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땡깡모자다
별명 짓기 달인인 마당쇠는, 나를 박땡깡이라 부른다.
얼핏 듣기에 기분 좋은 별명은 아니지만, 은근슬쩍 (티 내지 않고) 나는 저 별명을 좋아한다. 내가 어린애들이나 부리는 땡깡이 만만치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며, 저 별명 속에 (믿긴 어렵겠지만) 나에 대한 마당쇠의 사랑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이랬다. 엄마집에 갔다. 엄마집에 있던 나의 칫솔통이 없어졌다. 새 칫솔통을 마련하고 칫솔통에 이름을 써달라고 했더니, 마당쇠가 '박땡깡 것'이라고 썼다. 그걸 보고 엄마가 빵 터졌다. '아니 네가 나이가 몇인데 땡깡짓을 하냐' 면서. 그때부터 마당쇠는 나를 부지런히 박땡깡이라고 부른다. '박땡깡씨' 라고도 부르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대외적으로는 얌전하고 품위 있으며 성숙한 이미지라고 우기고 싶다), 마당쇠 앞에서는 꼭 하는 짓이 5~6살 철부지가 된다. 뭐든지 일단 우기고 보고(내가 맞다고), 무조건 해달라고 하고(침대에 누워서 물 떠와라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한다), 모든 대화는 기승전 '그러니까 나한테 무조건 잘해'로 끝이 난다. 때때로 마당쇠가 불만을 토로하면 한마디로 정리한다. '여기는 독재국가, 나는 갑, 너는 을. 우리 그렇게 하기로 (결혼 전에) 하지 않았냐' 하고
결혼 전에 농담처럼 '평생을 갑질하며 살게 해 주겠다'하고 마당쇠가 말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땡깡을 부릴 줄을 몰랐을 것이다. 어차피 재미있자고 하는 거니까, 하는 맘으로 대개는 맞춰주는 마당쇠도, 아주 가끔씩은 기가찬지 (진짜로) 어이없어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눈치 없는 나는, 이 나이에 새롭게 알게 된 '땡깡 부리는' 재미에 취해 땡깡에 더해 짜증까지 스스로 생각해도 눈꼴사납기 그지없다.
우리 집에 이런 박땡깡에 못지않은, 아니 한술더뜨는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올해 15살이나 먹은 노견, 우리 싸이다. 원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 '너는 고양이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곤 했던 싸이가, 늙어갈수록 철이 드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땡깡이 늘어간다. 나는 이런 싸이를 가끔 '개진상씨'라고 부르고, 마당쇠는 '강땡강=강아지 땡강'이라고 부른다. 가끔씩 '엄마랑 아들이랑 하는 짓이 똑같다면서' 우리를 세트로 놀리기도 한다.
싸이는 나이 들어 신장이 안 좋아져, 처방사료와 처방캔을 제외한 모든 음식 금지령이 내려졌다. 다행히 그럭저럭 먹기는 하는데, 관대한 어멍덕에 오만가지 음식을 맛보고 살던 견생에서 한 순간에 2가지 음식만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보니, 밥투정이 장난이 아니다. 저녁은 곧잘 먹어도 아침밥은 차려놓아도(?) 거들떠도 안 볼 때가 많다. 급기야는 숟가락으로 떠먹여 줘야 하는 먹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어멍은 단호박이라, 안 먹으면 바로 치웠다)
다 늙어 예전같지 않은 강아지가 밥마저 제대로 먹지 않으니 애가 닳을 대로 닳은 내가 그저 을 신세가 되는 수밖에. 나이 들어 눈도 귀도 어두워져 가끔은 불러도 모르고 잠만 자는 노견이 되었는데(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부스럭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는 예민함의 소유자였다), 어멍에 대한 소유욕 만은 오히려 더 심해져 집에서는 맘 편히 있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마당쇠와 내가 거실에 함께 있을 때는, 마당쇠 감시하느라 내 곁에서 일분일초도 떨어지지 않는다(혹은 마당쇠가 잘 보이는 자세로, 주야장천 마당쇠를 주시한다) 마당쇠가 안방으로 들어가면 대략 한 시간 정도는 나를 괴롭힌다(손으로 쿡쿡 찌르기, 어멍이 누워있으면 깔고 안기, 이불 질질 끌고 다니며 주의 끌기 등). 다행인 건 이제 늙어서인지 저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건. 저러다가 대개는 졸리고 지쳐 자기 방에(에어컨 뒤 구석) 들어가서 잔다.
내가 집에 없으면(마당쇠만 있으면) 그나마 좀 편하게 자는 걸 알아, 쉬는 주말엔, 나는 부지런히 스타벅스에 책을 읽으러 간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고 싶고, 청소도 하기 싫은(집에 남은 마당쇠는 주로 청소를 한다)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나마 싸이에게 편하게 쉬는 시간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강아지 눈치 보느라, 일부러 주말마다 밖에 나간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모르겠다. 가끔 한 번씩은 나도 주말에 집에서 편하게 뒹굴뒹굴해보고 싶다.
생각해 보면 땡깡짓은 누군가 받아줘야만 하는 재미가 있다. 내 똥깡짓은 마당쇠가 받아주고, 싸이의 똥깡(똥강아지 땡강)짓은 내가 받아준다. 땡깡이가 된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은근히 '박땡깡'이란 별명을 즐기는 이유이고, 싸이를 '개진상씨, 강똥깡' 이라고 부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 이유다. 우리 집에서 '땡깡 혹은 똥깡'이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표현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오랫동안 마당쇠의 '박땡깡' 이고 싶다. 올해 15살이나 된 싸이도 영원히 나의 '강똥깡' 이었으면 좋겠다. 엄마랑 아들이랑, 오래오래 땡깡부자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