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우 Jun 16. 2022

병원 가는 날 나들이

이식 수술 D+595, 병원에 다녀와서


아스라이 옅어지는 것 같던 오랜 입원의 기억은 후각과 함께 되살아난다. 외래 진료를 보는 공간에서는 주로 각자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기에, 눈으로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화장실의 물비누 냄새, 채혈실의 손소독제 냄새를 맡을 때마다 아찔해진다. 닭살이 돋을 정도로 생경하게 단말마의 기억이 스쳐갈 때도 있다. 그럴 땐 누가 내 뒤통수에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넌, 여기에 있었어. 언제 또 그럴지 모르지. 


그러면 물기를 털어내듯 손을 툴툴 털고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고 숨을 깊게 쉰다. 그래, 난 여기에 있어. 언제 또 그럴지 모르지. 하지만 난 지금에 있기도 해. 두 달에 한 번 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계절 계절의 병원을 누빈다. 대기실, 진료실, 병원 안 푸드코트에 내가 남겨온 발자국을 덧입힌다. 서걱거리는 환자복을 입은 나를 통과한다. 그 시간을 부정하지도, 지금을 마냥 찬사 하지도 않는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충분히 현재를 산다. 그저 그뿐. 


컨디션이 좋아지고 활동량이 늘어난 요즘은 병원 대기 시간에 대학로로 나간다. 많이 아파 복수가 차고 뒤뚱뒤뚱 걸을 때에도, 엄마는 병원에 올 때마다 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갔다. 삼청동, 연남동, 통인시장, 창경궁 등을 누비며 병원에 오는 날을 즐거운 외출의 기억으로 색칠해 주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데리고 돌아다닌다. 오늘은 예쁘게 꾸며진 책방 겸 서점, '어쩌다 산책'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공간이 주는 안식을 찾아서. 정말 병원에 들른 김에 어쩌다 산책하듯이, 부러 길을 돌아가며 파아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누렸지. 다시 진료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길에는 10분 일찍 나와 하루 필름 사진을 찍었다. 편한 차림의 나를 남기는 것도 좋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움직이는 초시계에 우왕좌왕했지만 그것도 그 나름의 추억이 되지! 좋다, 병원에 온 게 아니라 대학로 나들이를 온 기분.


엄마가 내게 해주었듯이 내가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운다. 아찔한 병원의 냄새도 커피 향과 여름 바람에 훌훌 날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하루필름 사진: 

- 휴대폰 화면 속 사진은, 첫 책 <당연한 하루는 없다> 표지 이미지랍니다! :)


-희우 작가 일상과 조각글이 담겨있는 인스타그램에서도 만나요:

https://www.instagram.com/heee.woo/


-희우 작가의 프라이빗 에세이 연재는 '희우의 선명한 오후' 네이버 프리미엄 채널에서:

https://contents.premium.naver.com/sunharoo/heewo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