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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Oct 02. 2018

내겐 너무도 특별한 고양이, 뭉치를 추억합니다

뭉치를 처음 본 건 작년 봄의 일이다. '러시안 블루'가 길냥이라니 눈에 안 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해 여름에 뒷마당에서 뭉치를 마주친 후, 나의 손길을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뭉치에게 한눈에 빠져 들었다.


뭉치는 예뻤다. 너무너무 예뻤다. 나는 잠깐씩 만나는 뭉치가 안쓰럽고 또 안쓰러웠다. 뭉치는 그해 여름, 빈집에 3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가을에 중성화 수술을 시켜줬고, 수많은 고민 끝에 11월에는 집안으로 납치(?)했다. 우리 집에서 10개월 정도 산 셈이다. 뭉치는 채 2년도 안 되는 짧은 생을 마치고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중성화 수술 후 하룻밤 우리 집에 묵어가던 때의 모습. 이때만 해도 우리가 한 식구가 될지 미처 몰랐다.

길냥의 시절에도 허접한 보일러실과 대조되어 더욱 빛이 나는 뭉치의 미모

# 외출하는 특별한 고양이 뭉치


11월에 우리 집에 갇힌(?)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나자 뭉치는 너무도 간절하게 나가고 싶어 했다. 그게 눈에 훤히 보였다. 다소 위험하더라도 뭉치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줘야 할지, 안전을 위해 집 안에 가두는 것이 옳을지 참 오랜 시간 고민했다. 동물과 함께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동물의 마음을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어딘가 아픈지, 무엇을 원하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그저 우리는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 짐작이 옳은지 아닌지는 신만 아실터다. 어렵게 뭉치의 외출을 허락했고, 그 때문에 오랜 시간 불안해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뭉치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해 주었을 텐데. 짧은 삶이었지만 다른 냥이들과는 다르게 자유롭게 바깥세상을 여행하며 지냈으니 뭉치의 삶이 불행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뭉치 전용 출입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고 대기 중인 뭉치

마당에서 노닥거리는 것을 참 좋아했었죠. 뭉치가 마당에서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참 행복했어요.

# 싸복이 남매와 뭉치


누군가 '뭉치랑 싸복이 남매는 잘 어울려?' 하고 물어보면 나는, '뭐, 같이 놀지는 않지만 크게 사이가 나쁘지는 않아. 서로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느낀 건데,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의외로 집안에서 다정하게 함께 있는 사진이 많았기 때문이다. 싸이는 뭉치에게 함께 놀자고 들 때가 많았다. 물론 고양이 식이 아닌 강아지식으로. 뭉치가 좋아하지 않았던 건 당연하다. 행복이는 뭉치가 많이 거슬렸다. 특히 구석에 숨는 걸 못 견뎌했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뒤에도 구석에 숨어있으면 문득 한 번씩 짖곤 했으니까. 뭉치는 싸복이 남매가 불편했을 테고 싸복이 남매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싸복이 남매와 뭉치는 늘 한 공간을 공유했고, 특별한 충돌 없이 서로 잘 지냈다. 공기처럼, 원래가 거기 있던 것처럼 늘 자연스럽게 서로가 함께였다. 싸복이 남매의 기억 속에도 뭉치가 남아 있으리라. 


언제나 적당한 안전(?)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은근히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던 싸복이 남매와 뭉치예요.

제 곁에서 함께 모여 잠잘 때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몹시 흐뭇했었죠.

# 싸복이 남매와 뭉치가 함께하는 마당 풍경


집 안에서 싸복이 남매와 뭉치가 함께 있는 걸 보는 것도 참 흐뭇했지만, 마당에서 함께 하는 풍경은 흐뭇함을 넘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뭐랄까, 우리가 진정으로 한 가족이 된 느낌이랄까. 뭉치가 외출을 시작한 이후, 싸복이 남매는 이상하게도 마당에서 뭉치를 만나면 짖고 쫓아다니곤 했다. 흡사 길냥이가 우리 집 마당에 나타난 것처럼. 마당에 나타난 뭉치는 순식간에 '모르는 고양이'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싸복이 남매는 마당에 있는 뭉치를 보고도 짖지 않았다. 싸복이 남매와 뭉치가 마당에서 함께하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우리 집 일상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싸복이 남매와 뭉치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게 된 것은. 싸복이 남매와 뭉치가 함께 있는 마당 풍경은 슬프지만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을 풍경이 되었다. 


마당 있는 집에 산다는 게 참 힘겨울 때가 많다. 이 풍경은 그런 힘겨움을 저 멀리로 날려버리는 힘을 가진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 하늘이가 잘 커서 가끔 마당에 나와서 함께 어울렸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 안길 줄 모르는 고양이 뭉치


뭉치는 누가 뭐라 해도 도도한 오리지널 고양이다. 발이나 배, 꼬리는 절대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숙면 중에도 내가 다리나 배를 만지면 뒷발길질을 해대는 식이었다. 물론 자지 않을 땐 어김없이 손을 물려했다. 오로지 스킨십은 머리까지만 허용했다. 마찬가지로 잘 안기지도 않는 편이었다. 더욱이 강제로 안으려고 하면 도망가기 일쑤였다. 우리 집엔 '너무 커서 내 무릎에 올라올 수 없는 강아지=행복이'와 '독립적이어서 어멍 무릎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강아지=싸이'만 있어서 서운함은 늘 배가 되곤 했다. 사진을 보면서, 의외로 뭉치가 나에게 안겨 있던 시간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다 한 번씩 나에게 안기는 것이 뭉치식의 배려라는 것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은근슬쩍 나를 따라다니며 밤에 잠잘 때는 내 곁에서 자곤 했던 뭉치가 지금도 참 많이 그립다.


하고많은 자리 중에 제 옆에서 자는 건, 까칠하긴 해도 뭉치가 저를 사랑했단 증거겠죠^^

# 가끔씩 나를 마중 나오던 뭉치


퇴근할 때 뭉치를 만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마치 내가 올 때를 알고 기다렸던 것처럼. 안 그래도 퇴근하면 기운이 다시 샘솟는 집순이인 나는 퇴근길에 뭉치를 만나 집안으로 같이 들어올 때는 에너지로 가득 차곤 했다. 이럴 땐 뭉치도 '전용 출입문'을 사용하지 않고 꼭 나와 함께 현관으로 들어오곤 했다. 외출에서 돌아올 때, 내가 거실에 있는 게 보이면, 나를 쳐다보며 '냐옹~' 창문을 열어달라고 하곤 했다. 전용 출입문을 사용하지 않고. 그럴 때 내가 냉큼 창문을 열어주면 집으로 얼른 들어오던 뭉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뭉치의 마중을 받는 일이 행복했고, 문 열어 달라는 뭉치의 '냐옹~'소리가 너무도 좋았다. 그럴 때마다 뭉치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뭉치가 저를 마중 나오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어요. 비록 우연의 일치일지라도요^^

# 나는 뭉치를 많이 사랑했습니다.


뭉치는 정말 예뻤다. 나는 뭉치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귀여운 앞발을, 몰캉몰캉한 뱃살을, 신비한 옐로빛 눈동자를, 얄상한 입꼬리를, 우아한 몸놀림을, 뭉치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뭉치의 겉모습에 반해서 집에 들였지만, 나는 뭉치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저 뭉치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양손으로 내 손가락을 잡고 무는 뭉치도, 스프레이를 뿌리는 오줌싸개 뭉치도, 쌀쌀맞고 차가운 뭉치도, 그저 뭉치 존재 그 자체가 나에게는 사랑이었다. 뭉치는 외출했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주 짧게 '냐옹~' 소리를 내며 꼭 내게로 다가왔다. 잠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 머리를 만져주면, 자다가도 잠깐 눈을 뜨며 짧게 한 번 '냐옹~'하고 소리를 냈는데, 나는 그 목소리가 너무도 좋았다. 결코 두 번 '냐옹~'거리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좋았을까. 저 소리만 들으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제가 제일 사랑했던, 뭉치가 무언가를 올려다볼 때의 모습이에요.

# 뭉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여행 중입니다.


며칠이 지난 후 내가 괜찮은지 걱정되어 톡을 한 친구에게 그렇게 답을 했다. "지금은 너무 슬프고 힘들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나는 행복하게 뭉치를 추억할 수 있을 거야. 뭉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산으로 들로 다니며 인생을 즐길 줄 알았던 멋진 고양이지. 나는 멋진 모습의 뭉치를 영원히 기억할 거야"라고. 친구가 말했다. "뭉치는 이전에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면서 뭉치답게 멋진 고양이로 변함없이 행복할 거예요. 더 멋있어질 뭉치를 위해 기도해요. 우리"라고. 친구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뭉치는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한 곳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고, 그곳에서 진심으로 행복할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잠든 뭉치 모습이 가장 예쁩니다. 저렇게 자다가도 눈을 뜨고 아는 척을 해주곤 했죠.

# 뭉치는 영원히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을 것입니다.


뭉치의 존재를, 뭉치가 나에게 가지는 의미를 알았던 많은 친구들이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뭉치의 안녕을 기도해 주었다. 함께 울어주었던 친구들이 참 고맙다. 여기 브런치에서 만난 분들이 보여주신 따뜻한 마음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뭉치 또한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 덕에 마지막 여행길이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뭉치는 우리들 기억 속에 그렇게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뭉치, 별이 되고... 추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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