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란 뭘까.
봄에 연둣빛으로 눈부시게 피어나던 잎들은
이제 다시 땅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눈부시게 빛난 채로.
가을 나무를 보고 있으니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도
그저 나뭇잎이 아니라
빛이 구나. 빛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구나 싶다.
나는 지금 헤이리다.
음악이 듣고 싶어서 헤이리에 왔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합정역에서 2200번 버스를 타고
이렇게 훌쩍 길을 나서는 이 기분이 참 좋다.
음악감상실로 간다.
둔탁한 철문을 열면 소리로 가득 찬 공간이 나타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빈티지 스피커를 타고 들리는 음악 가득한 공간에
내 마음과 귀가 점점 적응을 한다.
처음 듣는 클래식인데도
아. 좋은데. 싶다. 눈을 감아본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속으로 낭송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여긴 앞으로 내 숨구멍이 될 것 같다.
하루 휴가를 쓰고 훌쩍 오고 싶은 곳.
음악을 듣고
시를 생각하고 싶은 곳
그저 그렇게 앉아서 나를 풀어놓고 싶은 그런 곳.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