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나라 파키스탄 여행기
안녕, KKH(카라코람 하이웨이)
'북인도 갈래?'
2017년 초여름. 당시 대학원 영화과 단편 과제로 넌더리가 났던 나에게 구남친은 인도행을 추천했었다. 이곳만 떠나면 될 것만 같았던 나는 두서없이 '콜'을 외쳤고, 도망치듯 떠난 나에게 라다크는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엄청나게 큰 산과 강. 광활한 자연 안에 작디작은 유한한 내가 서 있다는 실로 낯선 그 감각은 처음에는 두려움을 일으켰지만, 이내 아름다운 곳에서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한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더욱이 사주에 토기운이 4개나 있어서인지 인간 바위산인 나는 한국에 와서도 바위산이 그득한 라다크를 8년 동안 그리워하며 진한 가슴앓이를 했다.
그러던 찰나, 인터넷에서 잠시 화제가 되었던 카라코람 하이웨이 사진을 본 순간 마음이 울렁였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산맥과 그 산맥을 감싸고 있는 하얀 구름들의 향연. 이곳을 다녀오면 필히 라다크와 같이 긴 세월 향수병을 느낄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카라코람 하이웨이 사진을 캡처해 두었다.
이후로는 사실상 파키스탄에 갈 생각이 없었다.
간간이 자린고비처럼 퇴사가 마려울 때마다 파키스탄 여행 채팅방에 들어가 간간히 올라오는 파키스탄 여행 정보들을 얻으며 여행에 대한 욕망을 해갈하곤 했다.
그러던 작년 겨울 직장 3년 차 마의 구간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욕구가 솟구친 나는 캡처해 두었던 카라코람 하이웨이 사진을 다시 발견하자마자 당장 이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다 달았다. 그리고 재빠르게 적금을 체크한 뒤,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봤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파키스탄 훈자에 있습니다.‘
파키스탄이라는 구글의 대답에 잠깐 멈칫했다. 나에게 있어서 파키스탄은 <007> 같은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안타고니스트 탈레반이 살고 있는 나라로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쫄보가 혼자 갈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이번에는 구글에 ‘여자 혼자 파키스탄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지만 딱히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용기 있는 여성 선지자 두세 분들의 게시물뿐. 그분들은 이미 건강하게 햇살에 탄 프로 배낭 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갇혀 초호기 같은 거북목을 가진 창백한 나도 저렇게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사진 속 웅장한 바위산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렸다.
그러다 일련의 이별과 여러 큰 사건들이 일어났고, 너무나도 많은 사건 사고에 지친 나는 광활한 바위산이 정말 그리웠다. 또다시 너무나도 큰 자연 아래에서 압도되고 싶었다. 그리고 자아실현 욕구 말고 그냥 진짜 욕구 삼각형 중 제일 아래에 있는 본능적인 욕구만 충족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었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3주간 파키스탄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선언을 했다. 원래 일단 다이어트나 금연도 주위 사람들에게 크게 떠들어야 진짜 실행에 옳기는 나는 긴가민가했던 내 마음에게 ‘일단 직진!’이라는 선언을 하기 위해 내질렀다.
하지만 여행 카페나 단톡방에 함께 여행할 사람을 모집했지만 그 누구도 동행하겠다는 연락을 준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시련이 있었다. 본래는 3월에 파키스탄 여행을 가려했지만, 3월 한 달 ‘라마단’ 기간에는 상점가들이 대부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훔치며 4월로 여행기간을 한 달 유예했다.
유예하는 참에 좀 더 정보들을 얻기 위해 파키스탄 여행에 대한 검색을 했고, 울산에 사는 소영 님의 블로그 여행기를 발견했다.
소영 님의 블로그 글에는 자세한 파키스탄 여행 꿀팁들이 있었고, 이외에 궁금했던 부분들을 질문하기 위해 소영 님이 사시는 곳으로 가 소영 님에게 많은 여행 질문들을 했다.
신기하게도 파키스탄 여행 관련해서 질문을 하러 직접 소영 님을 만난 사람이 내가 두 번째라고 했다. 첫 번째로 소영 님을 만난 사람은 여행을 잘 끝마쳤을까?
소영 님의 꿀팁들은 다음과 같았다
*성희롱을 당했을 때에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러라
*핸드폰 유심칩은 아시아 통용 유심칩을 구매하는 편이 좋다
*훈자에서 다양한 갈 곳이 있는데, 날씨에 따라 변수가 있으니 여유 있게 일정표를 짜라
프라하 이후 홀로 가는 두 번째 여행이 파키스탄이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었었는데, 인도보다는 약한 맛이라는 소영 님의 말에 조금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인도 여행을 하면서
해진 이후로는 밖에 나가지 않기, 구석진 곳은 다니지 않기, 모르는 사람의 호의는 거절하기
라는 안전한 여행을 위한 법칙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만 준수하면 반은 안전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3주 동안 이슬라마바드-> 라호르->훈자 루트로 계획을 세웠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갔던 북인도 여행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경우의 수를 대비할 아이템들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