게워내서인지 더욱 지친 몸을 이끌어다 침대에 올려다 두었다. 서러워서 눈물이 끅끅 올라왔다. 집에 오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들어서 어떡해, 하면서 이불 끄트러미를 꼬집으며 울었다. 선희는 괜찮다고, 오늘만, 잠시 동안만 그런 걸 거라고 말해주며 내 울음소리에 맞추어 등을 다시 토닥여주었다. 나는 그 바람에 소록소록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컴퓨터를 켰다. 아침을 먹기도 전에, 세수를 하지도 않은 채 부스스한 모습으로. 한글 파일을 열어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훌쩍이기도 했다. 그 글은, 엄마 아빠께,라고 시작되는 편지였다. 내가 병원에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랬던 것 같다.

    “엄마 아빠, 그동안 내 걱정 많이 했지? 나는 괜찮아. 보름이나 병원에 있었지만 이 시간을 만회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몸 관리를 잘하고 열심히 공부할게.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그런 내용의 편지. 나는 편지를 다 쓰자마자 인쇄해서 맨 끄트머리에 손글씨로 몇 글자를 적어 넣었다.

    ‘손에 힘이 없어서 컴퓨터로 씀!’     


    세 장쯤 되는 편지를 스테이플러로 찝어 방 문을 열고 나왔다. 거실에는 몹시도 주말 아침다운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선희와 성우에게 다가가 좋은 아침, 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곤 쭈뼛쭈뼛 내가 쓴 편지를 내밀었다. 선희는 이게 뭐야?라고 하면서 종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성우에게 같이 보자며 옆으로 붙어 앉았다. 나는 내 편지를 선희와 성우가 읽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촐랑거리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멀리서 바라본 선희와 성우의 표정은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보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가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그 날의 나를 떠올린다. 만약 내가 십 년이나 아플 줄 알았더라면, 몸에 호스를 꽂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때 나는 그런 편지를 쓸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내 병에 대해 찾아보고 슬퍼하느라 바빴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고된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처음 든 감정이 미안함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프게 되면 왜 나는 이런 병에 걸렸을까, 왜 나일까, 하는 억울함과 분노가 든다는데. 나는 미안한 감정이 먼저였다. 특히나 선희에게 몹시도 미안해서 그의 손을 꼭 잡고, 나는 괜찮다고, 나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으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절절히 녹여 편지를 썼다.     


    돌이켜보면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내 병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루푸스를 진단받은 후에도 나는, 병원에서 중간고사 준비로 문제집을 쌓아 두고 풀었다.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공부를 그만두라고 했던 말을 기어이 무시하고서. 그때에는 인터넷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아서, 그리고 루푸스는 희귀병이었기 때문에 병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저 내가 내 몸을 공격하는 면역질환을 앓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다. 한 번도 큰 병에 걸려보지 않은 아이여서 그랬을까, 나는 내가 곧 나을 줄로만 알았다. 열다섯 살에 맹장을 떼어냈던 것처럼 그저 한 부분을 치료하고 나면 말끔히 나아지는 병일 것이라, 그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가볍게도 그렇게 무겁게도 생각하지 않고, 어쨌든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루푸스는 낫는 병이 아니었다. 열여덟의 나는 그걸 몰랐고 오직 선희의 고단한 일생에 또 하나의 짐이 된 것만 같아 미안할 뿐이었다.     


    성우는 그때에 오랜 기간 실직상태로 집에서 드라마 아이리스만 보고 있었고 남동생 웅이는 한창 사춘기라 방문을 굳게 걸어둔 채 지냈다. 또 우리는 성우가 실직 전에 벌였던 지방자치 선거 여파로 큰 빚을 떠안고도 있었다. 선희는 퇴근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설거지를 하고 우리에게 저녁을 차려주었다. 열여덟의 내가 보기에도 그에게 믿을 것이라곤, 오직 공부 잘하는 딸내미인 나 하나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선희를 구해주고 싶었고 스스로 그의 돌파구를 자처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선희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사회에 나가 돈을 많이 벌어 선희를 호강시켜주고 싶었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가진 내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쓰러져 버리다니. 나는 선희의 유일한 숨구멍인데. 나약한 나 자신이 한심했고 선희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던 것이다. 내 몸이 얼마나 어떻게 아픈 건지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채로.     


    편지 속의 앞으로 몸 관리를 잘하겠다는 말도, 나와 내 몸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루푸스를 호전시키기 위한 방법은 전혀 모른 채로 막연히, 선희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했던 말일뿐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내가, 이 사실을 가장 뒤늦게 알았지만.     


    선희는 지금도 내가 열여덟이던 때를 이야기하다 보면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정말이지 누가 내 무릎을 탁, 하고 꺾는 것 같더라. 정말 죽고 싶었어.."하고 뒤에 이어지는 말은 "너희 아빠는 실직 상태지, 너희 둘이 고등학생이라 돈이 많이 들지, 대학원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지, 선거 빚은..."으로 이어지는 말이 항상 줄줄이 고구마처럼 끄달려온다. 나는 그런 선희의 마음을 그때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지키기보다는 엄마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었던 것이겠지. 열여덟의 나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철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성우는 자신의 몫 그 이상을 해내는 든든한 가장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프고 심지어는 호스를 달고 있으며 앞으로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막막하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선희에게 더 미안해하고 싶지 않다. 가끔은 선희가 밖에서 서울대 나온 딸내미는 뭐해?라는 질문을 듣더라도.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숨만 쉬는 날들을 보내더라도, 왜 나는,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며 자책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살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우리는 함께 사는 사람들이니까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고 열여덟의 나에게 나라도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를 또 살아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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