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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n 05. 2018

제초제를 뿌리지 않을 수 있을까?

마당 있는 집 살이 6년 차, 나는 언젠가부터 마당에 아예 대놓고 제초제를 뿌린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풀 뽑기가 얼마나 힘들고 귀찮은 일인지. 처음 한 두 해 열심히 풀을 뽑던 나는, 바로 포기하고 마당에 제초제를 뿌려왔다. 텃밭의 풀 뽑는 일도 힘든데, 마당에 앉은 풀까지 뽑을 자신이 없었다. 특히 촘촘한 잔디 사이에 앉은 풀을 뽑는 것이 제일 귀찮았다. TV에서 보는 매끈한 잔디밭은 단언컨대 백 프로 제초제를 뿌려 관리하는 마당일 것이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풀은 생명력이 참으로 강하다는 것. 

넓지도 않은 마당 이건만 잔디 깎는 것이 너무 힘들어, 잔디는 일부만 남기고 자갈돌을 깔았다. 잔디 깎는 수고로움도 줄이고, 풀이 앉는 면적도 좀 줄여볼 요량이었던 것.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풀은 자갈돌 위에서도 잘만 자랐다. 풀이란 놈은 아주 작은 틈새라도 비집고 들어가는 탁월한 능력자인 것이다. 보도블록 사이는 물론, 콘크리트 사이 아주 작은 빈틈도 비집고 들어간다. 하물며 자갈돌 좀 깔았다고 풀이 못 앉을 줄 알았다니.


자갈돌 사이사이 풀이 한아름이다. 자갈돌을 깔면 풀이 앉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ㅎㅎ

여. 하. 튼 나는 지난 몇 해 동안 풀이 앉기 시작하면 바로 제초제를 뿌렸다. 이놈의 독한 제초제는 2번 정도만 뿌려주면 풀이 앉지 못한다. 관리하기 이보다 편할 수 없다. 매끈한 잔디밭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제초제를 뿌리면서도 마음은 늘 찝찝했다. 마당과 텃밭과 화단의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잔디밭에 뿌린 제초제는 텃밭과 꽃밭으로 흘러들어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디밭은 싸복이 남매가 늘 뒹굴뒹굴 노니는 장소다. 싸복이 남매에게도 결코 좋을 리 없다. 그러다가 올해 나의 죄의식에 불씨를 댕기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울타리 바깥쪽에는 꽃잔디를 심었다. 아파트에 살던 시절, 봄이 되면 마당에 진분홍색 꽃잔디가 피는 집이 제일 부러웠다. 마당에 살게 되면 꽃잔디부터 심어야지, 하고 늘 별렀다. 꿈꾸던 대로 꽃잔디를 심었다. 꽃잔디는 잔디의 일종이라, 심어놓으면 알아서 잘 퍼진다. 몇 년 동안 해마다 4월이면 풍성한 꽃잔디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웬일인지 꽃잔디가 많이 죽어, 올봄에 꽃을 많이 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 제초제 밖에는. 안 그래도 은근히 죄의식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이참에 과감하게 제초제를 뿌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올 한 해는 제초제 없이 지내보기로 한 것이다.


어디가 꽃밭이고 어디가 '안 꽃밭'일까요? ㅎㅎ 홀씨가 바람에 날려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곤 합니다.

얼마 전 계란 파동 때 복지농장 달걀에서 DDT가 검출되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과수원으로 쓰던 땅을 닭 농장으로 전환한 것인데, 오래전에 과수나무에 뿌렸던 DDT가 아직까지도 땅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뿌리는 제초제, 농약, 살충제 같은 것들이 오랫동안 흙에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내 땅, 내 마당이라고 해서 쉽게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 잘하는 일인 걸까. 내 땅이라고 해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 있을까. 꽃잔디 사건을 계기로 여러모로 제초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잔디반, 풀 반입니다. 그나마 잔디가 잘 자라지 않아 군데군데 땜통이 났네요 ㅎㅎ

생각해보면, 똑같은 식물인데, 보기에 예쁜지 그렇지 않은지, 혹은 꽃밭에 피었는지 바깥에 피었는지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 것도 우습다. 잡풀이라고 생각해서 마구 뽑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개망초 꽃의 새싹이었던 적도 있다. 지금 우리 집 마당에는 홀씨가 날려 생긴 새싹 풀들이 한창이다. 운 없게 꽃밭이 아닌 곳에 앉았다는 이유로, 이름 모를 들풀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잡풀 취급을 받고 있다. 꽃이라 이름 붙이면 꽃이 되고, 잡풀이라 이름 붙이면 잡풀이 된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래도 이발을 해 놓으니 잔디밭 같긴 하네요 ㅎㅎ

요즘 나는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풀을 뽑고 있다. 잔디밭엔 잔디 반 풀반이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할 만한다. 장마철이 되고 본격적으로 풀이 우거지는 계절이 되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결심 따위는 뒤로 하고 슬그머니 제초제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올 한 해는 제초제 없이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결심해 본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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