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는 아닐 거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잊을만하면 주인공이 변호사인 작품이 나오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시생일 때,
드라마 속 주인공이 별로 공부도 안 하고, 매일 연애하고, 돌아다니고, 그러다가도
[몇 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검사가 되어 있고, 변호사가 되어 있고....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나는 죽어라 해도 안 되는 변호사가 참 잘도 되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드라마 속에서 다양한 직업군을 다루고 있고,
변호사나 검사 판사가 뭔가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정도가 예전보다는 약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법조인인 아닌 분들에게는 변호사, 검사, 판사는 조금은 특별한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변호사들은
사회 악과 맞서고, 혹은 사회 악을 돕고,
어느 때는 막 주먹질을 하고, 어느 때는 톱스타와 열애를 하고,
어느 때는 사건 현장을 누비고, 정말 스펙터클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한 10개월쯤 변호사를 하고 있는데,
저는 주먹질을 한 적도, 톱스타와 열애는커녕 스쳐본 적도 없습니다.
사무실에 아홉 시 반쯤 출근해서는 밤 열한 시쯤 퇴근을 합니다.
기록들을 읽고, 회의를 하고, 리서치를 하고, 서면을 쓰고, 전화통화도 하고,
재판에 가지 않는 이상
사무실 제 방과 회의실 말고 딱히 가는 곳 없이 그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거나, 종이 기록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확실한 건 변호사는 램프의 요정 지니 같은 존재는 아니며, 그런 존재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친한 형이 형사 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의뢰인이 도저히 무죄가 나올 수 없는 것 같은데 무죄를 받아달라고 요구해서 괴롭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표 변호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고, 길은 안 보이고 정말 딱 도망치고 싶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가능해? 아니 가능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변호사는 죄를 지은 사람이 딱 죄 지은만큼만 처벌받을 수 있도록 잘 인도해 주는 조력자.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 생기지 않도록 받을 사람은 딱 받을 만큼만 줄 사람은 딱 줄 만큼만 받고 주도록 잘 정리해 주는 조력자.
변호사는 법을 잘 준수하여 앞으로 제재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변호사 생활을 10개월가량 하며 주변을 살펴보니,
최를 지은 사람이 죄지은 것보다 덜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해주거나,
받을 것보다 더 받고, 줄 것보다 덜 주도록 해주거나,
법을 잘 준수하지 않아도 제재당하지 않도록 해주면,
그러면, 실력 있는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잘못된 것인데 누구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실력 있는 변호사라고 더 많은 사람이 찾고, 돈을 벌고, 그 밑에 그걸 배우겠다고 어린 변호사들이 줄을 섭니다.
변호사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도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담당한 사건에 합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서면을 작성합니다.
언젠가 제가 경력이 더 쌓여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날, 그때의 나는 어떤 변호사가 되어 있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