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아홉 살에 개춘기라니

누가 우리 싸이를 모범 강아지라고 했던가

by 달의 깃털

싸이는 나의 지인들에게 모범 강아지로 통한다. 아니 통했었다.


지금까지 나는 우리 싸이를 이런 식으로 소개하곤 했다. 우리 싸이는 자식으로 치면, 말 잘 듣고 의젓한 장남이고, 손갈데 없이 완벽한 반려견이라고. 이를 인정하는 나의 친구들은 싸이를 일러 '초보자 입문자용 강아지'라고 했다. 이렇듯 기특하던 싸이가 요즘 들어 요상하게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KakaoTalk_20211224_172239051.jpg 자그마치 나이 아홉살에 개춘기를 맞다니......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정리 정돈되어 있는 이부자리를 자꾸 들쑤셔 일거리를 만든다든지, 휴대폰 충전 케이블을 끊어놓는다든지, 현관몰딩을 갈아댄다는지 하는 것.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고 치자. 까지것 이불은 정리하면 되고, 케이블은 다시 사면 되고, 뭐 현관몰딩은 언제 우리 집에 성한 물건이 있었나 치면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싸복이 남매는 기본이 실외 배변이다. 내가 집에 없을 땐, 실내에서 똥오줌을 잘 못 가리는 행복이를 위해, 초대형 배변패드(담요)를 깔아 놓는다. 막상 써보니, 일반 패드보다 흡수력 좋고, 샐 일도 없어, 빨래를 해야 하는 수고스러움만 빼고는 오히려 더 편리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행복이가 배변패드(담요) 똥을 싸면, 싸이가 이불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아니 지가 무슨 말똥구리도 아니고 도대체 왜?


KakaoTalk_20211227_134321176.jpg 초대형 배변패드는 하늘이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싸이가 말기좋게 하늘이가 밑작업을 해 놓는 셈이다.

행복이가 똥을 조금 싸는 것도 아니니, 싸이가 담요를 말았을 때 생기는 참상(?)은 참으로 더럽다. 담요는 담요대로 똥 범벅이 되고, 똥 범벅인 담요를 내 옷을 빠는 세탁기에 같이 돌리는 것도 찝찝하다. 모든 일은 내가 집에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이니, 하지 말랄 수도 말릴 수도 없다(이 와중에도 단 한번도 지 몸뚱이에 똥을 묻힌 적은 없다. 이걸 기술이 좋다고 해야할까). 문제는 가끔씩은 행복이가 똥을 싸지 않았는데도 이불을 만다는 사실이다. 어떨 땐 진짜 담요를 삼각형으로 세울 때도 있는데 그 작은 몸으로(6킬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을까 싶다.


KakaoTalk_20211227_133942643.jpg 그래도 잘때는 천사가 따로없다

담요를 세웠을 때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그렇게 되면 행복이가 담요를 배변패드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 그냥 올라가서 싸면 될 것 같은데, 둔한 행복이 답지 않게 그건 싫은 모양이다. 그런 날은 거실이 행복이 오줌으로 홍수가 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행복이 답지 않게, 가구 밑으로 들어가게는 싸지 않는다는 것. 행복이의 평소 성품을 생각할 때, 결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닐 텐데,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참 신비한 일이다.


KakaoTalk_20211227_134031443.jpg 행복 왈: 가구 밑으로 들어가지 않게 신중을 기해 싸는데, 어멍은 그걸 몰라준단 말이지.

어느 날엔가 그런 일도 있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담요에 핏자국이 여기저기 선명하게, 너무도 많이 찍혀있었다. 그 양이 많아 당연히 행복이가 어디 다친 줄 알고 면밀히 살폈으나 아무리 봐도 상처가 없다. 그날은 범인(?)을 찾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갔으나,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담요를 어찌나 열심히(?) 말았던지 싸이 코가 그만 까지고 말았던 것. 꽤 오랫동안 상처가 아물지 않은 코로 담요며 내 이불을 열심히 밀어대, 아주 집안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가실날이 없었다. 참고로 엄마가 얼마 전에 사주신 고가의 이불도 피범벅이 되었다.


KakaoTalk_20211227_134351455.jpg 자세히 보면 콧잔등이 완전히 다 까졌다. 아픈줄 모르고 담요를 말고 있으니 그 열정이 놀랍다고 해야하나.

나이 아홉 살에 안 하던 개춘기 짓을 하는 것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데, 잘생긴 우리 아들 얼굴에 상처까지 나니 속상함과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다. 이런 때에 담요를 세워놓은 현장을 카메라로 보여주니 우리 알바가 하는 말, "쌤~ 이 정도면 강형욱한테 가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 나 어멍 그동안 개휼륭에 출연하는 반려인들을 은근슬쩍 비웃으며, 싸복이 남매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가져왔었는데, 나의 자부심이 바닥으로 급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니, 무언가 어멍한테 불만이 있는 것도 같은데, 둔한 어멍은 짐작조차 가는 것이 없으니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담요를 두 개 까는 전략을 써보았는데 그나마 좀 효과가 있다. 요새는 나가기 전 개껌을 주고 가는데, 이것도 제법 효과가 있다.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담요를 덜 세운다. 요즘은 지켜보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 아예 웹캠을 확인하지 않는데, 현관문을 열기 전에 언제나 심장이 쫄깃쫄깃하다. 오늘은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을까 하고.


KakaoTalk_20211224_172135962.jpg 처량한 눈빛으로 문 열어달라 시위 중. 문 옆의 기스는 개춘기를 맞은 싸이의 작품.

이런 싸이와 저녁마다 눈을 맞추며 '특별면담'을 한다. '너 도대체 왜 그러니, 니가 그러면 그동안 자랑한 어멍 얼굴이 뭐가 되니' 하고. 우리 사이에 말은 통하지 않으니, 그저 나의 마음의 십 분의 일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


싸이야. 나이 아홉에 개춘기라니 이 무슨 황당한 일이냐. 내년에는 다시 예전의 모범 강아지로 돌아와 다오.


<독자들에게 보내는 연하장>

올해도 이렇게 흘러가네요. 2017년도부터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 5년 차, 내년이면 6년이 됩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는 것도, 제가 쓴 글이 이백 편 가까이 된다는 것도 놀랍습니다만,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그리고 뒤뜰 냥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독자분들의 존재입니다. 독자분들이 있어, 별 것 아닌 우리들 이야기가 더욱더 특별해졌어요. 우리의 삶에 특별한 무늬를 입혀주신 독자분들 언제나 고맙습니다. 개춘기가 왔다며 싸이를 흉보긴 했어도^^ 여전히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는 큰 말썽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뒤뜰 냥이들도 모두 건강하고요. 올해는 그다지 많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어요. 특별한 일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데, 어쩌면 제가 삶을 충실히 잘 살아내고 있지 못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내년에는 우리 집에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또 어떤 길 위의 고양이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될까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길 테지만, 언제나처럼 나에게 닥쳐올 순간순간을 온몸과 맘으로 잘 받아들이며 씩씩하게 살아보겠습니다. 독자분들도 올 한 해 수고 많으셨고요. 내년 한 해도 행복하세요.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뒤뜰 냥이들을 대표해서, 제가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KakaoTalk_20211227_133914084.jpg 추운겨울엔 더욱 더 다정해 지는 싸복이 남매에요. 올해도 어김없이 다정하네요.

KakaoTalk_20211227_133851033.jpg 독자분들 언제나 고맙습니다. 싸복이 남매가 감사인사 드려요~

KakaoTalk_20211228_131801598.jpg 하늘이도 빠질 수 없겠죠.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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