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각은 매우 흥미롭다. 영혼은 하나같이 자신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궁금해한다. 어떤 표정이었는지,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후회가 남았는지, 행복했는지, 생의 기한이 정해져 있는 삶은 어떠할까. 나 또한 전생에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간혹 만취한 기억 속에 흐릿한 전생의 기억, 혹은 다른 이의 기억이 연인과 마주보며 피우는 담배 연기처럼 뒤섞인다. 계절에서 계절로 넘어가는 순간의 냄새처럼 아주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저승으로 가기 전 영혼이 이승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대다수의 영혼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죽음을 알리고 하소연을 들어주고 마지막으로 그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승으로 보낸다. 그 메시지는 이승의 바람이 되어 흩어지거나 어떤 목소리의 형태로 메아리가 되어 떠돌기도 한다. 혹은 들판의 이름 모를 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도 한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인간을 구경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다. 결코 내가 가질 수 없는 재능이랄까.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권, 감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알 듯 말 듯 하다.
요즈음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저 위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업무 지시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전 세계 중 유독 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이란 나라는 질병이 아닌 우울증을 이유로 자살하는 20대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처럼 우리도 각국 정상들이 한곳에 모여 회의를 한다. 복지가 그렇게 좋다는 북유럽은 백야 때문에 자살하는 인구가 많다는데.
영혼들이 술집에 머무는 기간이 평소보다 길어지고 있다. 일주일에서 보름까지 머무는 영혼이 많아져 시간 외 근무도 늘었다. 이렇게 해서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을 들여야 할 판이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는데 퍽 난감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젊은 녀석이다. 그런데 그는 좀 유별났다.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하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작가 지망생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이 있는데 한 번 읽어 보겠나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장식장에 있는 오래된 위스키들 사이에 꽂혀있는 여러 개의 가죽 노트 중에 하나를 골라 내 눈 앞에 들이민다. 그는 노트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펼쳐 보인다. 그런데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속이 빈 노트였다. 순간 어안이 벙벙한 말투로 미간을 찌푸린다. 그가 죽기 직전의 주마등을 본 것일까. 잠깐 기억이 되살아 난 듯했다. 5초 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원래의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대화를 기록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우리의 대화가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라고 했다.
이 자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잃고 항상 처음으로 되돌아가도 아무렇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 다시 태어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
곤란한 일이다. 기록하는 순간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힘들이지 않고 설득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사람에게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을 해야겠다.
당신은 영생을 살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일단 지금 당장 기록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작 가를 하면 안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건, 동족의 피를 먹어야 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
“당신, 만약 영생의 삶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쓸 생각이지?”
“이미 죽은 거라면... 마다할 이유는 없겠죠. 하지만 그 전에 여쭙고 싶은게 있습니다.
꿈이라면, 이 현실 같은 꿈은, 내 무의식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불의의 사고로 중환자실에 누워 코마상태에서 이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궁금합니다. 생각해 내려고 애를 쓰는데 도통, 머릿 속 안개가 자욱 해 떠오르질 않는군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방식으로 떠올리면 되지 않겠나.
굳이 내 입을 빌려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때론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들은 알아서 지워지기도 하니까.”
남자는 바 선반 계산대 옆에 있는 팁이 잔뜩 들어있는 유리병에서 쪽지를 한 장 꺼낸다.
그리곤 종이를 펴서 내 앞에 들이민다.
“아까 말한 계약서. 여기 싸인하는 순간 바로 시작이오”
그가 말한 ’영생의 삶‘을 수락한다는 내용이다.
소설의 소재는 대충 정해졌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럴려먼 마지막 기억이 떠올라야 하는데, 도통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퍼즐의 마지막 부분을 누군가에게 도둑맞은 느낌이다.
그리운 얼굴을 떠올린다. 보고 싶은 사람.
가족의 얼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삶을 선택했을까. 이 제안은 모두에게 하는 것일까. 제비뽑기처럼 확률로 돌아가는 것일까. 문득 그 기준이 궁금해졌다. 왜 하필 나란 말인지.
내가 원했던 삶은 이게 아닌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귓가에서 나지막하게, 눈가에 물기를 머금은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물 안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위를 쳐다보는데 아른거리는 햇빛이 나를 찾는 느낌이다.
그리움도, 익숙한 감정도 아닌 물음표가 떠오른다. 물음표는 어느새 거대한 고래가 되어 머리 위를 지나간다. 왜 때문인지 고래의 지느러미를 붙잡고 싶어진다.
“당신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수락해도 손해 볼것이 없네”
내 앞의 사내가 재차 강조한다.
“잠시 준비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