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베 얀손, <여름의 책>을 읽고.
실은 이 책을 소화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만약 누군가 내게 이 책이 어떤 책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참 동안 눈을 굴리고 뜸을 들일 것이다. 그러게, 음.. 아무래도.... 하고 무슨 말이든 덧붙이기 위해 애쓰지만 사실은 그조차 너무 어렵겠지. 이 책은 얇고 작은 핸드북이지만 한참을 되짚어가며 읽게 되어서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아리송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문의 추천의 말처럼,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 다 있다"라는 것뿐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수많은 장면에 그어진 밑줄들을 보며, 어쩌면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사랑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는 '할머니'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아마도 가장 멀고도 가까운 할머니인 것 같다. 괄괄하게 다정한 할머니와 사랑스러운 고집쟁이인 소피아의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온다. 북유럽에 자주 주어지지 않는 쨍한 여름 날들 속에는 진실에 너무 가깝고도 유쾌한 말들이 나온다. 소피아는 책의 초반부터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언제 죽어?" 그러자 할머니는 "얼마 안 남았지. 하지만 너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답한다. 죽음과 죽음 다음 세상에 대한 이야기, 고양이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방인과 친구의 이야기, 아무렇게나 내디딘 발에서 생명을 잃는 작은 곤충들과 낚시 바늘에 찔려 두 동강 나는 지렁이의 이야기.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소피아처럼 한 마디를 했겠지. "가끔 이런 일도 생길 수 있지."라고.
나는 어린 소피아보다 더 자주 할머니에 가까웠다. 신체의 나이 듦과 함께 오는 생각의 노화를 너무도 잘 알 것 같았다. 한참 전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 해냈던 일은 조금씩 바스러지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은 순간들에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여름날 작은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며 다른 무엇보다도 삶의 언저리를 더 자주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의 끝에서 할머니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변화들을 사랑한다. 아이와 함께 건넌 여름을, 할머니는 아마도 아주 많이 사랑했겠지. 몸이 괜찮은 쨍한 여름날에 이 책을 다시 한번 찾아 읽고 싶다. 소피아와 할머니의 진실에 너무 가깝고도 유쾌한 대화에 더 눈길을 두는 여름날이면 좋겠다.
[좋았던 문장들]
-"소피아. 이건 정말 싸울 문제가 아니야. 다 끝난 다음에 벌까지 받지 않아도 인생이 그 자체로도 충분히 힘들다는 건 너도 알겠지. 죽으면 위로를 받는 거야. 그런 거지."
"하나도 안 힘든데." 소피아가 말했다.
-이상한 일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이제는 설명할 수가 없네.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내가 노력을 덜한 건지도 모르지. 너무 옛날 일이야. 지금 있는 사람들은 다들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 내가 마음이 내켜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한, 그때 일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되고 마는 거야. 다 덮이고 끝나는 거지.'
[...]
소피아가 떠난 다음 할머니는 담요에 몸을 감고, 텐트에서 자는 게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이제 좀 더 기억났다. 사실 꽤 많이 기억났다. 여러 인상들이 새로 돌아왔다. 점점 더 많이. 동틀 녘이 되자 추웠지만, 체온으로 편히 잘 수 있었다.
-소피아는 일어서서 외쳤다. "이렇게 말해 줘. 나는 천천히 죽어 가는 모든 게 싫다고! 나는 내 도움을 받지 않는 것들을 미워한다고 해 줘! 다 제대로 썼어?"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을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할머니는 한숨을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 소피아가 말했다. "가끔은 내가 이 고양이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얘를 사랑할 힘이 없는데. 그래도 계속 얘 생각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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