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이라고 치부하는 것. 의심을 멈추고 기꺼이 가장 낮게 엎드리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그 책 속의 주인공에게 자기 자신을 대입하고 어떻게든 그를 둘러싼 이야기의 흐름과 밀도에 흠뻑 취해야 한다. 읽음을 기뻐하던 나는 그 과정을 좋아했다. 마음을 떠맡기고 온전히 그가 되려는 노력 끝에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악인은 선해지고 때로는 연민과 애정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런 진실들을 찾아낼 때마다 어린 나는 더 크고 둥근 사람이 되었고 악인이라고 오해받는 누군가를 언젠가는 구해낼 수 있다는 영웅감에 크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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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결국 견딜 수 없는 현실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괴로운 현실에 어떻게든 동화되어야 하는 걸까. 쓰디쓴 거짓들을 기억하고, 타이르고 몰아내기 위해서는 도망치지 않고 진흙탕 속에서 질퍽이며 함께 굴러봐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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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이라는, 이 쉽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는 그마저도 축복이라 할 수 있는 큰 혜택을 받은 젊은 나와 네가 자본 앞에서 얼마나 견딜 수 없어지는 지를 어른들은 얼만큼 알고 있나. 또한 견딜 수 없는 채로 천천히 무뎌지고 마침내는 혐오하던 그 누군가를 똑같이 닮아가리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얼마나 슬프게 예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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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도 악이라고 치부되는 현실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문화와 과거와 잔재들이 있다. 동화되면서도 마침내는 뛰쳐나와서 언제든 고발하고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또 다른 주인공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그 악함을 이해하려고, 살아내보려고 마음 먹는다.
적어도 나중에 도망쳤다고 변명하는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서. 언젠가는 오늘의 말들을 꼭 제대로 써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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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면 늘 나보다 앞선 뒷모습들이 있다. 언제나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 가장 바닥이 아님을 기억하고 덜 불평해야 겠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이 꽤 멋지고 옳다는 믿음은 놓지 말았으면. 방향이 같다면, 인생이라는 나침반 위에서 시간과 비교는 무의미하다. 그 문장으로 한 달이라도 살아봐야겠다.
당신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