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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Apr 16. 2018

01. 그 공원, 그 비둘기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조용히 김이 어린 눈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어린이가 된다.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린다.

인부의 낡은 작업복에선 황사바람에 굴러온 사금파리 조각같은

이국의 꿈이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오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돈을 벌기 위해 바깥에 나가면 어른들은 고생한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동료들도 그랬다.

우리는 수고스러움을 칭찬하며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고 목을 빼들고 약속했다.

밥이나 술을 꿈 대신 들이키며 허한 위장을 달래면

당연하다는 듯 등을 돌려 헤어졌다.


그렇게 서서히 잃어갔다.

집에 돌아오면 일을 나가기 위해 서둘러 잠을 잤다.

일어나면 하루 종일 살아 있는 척을 했다.


감정이나 의구심이 정신의 빈 틈으로

기어나올 때마다 눈을 내리깐 채로 몸통을 짓이겼다.

미안해라는 말도 사치였던, 바퀴벌레같던 시간들.



내가 처음으로 타인이 정해둔 길이 아닌

나의 삶, 나의 젊음, 나의 자유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인생 전체를 끌어가겠노라 마음 먹었을 때,


해가 비치는 공원에서 비둘기들은 울었다.


어딜가나 삶은 지옥이라고, 여기나 저기나 똑같을거라고.


그 중 우두머리쯤 되어 보이는 새는 말했다


'이 밖을 나가면 너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다.

인간들이 무리를 이탈한 자에게 주는 것은 오로지 안타까움 뿐.

나는 그렇게 내던져진 공원의 많은 부랑자들을 알고 있다.'


세월에 따라 씻겼다가 다시 굳어버리기를 반복한 먼지들이

그의 가슴털을 더 수북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군림하는 듯 보였지만, 실은 그 또한 착취당할 뿐임을

나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공원에는 그와 같은 우두머리가 수 백마리도 넘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번도 다른 종의 새를 본 적이 없다.




사회로 나오기를 준비하며 꿈을 꾸던 날에

스스로 써놓고 가두어 놓은 다짐들이 있다.

훗날, 모든 고생과 회한의 길을 돌아왔을 때

그제서야 꺼내서 멋지게 이뤄나가리라 소리쳤던 이야기들.


남들 다 어렵게 들어간다는 직장을 나오고 나서

일주일이 흘렀다.

열심히 그 곳을 다니는 친구들,

말은 못해도 아쉬워 하시는 부모님,

아침에 눈을 떠서 홀로 멍하니 있는 나를 보며

여전히 무섭고 떨리고 불안하고 겁이 난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만큼, 더욱 큰 깊이와 무게로.


그럼에도 후회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내가 믿었던 시절들을 더는 외면하고 싶지가 않았으니까.

새로운 길을 걷는 동안 무릎이 깨지고

피가 흐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난이 있더라도,

그 곳도 똑같은 지옥임을 깨달을지라도,

분명 쉽게 갔던 예전의 길보다 나는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으며 성장해나갈 것이니까.



왜 우리는 날아오르려는 꿈을 살아 있는 채로 봐주지 못할까?

나중을 위해 박제해두고 액자 속에 걸어두는 걸까?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라도 하면 귀를 막은 채로 밤새 열병을 앓으면서.


꿈이라는 이름의 나의 새를

아주 오래 방치했다가 세상에 놓아주는 기분이다.


네가, 우리가 영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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