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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Aug 31. 2022

허준이 교수의 졸업 축사 (feat. 후배의 감동)

내가 서울대를 졸업하던 해에는 당시 핫했던 방시혁 대표가 와서 전체 졸업식 축사를 해주었다. 학교에 참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가 축사를 맡았다고 들었다.


친구들이 단톡방에 허준이 교수의 졸업식 축사를 올리며, 온전한 행복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데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축사를 듣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기쁠까, 얼마나 따뜻할까,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물론 너무 벅차고 들떠서 축사를 오래 곱씹을 마음이 안 들던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먹먹하게 벅찼던 그의 말들을 옮겨 적어 본다.


제 대학 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허준이 교수의 이전 인터뷰를 읽었을 때에도 '단단한 분이시구나.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마주하며 스스로에 가까워진 사람이구나' 느꼈다. 그래서 부러웠다.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이의 단단함을 나는 도무지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데 그에게도 오랜 고민의 시간이, 길 잃음의 연속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후배들에게 기꺼이 전해주었다는 사실이 몹시 고마웠다.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어려움을, 지난 시간의 흔들림을 이야기해준 덕에 '감동의 축사'로 회자되는 것일 테다.



날이 너무 흐려서 과한 보정이 들어간 졸업식 사진...


2019년도 겨울의 졸업식, 방시혁 대표가 왔다는 본 졸업식에는 사람이 너무도 많아 가지 못했다. 대신 따로 진행하는 정치외교학부 졸업식에만 갔던 기억이 난다. 학부 생활 내내 몸이 아파 대학 졸업은 가능할까? 걱정했던 부모님은 눈시울을 붉혔다. 문화관 대강당에서 단대 교수님들의 말씀을 함께 들으며, 나는 내심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다정한 언어를 쓰시는 분들에게서 오래 배웠노라고. 아픔을 안고 있지만 학부를 졸업하노라고, 걱정 많은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것만 같아서.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공부하던 자신을 잊지 않고, 꾸준히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말씀. 그리고 틀 안에 자신을 가두기 보다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라 하시던 말씀. 용감하게 나를 찾아 헤매도 괜찮다던 말씀. 졸업 덕에 뿌듯함을 안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아픔을 가지고 있던 내게는 뜻깊은 말씀이었다. 그 말씀들이 때로 삶의 지침이 되어주기도 한다.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좋았던 것은, 교수님들의 섬세하고 다정한 언어들이었다. 무엇도 단언하지 않고 흔들림의 과정을 사려 깊게 생각하는 언어들을 참 좋아했다. 좋은 어른들이 계셔서 다행이다,로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수없이 마주한 어른들의 말씀이지 않았을까 싶다.


흔들리면서도 더 나은 자기 자신에게 닿아본 경험이 있는 어른들의 말씀을 좋아한다. 기꺼이 타인의 마음 뒤편을 상상하고 친절한 말을 건네는 분들을 만났던 시절을 떠올린다.


학부 졸업식에서 기쁘지만 아쉬웠던 마음이 컸다. 아픈 시간이 많아서 마음껏 그 시간을 겪어내지 못한 것 같았지. 어느 시기의 '끝'이 주는 돌아봄이 아쉽지 않으려면, 매일을 온전히 경험해야 하겠지. 허준이 교수의 말을 이 여름의 끝에서 붙잡아 본다. "하루하루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을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허준이 교수의 축사 전문: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878305&plink=ORI&cooper=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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