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 깃털 Apr 12. 2018

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을 줄여 나가는 법

우리 집과 옆집 밭의 경계선에는 이사 오기 전부터 사철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매 번 가지를 쳐줘야 하는 것이 너무 번거로워 '그냥 울타리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즈음 옆집 할머니로부터 민원이 들어왔다. 사철나무 뿌리가 갈수록 자라서 밭의 작물이 잘 안 자란단다. 이전 주인이 나무를 심을 때 심지 말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고 했다. 나도 관리가 힘들다고 말을 보태니 그럼 이번 참에 나무를 없애라고 하신다. 그냥 잘라내고 약만 치면 나무가 죽는다면서. 순진한 나는 그저 잘라내고 약만 치면 죽겠거니, 할머니의 말을 고지고때로 믿고 덜컥 나무를 잘라냈다. 이때는 몰랐다. 이것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시작인 줄은.


약을 치고 시간도 지났으니 울타리를 세우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때서야 쓱 할머니가 말한다. 약을 쳐도 잘 안 죽는다고, 뿌리를 다 캐내야 한다고. 이대로 울타리를 치면 안 된다고. 나무뿌리 캐기가 그리 어려운 일인 줄 몰랐던 나는, 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게다가 때는 작년 여름이었다. 한 여름 뙤약볕에 중한 수술을 한 지 7개월이 안 된 몸으로 고스란히 뿌리를 다 캐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 힘들 줄 알았다면 덜컥 나무를 잘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한테 속았다고 무릎을 쳤지만 이제와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뿐 아니다. 울타리 작업을 하는데도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이전 집주인과 다르게 내가 말을 받아주니, 나를 만만하게 보신 것 같다. 속으로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부모님과 연배가 같은 할머니에게 대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켜보던 알바생도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쌤은 오죽하겠냐며 나를 위로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문가를 부르지 않고, 알바생들과 내 힘으로 울타리를 쳐 보려고 했던 계획이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간 내 손으로 이것저것 일을 하면서 꽤 이 쪽 일에 소질이 있다는 자만감에 스스로 울타리를 칠 수 있다고 믿었던 내 판단이 실수였던 것이다(그러니까 울타리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운 울타리가 작업 중에 넘어가는 대형사고까지 터졌. 심지어, 다치진 않았지만 넘어간 울타리에 깔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전문가에게 울타리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울타리를 치면서, 전문가를 왜 '전문가'라고 하는지 ㅎㅎ 제대로 깨우쳤다. 결국 전문가의 손으로 완성된 울타리의 모습

여름휴가 7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죽어라고 일만 했다. 그것도 뙤약볕에. 쓰러지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몸은 몸대로 상하고, 돈은 돈대로 버린 꼴이었다. 게다가 4일만 일해주기로 했던 우리 알바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개인 약속을 취소하면서까지 나를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알바에게 너무도 미안했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나 스스로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충격이 제법 커서 오랜 시간 동안 우울감에 시달렸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마당 있는 집에 사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하는 근본적인 회의감이었다. 여자가 혼자서 마당 있는 집에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일이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혼자서 해 나갈 수 없다면, 이 생활을 포기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이어졌다. 나 좋자고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해도 되는 걸까. 고민은 계속 깊어졌다.


시간이 다소 흐르자 마음이 많이 정리가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진작부터 길고 긴 추석 연휴 때는 전문가를 불러 데크를 다시 깔 계획이었다. 이전 집 사람들이 제대로 관리를 안 해주어 데크가 다 썩어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미리 전화를 해 공사일정을 잡으려는데, 그분이 마침 일정이 있어서 우리 집 일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른 분이라도 추천해 달라고 하니, 일은 제대로 안 하면서 돈만 부풀리는 인간들이 많아서 자기는 추천을 해줄 수가 없다고 하신다. 


난감해진 내가 '저거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으니, 아저씨가 쉽다고, 별거 아니라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하신다. 아저씨가 그간 내가 해온 작업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은 나는, 갑자기 또 용기백배하여 직접 데크 깔기에 도전하기로 결심을 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은 울타리 사건은 까맣게 잊은 것이다. 


오, 신이시여~ 이것이 정녕 제가 깐 데크란 말입니까. 이걸 완성해 놓고 어찌나 흐뭇하던지요. ㅎㅎ

뭐, 이러저러해서 결국 데크는 직접 내 손으로 깔았다. 물론 2명의 알바생들과 함께. 당연히 쉽지 않았다. 일의 순서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다행히 울타리와는 다르게 내 계산대로 되었다. 성공한 것이다. 데크 까는 것 외에도 이곳저곳 손볼곳이 많아 일을 많이 벌려 놓았으나 채 수습을 다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우리 집 마당은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다. 나는 널브러진 일을 그냥 보아 넘기는 성격이 결코 아니지만, 울타리 사건을 겪으며 힘들었던지라 그냥 모른척하고 몸을 사린채로(?) 그렇게 겨울을 통과했다.


우리집 마당은 아직 이런 지경이에요. 정리하려면 아직 멀었지요. 뭐, 천천히 하려고요.

이제 다시 봄이 왔다. 일에 지쳐서인지 마당을 둘러보는 일도 마땅치 않던 나는, 봄이 되니 다시 일할 의지가 솔솔 생겨나기 시작한다. 작년에 벌려놓았던 일들도 수습하고 또 이것저것 예쁘게 마당을 꾸며보고도 싶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이 일할 팔자인가 보다. 다만, 작년에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한 가지를 결심했다. 이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큼'만 일을 벌이자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절대 내가 하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겠다고. 이렇게 결심하고 나니 한결 맘이 더 편해졌고, 마당에 쌓여 있는 일을 외면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텃밭이 이 지경이니 올해 농사는 힘들겠지요 ㅎㅎ

그.래.서 올해는 과감하게 텃밭농사를 포기했다. 대신에 작년에 벌여 놓은 일들을 조금씩 수습하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꽃밭도 새로 정비하고 싶지만, 역시 욕심을 내려놓고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오랜 시간을 '마당 있는 집 살이'를 꿈꾸었다. 최대한 자연과 가깝게 살고 싶어서였지만, 내 손으로 내 집 마당을 꾸미는 것에 대한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내 손으로 마당을 꾸미는 일이, 그 마당을 바라보는 일이 참 행복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다. 지쳐서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마당 있는 집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조금씩 욕심을 줄여나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그렇게 나는 또 세상 사는 이치 한 가지를 배운다. 


거실에서 내다보면 딱 이 풍경이에요.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죠. 올해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조팝꽃이 피기 시작했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웃사촌이란 옛 말인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