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늘이가 싸복이 남매에게 적응하는 방법

by 달의 깃털

하늘이가 집에 들온 지 어언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하늘이는 이제 제법 한 식구 다운 태가 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서히 한 가족이 되어가는 중이다.


하늘이는 업어오자마자(?) 작은방에 격리되었다. 안전문을 사이에 두고 위험한(?) 싸복이 남매와의 동거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길에서 냥이들을 보면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이 싸복이 남매다. 그런데 집안에 어느 날 보도 듣도 못한 고양이가 터를 잡다니. 싸복이 남매 입장에서는 참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황망한 나머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싸복이 남매 - 특히 행복이를 대비해 - 새롭게 안전문을 설치했다. 하늘이가 제 발로 나오지 않는다면 뭐, 험한 꼴은 당하지 않으리라.


3286.jpg 어멍~ 망보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힘들구먼~ 망보다 지쳐 쓰러진 싸복이 남매

길에서 집으로 업어왔던 뭉치는 한 이틀 지난 후에 바로 작은방에서 나와 거실 탐험을 시작했다. 싸복이 남매에게 쫓겨 가끔씩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탐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하늘이는 작은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아주 거기가 자기 집이다. 나는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해야 했다. 작은방에 들어가면 하늘이가 나를 격하게 반기며 무릎 위에 바로 눕는다. 골골이와 꾹꾹이를 시작한다. 떼어놓고 나가기가 미안할 정도로 애교를 부린다. 등 뒤로 성난(?) 싸복이 남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작은방에 있으면 싸복이 남매에게 미안했고, 거실에 있을 땐 하늘이에게 미안했다. 대략 2주 동안 나의 이런 이중생활은 계속되었다.


3339.jpg 너, 거기 손톱만 한 조만한 생명체~ 도대체 니 정체가 뭐야? 거실에 나가고 싶지만 길목을 차단당한 하늘이

며칠이 지나자 싸복이 남매는 곧 흥미를 잃었다. 평소에도 포기가 빠르고 고집이 없는 편이다. 이주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하늘이가 슬금슬금 거실로 나온다. 싸복이 남매는 다시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다. '거실에 웬 고양이가?' 싶었을 것이다. 하늘이는 싸복이 남매에게 쫓겨 가끔씩 경기를 일으키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코너로 몰리면 냥이답게 하악질을 하기도 했고, 더 불리할 땐 작은 체구를 활용, 가전 뒤 좁은 틈새에 숨어 오랫동안 나오지 않기도 했다. 뭉치는 싸복이 남매의 손이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 올라 애들을 환장하게(?) 만들곤 했었는데, 하늘이는 불행히도 아직 다리가 많이 짧아 높은 곳으로 피신은 어렵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때부터 나를 보고도 숨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뭐지? 이젠 나도 빅 사이즈 강아지로 보이는 건가? 티브에서 보면 구석에 숨어 도통 나오지 않는 냥이들이 있던데, 하늘이 쟤도 그런 성격인가? 아니 그럼 도대체 작은방에 있을 땐 왜 그렇게 개냥이처럼 군 거지? 혼란에 빠져있던 그때.......


3363.jpg 행복이도 졸려 죽는 시간에는(저녁 7시 반 이후~) 하늘이가 나돌아 댕겨도 모른 척해 주었다(왜? 귀찮으니까)

할 일을 다 마치고 싸복이 남매가 꿈나라로 가기 시작하니까(대략 7시 반~8시) 슬금슬금 기어 나와 내 무릎이나 배 위에 안착한다. 뭐야? 너 나 피해서 숨어 다니던 애 맞아? 이때는 싸복이 남매도 그냥 모른 척을 해줬다. 왜냐고? 졸려 죽겠으니깐. 잠을 자야 하니깐. 이런 날이 며칠 반복되었다. 내가 없는 낮에도 잘 지내고 있는 건가 궁금했는데, 웹캠으로 집안을 지켜보던 중 하늘이와 몸을 맞대고 잠자는 싸이를 발견했다. 이럴 수가, 어느 날엔 싸이와 다음날엔 행복이와. 번갈아 가면서 같은 방석에서 몸을 붙이고 자고 있다. 하늘이 요 녀석, 나 있을 땐 그렇게 싸복이남매를 피해 다니더니 낮에 내가 없을 땐 싸복이 남매와 꼭 붙어서 자고 있었던 것.


KakaoTalk_20181024_105946695.jpg 뭉치는 절대로 붙어 자는 법은 없었는데, 이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신기한 일이다. 뭉치와 싸복이 남매와의 사이에서는 없던 일이다. 하늘이가 치근덕 거리니, 싸복이 남매가 마지못해 받아준 격인 듯 싶다. 그래도 내치지 않고 하늘이를 잘 받아준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엔 우리 행복이가 하늘이를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사실 뭉치도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받아들여 주었던 싸복이 남매다. 나도 내심 믿는 구석이 있어 쉽게 하늘이를 들였을 것이다. 싸복이 남매가 누굴 닮았는지 포기와 체념이 빠르고 고집이 없고 착하다. 나를 안 닮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KakaoTalk_20181024_105947113.jpg 우리는 한 가족이 되어간다. 뭉치가 떠나간 자리를 하늘이가 빈틈없이 메꿔 준 셈인가. 뭉치의 '선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행복이는 하늘이와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다. 물론, 가끔 수틀리면(예를 들어 배고파 예민한데 하늘이가 심하게 촐랑거릴 때) 짖곤 하지만. 싸이는 살짝 질투하긴 해도(어멍 무릎에서 어멍이랑 꽁냥꽁냥 하는데 어린놈의 냥이가 자꾸 껴든단 말이지), 자기 방석도 기꺼이 내주고 밤에는 대개 하늘이와 머리를 맞대고 잘만큼 사이가 좋다. 문제는 나다. 뭉치와는 180도 다르게 '냐냐옹~ 냐옹~' 수다쟁이에, 다가가면 도망가거나 숨고, 가만히 있으면 바로 배 위에 안착하는 도대체 속을 모르겠는 하늘이에게 아직도 적응 중이다.


이젠 나만 적응하면 된다. ^^


KakaoTalk_20181024_105943776.jpg 한 놈은 배를 베고, 한 놈은 다리를 베고, 에끼 이놈들 어멍 다리 저려 죽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겐 너무도 특별한 고양이, 뭉치를 추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