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을 듯 나을 듯 낫지 않는 감기와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업무가 지속되면서
말하지 않아도 내가 지쳐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출장과 보고와 야근, 그리고 또 주말야근을 예약하며
이렇게 나를 내버려 두기가 싫었다.
어떻게든 일이 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다.
광화문으로 갔다.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를 만나러.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그리고 모더니즘의 시작
600년을 담는 전시였다. 벽지색이 변하며 시대가 바뀌고 물감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표현이 달라졌다.
중세보다 입체적인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와 북구의 르네상스는 또 달랐다. 빛을 중시하고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은 바로크, 귀족과 화려함 로코코, 느낌대로 대담하게 그린 인상주의. 그리고 모더니즘의 시작
나는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이 보고 싶었다. 막상 그 앞에 섰을 때 대담한데도 섬세해 보이는 빛 표현에 감탄했다.
늘 눈길이 머무는 수잔 발라동이 반가웠고
처음 본 모딜리아니의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만난 작가는
라울뒤피다.
그저 바라보고 노을인가 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집에 와서는 그 사진만 보고 있다.
파리의 센강
그저 마음이 편해졌다.
과하지 않은 색감과 잔잔한 물결이
하늘의 노을이
자꾸만 나를 쓰다듬는다.
나는 정말로 파리의 센강 위 다리에 서서
저 하늘과 물결과 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평화롭다.
"삶은 나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 지었다."
그가 말하는 것 같다.
일도 감기도
이 피로도 그렇게
그렇게 흘러간다.
다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