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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는 왜 바둑이가 되었을까

바둑이 싸이와 바둑이 엄마

by 달의 깃털

새벽 4시 즈음, 졸린 눈을 비비며 싸이와 새벽 산책을 나선다.


벌써 10여 년이 되었다. 아무래도 저녁엔 거르고 싶은 유혹이 많을 것 같아 새벽산책을 선택했다. 일찍 잔다고 해도, 3시 50분 기상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매 번 힘들지만, 십여 년을 계속하고 보니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뻔뻔스럽게 이야기하자면, 꾸준함과 성실함이 내가 가진 제일 큰 미덕이다. 간혹 비가 많이 내려 산책이 불가능한 날엔, 심지어 기분이 헛헛하기까지 하다.


KakaoTalk_20250919_074845439.jpg 이제 제법 늙은 싸이는 잠이 퍽 많아졌습니다

시골 동네에서 새벽산책이 나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십여 년을 한결같이 하고 보니, 산책길에 마주치는 분들이 몇몇이 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다. 그중에 한 분이 일명 '청국장 할머니'다(얼마 전까지 청국장 식당을 하셔서 그렇게 부른다). 청국장 할머니는 참 명랑하다. 대개는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할머니는 꼭 몇 마디 말을 붙이신다. 마당쇠와 같이 살고부터는, 마당쇠가 동네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아(마당쇠가 인사성이 참 바르다) 부쩍 동네할머니들이 나에게 친절해진 것도 것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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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는 각막에 상처가 나서 넥카라를 하고 살았는데, 나풀거리며 뛰어다니는 것이 흡사 목도리도마뱀 같더라고요

'안녕하세요' '바둑이 엄마, 오늘도 나왔어'로 우리 대화는 시작된다. 바. 둑. 이. 그것은 우리 싸이를 부르는 이름이다. 웬 바둑이? 왜 싸이를 바둑이라고 부르는 걸까? 푸들, 골든 레트리버, 몰티즈 등 같은 일명 품종견 아이들을 바둑이라고 부르는 법은 없다. '바둑이'는 아마도 '품종이 없는' '시고르자브종' '시골 똥개'를 부르는 친근한 명칭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옛날에 시골에선 어느 집 강아지를 바둑이라고 부르는 일이 흔했다. 얼마 전에 동물병원에 가서도, '어머나! 예쁜 바둑이네!'라는 소리를 들었다.


KakaoTalk_20250919_074959587.jpg 좁은 가구 사이 끼어 자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저기 방석을 깔아주었답니다

따지고 들자면, 강아지 품종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단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왠지 저 바둑이라는 단어가 참 정겹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동네 바둑이들과 함께 자랐다. 우리 집에도 늘 바둑이들이 있었고(품종견을 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중에 한 바둑이에게는 얼굴을 물리기도 했다. 그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둑이들을 참 좋아했다. 바둑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바둑이의 탄생을 지켜보며 느낀 생명의 위대함도 여전히 기억한다. 다양한 품종의 강아지들이 참 많지만, 바둑이만큼 내 눈에 예쁜 강아지가 없다.


KakaoTalk_20250919_075221203.jpg 볼일 보는 어멍 감시하는 중입니다. 매일 열일 중이죠.

그래서인지, '바둑이 엄마'라는 난데없는 별명이 그리 싫지 않았다. 나의 새벽은 청국장 할머니의 '바둑이 엄마 나왔어~'로 시작되는 셈인데, 하루의 시작으로써 참 좋다. 싸이덕에 졸지에 바둑이 엄마가 되었는데, '바둑이 엄마'라는 시골 동네 사는 나의 정체성이 꽤 맘에 든다. 그래서 그런지, 낯을 많이 가리는 나도 청국장 할머니에게는 한 두 마디를 꼭 건넨다. '오늘은 날이 덥네요' 내지는 '왜 어제는 안 나오셨어요?' 같은 나에게 안 어울리는 다정한 말들을.


KakaoTalk_20250919_075559299.jpg 싸이와 하늘이는 여전히 꿀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 싸이도 어느새 13살이 되었는데, 산책하는 발걸음은 젊었을 때와 별다를 것이 없으니, 매번 싸이와 함께 집을 나서는 똑같은 일상이 참 소중하다(이렇게 건강하니 내심 20살까지는 살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돌아오면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쇠의 뒷모습을 집 밖에서 지켜보는 일 또한 참 즐겁다. 한참 자던 중, 비몽사몽중에도 좋다고 따라오는 싸이가 늘 함께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KakaoTalk_20250919_075139369.jpg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바쁘다는 핑계로 소식 전하기가 쉽지 않네요

바둑이 싸이와 바둑이 엄마의 새벽산책은 오늘도 계속된다. 하루하루. 빠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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