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과 미술관

by 영희

하루하루 마음을 잘 정리한다고 했는데

어제는 몸도 마음도 조금 피곤했다.

문득

다른 세계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 후에 예술의 전당으로.

미셸앙리의 작품 속으로 폭설과 함께 걸어간다.


새하얀 눈길을 뚫고

붉고 환하고 화려한 그의 세계 앞에 선다.


정물이 아닌 상상 속의 꽃들이

유럽의 도시 이곳저곳에서 흩날리고 있다.

투명한 화병에 있는 꽃처럼

나도 저곳에 투명한 마음으로 찬란하게 서 있을 테다.


그러다가 체리의 계절이라는 작품 앞에 멈춰 섰다.

인생의 즐거움이 작품에 가득가득했다.

아, 저 붉고 상큼한 체리를 먹어야지.

매일매일 즐거움을 먹어야지.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엽서를 샀다.


그리고

붉고 환한 그의 색이 가득한 이 그림.

꽃이 천장을 뚫고 나갈 듯 위로 시선이 가 있지만 아래에 체리와 사과가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인생에서도 무게 중심을 잡고 안정감을 주는 건 이런 소소한 것인 것 같다.

달콤하고 상큼한 작고 소중한 그런 시간


일의 세계에서 잠깐 나와서

샹송과 꽃향기 가득한 전시장에서 미셸앙리를 만났다. 그의 작품 속에 있는 사인을 보니, 마치 그가 나에게 사인을 해 준 것 같았다.


영희야.

오늘도 수고한 너의 머리를 쓰다듬고

네 발을 가만히 만져본다.

온 맘을 다해 사랑한다. 영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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