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이가 구내염에 걸렸다!
알콩이는 우리 집 뒤뜰의 터줏대감이다.
연륜으로 치자면 그렇다. 내가 길냥이 밥을 주기 시작한 것이 2017년도부터다. 알콩이를 처음 만난 건 2018년이다. 알콩이는 자비로 첫 중성화 수술을 시켜준 기념비적인(?) 고양이기도 하다. 게다가 현존하는 뒤뜰냥이 중에 최고령, 그러니까 올해로 8살이 되었다. 따뜻한 계절에는 동네를 호령하고, 겨울엔 주로 우리 집 뒤뜰에서 지낸다. 대개 그렇듯, 8년이나 내 밥을 먹고도, 나를 전혀(?) 따를 생각은 없는 도도한 고양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알콩이는 참 애틋하다. 특별한 인연이다. 알콩이 엄마 알록이는 장이 다 썩어가던 상태에서 나에게 구조되어 우리 집 밥을 한 달 정도 먹다가, 지인의 집에 입양을 갔다. 그 이후에 오래 살지 못했고, 지금은 우리 집 앞마당에 잠들어 있다. 알록이가 내 손을 탔기 때문에 알콩이는 어릴 때부터 눈에 띄었다. 희한한 것이 나를 따르던 엄마와는 다르게 경계가 심했다. 알콩이를 잡아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는 일이 퍽 고됬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이에 엄마에게 버림받고, 나만 보면 얼굴은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대숲에 숨어 울곤 했다. 그 울음이 어찌나 짠하던지. 이 험한 세상을 저 어린 몸으로 어찌 버텨낼까 싶었다. 그랬던 알콩이가 한 해 두 해 나이를 들어가며 동네 수고양이들을 울리는 팜므파탈 냥이가 되었다. 때로는 이놈과, 때로는 저놈과 함께 다니며 동네를 호령하곤 했다(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이런 알콩이가 내심 자랑스러웠고(마치 내가 거두고 키운 새끼처럼) 또 안쓰럽기도 했다. 내게 곁을 조금만 더 내어주면 무언가 해줄 수도 있으련만. 오랜 세월을 나와 함께하고도 알콩이는 전혀 나를 따르지 않았다. 그래도 알콩이가 참 예뻤다. 실제로도 알콩이는 참 예쁘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참으로 예쁘다. 하얗고 뽀얀 털에 새초롬한 눈매를 가진, 매력이 철철 넘치는 고양이다. 팜므파탈 자격이 충분하다.
그랬던 알콩이가 작년께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살이 빠지는 가 싶더니, 그루밍을 못하는지 하얗던 모색도 꼬질꼬질해지기 시작한다. 작년 겨울엔(추울 땐 보일러실에서 잔다) 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어딘가 아픈 모양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본 결과, 확신할 순 없지만, 구내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손을 타지 않는 길냥이가 어디가 안 좋아 보이면, 그렇게 절망적일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근심이 커져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잡을 수는 있을까. 그냥 모른 척할까.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겨울이 지나갔다.
올해부터는 몸이 안 좋아서인지, 낮이면 주로 우리 집 뒤뜰에서 낮잠을 곤히 잤다. 하루가 다르게 알콩이는 자꾸 살이 빠져갔고, 상태가 안 좋아졌다. 구내염으로 음식도 먹지 않는 아이를 잡을 방법은 요원했다. 나는 생각했다. 겨울이 되고, 보일러실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면, 알콩이를 잡아서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 달라고.
솔직한 마음으론, 아픈 알콩이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병원비가 한두 푼은 아닐 것이며, 발치수술을 해 준다고 해도, 이후의 케어가 어렵기 때문에 그리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재발할 수도 있는 일이다. 잡는 일은,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쉬울까. 그렇게, 모른 척하고 싶었다. 손으로 주둥이를 비비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알콩이의 고통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더는 그 고통을 지켜볼 도리가 없다. 마치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고통스러워. 나를 좀 도와줘'라고.
다행히, 겨울이 되자 보일러실에 들어간 알콩이를 비교적 손쉽게 잡을 수 있었고, 발치를 했고, 1주일간의 입원기간을 무사히 보냈다. 치아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했는데,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남은 치아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지만(내 경험상 그렇다)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그렇게 알콩이를 다시 풀어주었는데, 그 이후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가 없다. 내 눈에 좀 띄어야 통조림도 챙겨 먹이고 그럴 텐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한 번 잡혀서 병원에 갔다 오면, 대개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본인 입장에서는 꽤나 큰 충격이었을 테니까. 지금까지는 시간차는 있을지언정, 백프로 다시 우리 집으로 밥을 먹으러 돌아오곤 했다. 나는 믿는다. 알콩이도 언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지금은 어딘가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이제는 마음껏 먹으며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만에 하나 다시는 알콩이를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길냥이들을 보살피며, 나는 체념을 배웠다. 날이 점점 추워져 간다. 매일 새벽 뒤뜰냥이 밥을 챙기며, 매일 보일러실을 확인한다. 알콩이가 머물던 빈 방석을 확인하는 일이 씁쓸하다. 언제쯤 알콩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날씨가 추워지니, 알콩이가 다시 컴백했다.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을 상상을 초월한다. 자세히 지켜보니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어쩌면 남아 있는 치아가 알콩이를 계속해서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설상가상, 보일러실에서 재회한 이후, 다시 보일러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 어디서 자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다시 만난 즐거움도 잠깐, 또다시 근심이 가득하다. 이제 8살이다. 길냥이 나이로는 고령이다. 알콩이에게 남은 날들이 얼마나 될까.
저 아이의 남은 삶에 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