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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Sep 19. 2018

하늘에서 고양이가 떨어졌어요

어느 날 하늘에서 고양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나는 이 아기 고양이를 '하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실제로 하늘에서 고양이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한눈에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새끼 고양이가 엄마 없이 홀연히 우리 집 뒷마당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태희 새끼냥 6마리, 예쁜이 새끼냥 3마리로 인해 원투펀치를 맞고 비틀거리던 나는 세 번째 녹다운 펀치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뒷마당에서 통조림을 얻어먹던 모습이에요. 내 앞에서 36계 줄행랑을 치지 않았으니 이때부터 싹수가 보인 셈이네요 ㅎ

처음 본 것은 스치듯 우연히였다. 어라, 쟤는 뭐지. 태희 새끼냥도 예쁜이 새끼냥도 아닌데. 잘못 본건가. 스치듯이었기에 금방 잊었다.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8월 말쯤이다. 어느 때부턴가 길냥이 밥 주는 아침나절이면 모습이 보인다. 때론 대숲에 숨어서 울고 있고, 때론 태희 새끼냥들 곁을 어슬렁 거리고 몽이 뒤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아직 엄마젖도 안 뗀 것처럼 보이는데 엄마가 안 보인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엄마를 잃었던가, 엄마한테 버림을 받았던가. 먹을 것을 찾아 우리 집까지 오게 된 모양이다. 작디작은 몸으로 엄마 없는 길 생활이 어떨지 뻔하므로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일단은 지켜보기로 한다.


들어온 직후 사진이에요~ '여기가 원래부터 내 자리 아니었어요?'라고 하는 거 같죠 ㅎㅎ

그렇게 한 일주일 가량을 계속해서 보이더니 어느 날 쓱 사라졌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무지개다리를 건넜나 보다 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때는 토요일 저녁, 장작더미 근처에서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홀린 듯 가보니 그 아이다. 내가 나타나니 장작 더미 속으로 쏙 숨는다. 숨긴 했는데 손이 닿는다. 미친 척 손을 뻗어 머리를 만져본다. 살짝 두려워하긴 하지만 내 손을 탄다. 이내 손길을 즐기며 '골골' 거리기 시작한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건 뭐지. 이렇게 또 코 꿰는 건가. 


사실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 새끼가 사람 손을 탈 확률은 몹시 낮다. 개인적으로는 천 분의 일쯤의 확률이라고 생각한다. 천 분의 일의 확률이 우리 집 뒤뜰에서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나는 다시 홀린 듯 새끼 냥이를 장작더미에서 꺼낸다. 반항하긴 하지만 무릎에 앉혀놓고 쓰다듬으니 바로 골골댄다.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려는 찰나 아까부터 뒤에서 쭈욱 어멍을 지켜보던 싸복이 남매가 -특히 행복이가 몹시도 우렁차게 - 짖어댄다. 놀란 새끼 냥이 그대로 줄행랑친다.


뾰족하게 솟은 귀, 새침한 입매. 도도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간 쓸개 다 빼주는 개냥이 중에 개냥이랍니다.

연이 아닌가 보다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니 어라, 새끼 냥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울고 있다. 마치 나를 어서 데려가 달라는 듯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아무런 계산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데리고 들어왔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싸복이 남매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게. 하늘이는 현재 우리 집 건넌방에서 숙식(?) 중이다. 집에 들어온 직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여기가 처음부터 본인의 집이었던 냥 자연스럽게 방석에 고고하게 앉는다. 


불안하거나 도망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완전히 코가 꿴 셈이다. 하늘이는 나를 '엄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 얼굴만 보여도 바로 골골대기 시작한다. '부비부비, 벌러덩, 꾹꾹이, 안겨있기' 애교 4종 세트를 장착한 '개냥이 중에 으뜸 개냥이'다. 오리지널 냥이인 뭉치의 '쌀쌀맞음'에 마음에 나름 큰 생채기를 가지고 있는 나는 하늘이의 무한 애교에 바로 홀라당 넘어가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심지어 뽀뽀도 한다. 하늘아~ 넌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거니?


하늘이는 어리고 작고 약한 존재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 외면하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밥을 제대로 못 먹은 건지 하늘이는 뼈가 다 드러나도록 빠짝 말랐다. 꼴도 꾀죄죄한 것이 누가 봐도 '엄마 없는 냥이' 스러운 몰골이다. 집에 데려온 지 일주일째, 설사를 해서 병원에 다녀오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처음 며칠은 몰골이 너무 초라해 금방 무지개다리 건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니, 왠지 길게 계속될 '묘연'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든다. 늘 생각했다. 앞으로 또 '묘연'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방식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늘이를 둘러업고 들어오며 '앞으로 내가 얘를 입양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성적인 사고를 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식구를 늘리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도 까맣게 잊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이제 서서히 계산하고 있는 중이다. 


싸복이 남매는 오지라퍼 어멍 때문에 지금 이런 우울하고도 코믹한 상태랍니다 ㅎㅎ

앞으로 갈길이 멀다. 싸복이 남매와 친해져야만 하는 과정이 남았다(안전문을 사이에 두고 나름 살벌하게 대치중이다). 아직 예방접종도 남아 있고, 살도 부지런히 찌워야 한다. 당분간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흘러가다 보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뭉치는 '꼴통답게' 새로 나타난 아기 고양이 에게는 '단 1%'의 관심이 없다는 것. 이런 느낌이다. '니깟것이 뭐라고, 내가 너를 신경을 쓰니?' 하는 느낌. 하늘이 때문에 절절매는(?) 우리 싸복이 남매에 비하면 참으로 고급스럽고 우아한 반응이다. 역시 우리 뭉치스럽지 아니한가. 


기대된다싸복이 남매와 뭉치, 아기 고양이 하늘이가 함께하는 앞으로의 우리 집은 어떤 모습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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