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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pr 24. 2020

분리불안이 아닌, 사랑

엄마껌딱지, 그 사랑스러운 단어에 대하여

요새 본인도 당황스런 눈치다. 여전히 엄마가 너무 좋지만, 더 이상 재밌진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커가는 거겠지. 이렇게 서서히 멀어지는 거겠지. 건강한 성장이다.


소문난 껌딱지였던 너. 나도 그만큼 네 껌딱지였기에 너의 강렬한 사랑이 조금도 거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난 너와의 진한 사랑이 반가웠다. 차고 넘치는 내 마음속 감수성을 쏟을 곳이 생겼으니 말이다. 한번은 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난 왜 엄마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지?” 맙소사, 이 표현을 창작해 내다니. 아이는 좋아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 내 품을 파고들었다. 너는 나를 우주처럼 여겼고, 나도 널 아낌없이 사랑했다.


아이는 5살이 돼서야 첫 기관에 갔다. 요새는 기관을 일찍부터 다니는 추세라 3살에만 안 보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아이와 함께 슈퍼라도 나가면 대체 왜 여태껏 끼고 있냐는 질문을 매일같이 들었다. 못난 엄마였던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해서 안 보낸다고 멋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의 분리불안을 탓했다. 아이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추어 변명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기관을 '안' 보낼 수 있었는데 그만 '못' 보내고 말았다. 난 순전히 어린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참 좋았고, 네 기질과 관계없이 가정보육을 선호했을 사람인데 말이다.


핑계를 대자면, 워낙 사방에서 핀잔을 많이 받아서이다. 어딜 가도 한소리씩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엄마가 아이를 못 놓는다느니, 그렇게 끼고 키우면 아이를 망친다느니, 엄마 때문에 아이가 더 예민해지는 거라느니. 그런 말을 들으면 주눅이 들었다. 나도 아이의 분리불안이 걱정되던 터라 가슴이 미어졌다.


아기 때부터 유난히 엄마와 떨어지는 걸 힘들어 했다. 엄마 품에서 떨어지면 자지러져서 유모차도 태우지 못했다. 네다섯 살까지도 현관문을 나서면 아이의 뒷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달이 지구를 바라보며 공전하듯 얼굴이 언제나 엄마를 향해 있었으니 말이다. 삼삼오오 모여 냅다 뛰어다니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당연히 또래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심지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다정한 아빠를 두고도 꽤 커서까지 아빠에게까지 낯을 가렸다.


아이가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엄마를 우주처럼 사랑하고 엄마와 떨어지면 세상을 잃은 듯 서럽게 울던 너의 마음이, 사랑이었다는 걸. 그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한시도 떨어지기 싫고, 안고 싶고 손잡고 싶고, 좋은 걸 보면 같이 하고 싶은, 순수하고 맑은 사랑이었다는 걸 말이다. 왜 이 애틋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분리불안이라는 병적인 말로 치부했던 걸까? 그리움이라는 감정, 참 힘든 건데. 엄마가 우주인 어린아이에게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나도 누군가가 보고 싶어 펑펑 운 적 있으면서, 전화를 끊기조차 힘들어서 질질 끈 적 있으면서, 가슴이 아릴 정도로 그리운 적 있으면서. 이 단순하고 명확한 걸.


유난히 거대한 사랑 그릇을 가진 나와 남편의 유전자이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던 대학생 시절에 우리는 장거리 커플이었고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 남편이 기차역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오면, 난 심장이 바늘로 콕콕 찌르듯 아팠다. 깊은 슬픔이 몰려와 압도되었다. ‘제발 다음 버스 타’라며 남편을 버스정류장에 붙잡아 놓았다. 나만큼이나 마음이 여린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버스를 몇 대씩 보냈다. 막차가 올 때까지 곁에 있어주곤 했다. 그때 내 마음은 불안이 아닌 사랑이었다. 너무나 깊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지는 게 슬픈, 순전히 그 마음뿐이었다. 나는 나를 이해해주는 그런 남편이 참 좋았다. 이토록 깊은 감정을 알아주고 수용해 주는 데에서 깊은 신뢰를 느꼈다.


아이도 내 마음과 똑같았으리라. 아이는 엄마와의 애착을 넘어 세상에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에릭슨의 심리사회발달이론에서는 생후 1년까지를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쌓는 시기라고 말한다. 내 아이는 그 시간이 몇배로 연장되었다.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여 세상을 배워나가던 생애초기 몇년은 아이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이는 그 시간을 통해 더디지만 탄탄히 성장했다. 세돌쯤 되어 아빠에게 마음을 열었다. 지금은 아빠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아이다. 네돌쯤 돼서야 기관에 도전할 수 있었고, 다섯돌이 돼서야 친구들과 놀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짧디 짧았다. 너와 365일 24시간 함께한 시간, 긴긴 인생에서 고작 손에 꼽을 몇년뿐이다. 난 너를 후회없이 사랑했고 품안의 자식 시절을 온전히 누렸다. 달콤한 살냄새를 맡으며 온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쫀득한 생활은 일생에 단 한번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키울 것이다. 단, 변명은 덜하고 당당하게 말이다.


나중에 나 같은 엄마를 보면 꼭 좋은 말만 전해줘야지.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진한 사랑이라고. '제일 좋을 때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온맘 다해 전해주고싶다. 엄마껌딱지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 단어인가. 인터넷에 상주하는 호호할머니가 되어 밀착육아를 전파하고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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