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산 위스키의 주인

by 히핀


“그래그래. 얼마든지. 밤은 길어. 마침 당신의 방문에 맞춰 들어온 위스키가 준비되어 있네. 이 병의 바닥이 보이기 전까지 결정하면 되니까. 자자 내 손수 한 잔 따라드리리다.”


주인은 천천히 위스키를 한 모금하며 생각에 잠긴다. 위스키 라벨에 숫자 44년이 적혀있다. 인생 44년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는 이 술은 누가 만든 것일까. 100년 산을 마시고 간 사람도 있었을까. 만약 100세까지 살았다면 어땠을까. 죽고나서야 미래를 과거형으로 말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호기심 때문에, 지난 생으로 돌아간다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또 있을까. 한편으로는 그 바보 같음이 지난 날을 살게 한 것인데.

죽음의 문턱에서 생의 욕망이 되살아나다니. 너무 늦어버린 것일까.


그는 이 장소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려본다.

이곳은 높이를 알 수 없는 각종 위스키가 진열되어있는 선반과 영혼이 깃들어 있을 법한 나무조각품까지, 실제 상여를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물건들이 보기 좋게 장식되어 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길을 안내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데,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향기 때문일 것이다. 가게 내부는 족히 1000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가 내뿜는 향과 절에서 피울 법한 향초의 냄새가 더해져 요람과 무덤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은 우주로 쏘아진 실험용 우주선 같다. 그 안에 얌전히 갇힌 원숭이가 우주선이 발사하며 생기는 엄청난 굉음에 충격과 공포로 심정지로 생을 마감하게 될-마치 벽 사이에 영혼이 갇혀 육체는 내부로부터 폭발을 거듭하고 재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형벌을 받는 느낌이다.

그랬었는데 이곳에 오면 알 수 없는 안도감이 생긴다.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죽여야 하는 죄책감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주인양반, 라가불린 8년산 스트레이트로 한 잔 부탁하네.”


벌써 일주일 째,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시키는 손님이 있다. 온통 검은색 정장 차림의 이 손님은 자정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한다.

누군가와 같이 오는 법이 없다. 항상 혼자다. 그리고 옷깃에선 비를 머금은 풀잎 향이 난다. 꽤 사연 있어 보이는 외모인데,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될 듯한 느낌이 들어 결코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나를 굉장히 오래전에 알던 사람인 것처럼 대한다.

기억은 없지만 묘한 기시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족히 300년은 산 듯한, 인생의 희노애락을 다 겪은 그의 표정과 상반되는 주름 하나 없는 청년의 얼굴. 모진 고행을 겪고 해탈한 부처님의 얼굴이 이런 모습일까. 인자한 표정에 언뜻 보이는 피곤에 절여진 모습.

그럼에도 매력적인 외모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오늘도 홀로 텅 빈 술집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또 같은 술을 주문한다. 어김없는 매일이 반복된다.

어느 날, 길고 긴 적막을 깨고 그가 먼저 말을 건다.

이 장소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자신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주는데...


맙소사 그는 자신을 악마 비슷한 무언가라고 이야기했다. 아무리 꿈을 현실처럼 잘 꾸는 나이지만 이렇게 흥미로운 꿈을 꾸고 있다니.

깨어나자마자 노트에 적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온 정신을 그의 칠흑 같은 깊은 눈에 집중한다. 눈동자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생에서의 마지막이 보인다고 한다. 이어서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펼쳐진다고.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주마등처럼 전 인생이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간다고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걸까.

인간 세상에서 죽은 육신을 담당하는 장례지도자처럼 사후의 영혼을 관장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것일까. 그는 별건 아니라며 저 위에서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명령을 따를 뿐이라고 했다. 인간 세상에 비유하자면 일종의 공무원 같은 것일 테지.


“일주일의 시간 동안, 무엇이든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일단 뭐부터 할건지 이 계약서에 쓰기만 하면 되오. 혹여 보안이 걱정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네. 이 계약서는 당신과 나만이 볼 수 있소. 다른 이들의 눈에는 텅 빈 백지로 보일 것이니.

내가 볼 수 있는 건 일주일 후 계약종료를 알리는 도장을 찍을 때 한 번뿐이라네.

이승에서의 법규는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으니, 어떤 내용이든 상관은 없소.

단, 한 가지 예외는 있는 법. 신을 죽인다는 내용 말이오”


너무 오랜시간 과거의 기억에 빠지게 해서는 안된다. 그럼 영혼이 현생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주인에게 말을 건다. 그가 하는 머릿속 혼잣말은 입을 열지 않아도 들린다. 물론 저쪽에서는 알 리 없지만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주인은) 또 다시 독백을 이어나간다. 한 편의 모놀로그에 등장하는 주연배우처럼.

이대로 소멸을 택할 것인가. 아니다. 이미 죽은 몸이라면 소원에 한도가 없을 것이다. 응당 영생의 삶이라면 영원한 젊음과 끝없는 부가 함께여야 하지 않나. 이 둘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영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평생 눈치만 보며 살았다. 내키는 대로 질러 본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핑곗거리가 필요하다.

당장 5년 후의 미래, 100년 후까지 가 본다. 뱀파이어가 되어 있을까. 모든 욕망을 다 이루고 채울 수 없는 갈증 때문에 결국 인간의 피를 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영생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끝에는 항상 나 혼자다. 그렇다면 동반자도 함께. 동족이 필요하다. 나와 같은 것을 갈구하고 영생을 함께 살 수 있는.

살면서 로또에 당첨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그래 5만원 한 번 된 적 있었지. 복권 20억에 당첨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일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내 앞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영원한 젊음, 마르지 않는 돈, 죽지 않는 삶. 내 삶의 동반자. 이것들 중에 한가지면 됩니다.’

“좋소. 이것으로 계약체결이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곳에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오. 부디, 안전한 여행이 되길 바라며.”

‘최후의 선택을 마음껏 즐기시길.’

사내는 담뱃갑에 남아있던 마지막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한다.

“출구는 바로 뒤편에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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