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읽고,
언젠가는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지난겨울 수리 작가님의 책장에서 반갑게 만나 업어왔다. 예순여덟의 할머니가 쓴 글을 보면서 맞아 맞아, 나도 그래! 하면서 신체의 둔화를 공감하는 일은 재미있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다만 짙은 공허함이나 무력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던 것은 작가의 자유롭고 솔직한 몸과 마음 덕분이었다.
누워서 책을 읽는 중에 엄마가 나를 불렀다. 안방 침대에 엄마와 마주 앉아 있는데, 엄마가 손으로 쓸어 넘기는 머리칼 안쪽 부분이 새하얀 걸 발견했다. 늘 알고 있었는데도 생경하게 새하얘서 깜짝 놀랐다. 우리 엄마는 몇 살이더라….
다시 방으로 돌아와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때부터는 내가 아니라 엄마가 자꾸 생각났다. 우리 엄마도 무릎이 자주 아픈데. 우리 엄마도 어제 일은 전생 같다며 생각도 안 난댔는데. 아직 같은 물건을 모르고 두 개 사지는 않지만... 하면서.
엄마가 식탁에 붙여두었던 종이쪽지를 슬쩍 방으로 가지고 와 일기장에 붙여 두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엄마의 쪽지를 받을 수 있을까? 문득문득 이 날들이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 같아 먹먹하다. 아, 이 책에 관해 기록해두기에는 너무도 진한 감정이라, 어쩐지 사노 요코의 훈계를 들을 것만 같다.
나는 다시 책 속으로 파고든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용기 있게 직시하는 사노 요코를 닮고 싶다. 첫 장부터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하고 툭, 내려놓는 씩씩한 마음을 내 안에도 잘 담아야지.
[좋았던 문장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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