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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Feb 08. 2018

이웃사촌이란 옛 말인 걸까?

"누구다 나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 해. 불편하고 힘드니까 다들 아파트에 사는 거야"


마당이 있는 집을 사겠다는 나에게 친한 직장동료가 건넸던 말이다. 맞는 말이다. 마당 있는 집에 5년을 살고 보니 더 절실히 와 닿는다. 지난 글들에서 마당 있는 집에서 살면서 느꼈던 소소한 행복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불편한 점에 대해서 더러 언급하긴 했어도 누군가는 내 글을 보면서 '마당 있는 집에 사는 건 역시 참 좋은 거야' 하고 느낄 수도 있겠다. 오늘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커다란(?)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이웃이 사촌보다 더 낫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예전에는 이웃과 친밀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이웃집과 친하게 지냈고 이웃에 살지 않는 지금도 부모님들끼리는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낸다. 아파트가 대개의 주거형태인 요즘은 이런 일이 흔치 않다. 나 역시도 수없이 아파트를 전전하며 살았지만 이웃과 안면을 틔고 지내는 일은 드물었다. 마당 있는 집은 이웃과의 관계가 아파트와 같을 수는 없다. 특히 시골의 마당 있는 집은 도심의 단독주택과도 또 다를 수밖에.


내가 좋아하는 계절 듬뿍 담은 우리집 마당 풍경

마당 있는 집 살이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좋은 이웃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살아 가족보다 더 자주 보며 서로 먹을 것도 나눠먹고 힘든 일은 서로 돕는 그런 이웃사촌. 나는 워낙에 낯을 가리는 편이라 저런 관계를 꿈꿔본 적은 없다. 하지만 여자가 혼자 마당 있는 집에 산다는 건 다소 위험스러울 수 있으므로 적어도 이웃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기를 바랐다. 이사 가기 전에 가까운 이웃집과 이장님 댁에 수박을 사들고 가 인사를 드렸으며, 이사 오는 날 시루떡을 맞춰 동네에 전부 돌리기도 했다(나 답지 않은 짓이다). 뿐만 아니라 좋은 이미지를 위해 마주치는 동네 어른들마다 열심히 인사를 했고(평소에도 그랬으면 지금쯤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거다), 너무너무 가기 싫은 동네 회의에도 가급적 참석하려 노력했다(정말 가기 싫었다 ㅠㅠ). 모든 게 다 좁은 시골마을에서 이웃들과 나쁘지 않게 지내는 것이 좋을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이렇게 나름 애써 노력했건만, 5년이 지난 지금 옆집 아저씨와는 일절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지내며(옆집 아저씨가 먼저 인사하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옆집 할머니는 내가 (차마 어른을 모른 척할 수는 없어서) 열심히 피해 다닌다. 그간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하필이면 이상한 이웃들을 만난 걸까? 아니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일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길다. 이웃들 때문에 그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지금도 나름 받고 있고) 얼굴 보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저들을 이해하기 힘들고, 저들 또한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을 한다. 그냥 맘 편하게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런 시골마을에서 경계를 면한 이웃 간에 사이좋게 지내기가 워낙 힘든 일이고, 나중에 이사 온 사람은 원래 살던 사람과의 적응이 어려운 법이라고. 도시의 경우는 단독주택이라고 해도 담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웃 간의 경계 또한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시골 마을은 대개 담도 없고 경계 또한 두리뭉실한 경우가 많아서 분쟁의 씨앗이 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심지어 남의 땅에 버젓이 나무를 심거나 정자를 만들기도 한다(실제 내가 이사 오기 전 우리 집 이야기다). 


강아지들이 편하게 마당에 있을 때의 풍경이 참 좋다. 이런 것이 힘들어도 나를 여기 살게 하는 이유.

아파트에서는 이웃 간에 얼굴조차 보기가 쉽지 않다. 마당 있는 집에 살면 이상하게도 이웃과 마주칠 일이 잦다. 아무래도 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제법 길기 때문일 것이다.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이웃과의 관계가 이러니 불편함이 크다. 또한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장점 중 한 가지를 잃은 거 아닌가 싶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앞집과는 그나마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점. 60대 부부가 함께 사는 집인데 혼자 산다고 먹을 것도 가져다주시고 종종 챙겨주시는 데, 나름 여기서 위안을 얻는다(담을 면하지 않은 이웃이라 그런가?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우리 마을은 시내에서 가깝긴 해도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도 제법 있지만, 여기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았던 분들이 많다. 회의도 자주 하고, 함께 밥도 해 먹고, 김장도 같이 하는 등 아직까지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남아 있는 편이다. 대청소한다고 나오라는 날도 있고, 동네 길목에 풀도 함께 뽑는다. 뭐 이렇게 참여해야 할 일이 많은지. 1인 가구로 도시에 살면서 반상회 한번 가본일이 없던 나에게는 다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오로지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이사 왔을 뿐, 이웃이나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시골은 도시와 여러 가지로 정서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나란 사람은 그런 정서에 그다지 어울리는 인간은 아니라는 걸, 마당 있는 집 살이를 통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인적 없는 산책길. 이런 즐거움 또한 시골에 사는 장점일 것이다.

반려동물들과 편한 내 집에서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은 나의 욕망과 그래도 동네 사람들과 나쁘게 지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늘 마음의 갈등을 만들어 낸다.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맞춰주며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정말이지 저 옆집 아저씨는 꼴딱 서니 뵈기 싫다고 ㅎㅎ 저 이웃만 없으면 살 것 같다고 ㅎㅎ 세상살이가 다 어찌 내 맘 같을 수 있을까.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룬 대신 여러 가지 놓친 것들이 아마 많을 것이다. 내가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워하기보다는, 내가 얻게 된 것들이 주는 즐거움에 집중하련다.


뭐, 어쨌든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골마을이 좋다. 마당 있는 우리 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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