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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Oct 28. 2020

내 로망과 다른 너

솔직한 내 마음은



하원셔틀 내리자마자 안아달라는 너를 밀어내곤 했다. 강하게 키우겠다는 불안한 강박. 이 정도도 못 걷느냔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실 아이는 그 정도도 못 걷는 게 아니다. 다만 떨어져 있는 동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고 따뜻한 엄마 품이 그리웠을 뿐. 긴 하루 끝에 만난 엄마가 너무 반가워서, 억누르고 있던 다섯살의 응석이 나왔을 뿐.
 
 기관 적응이 무척 힘들었던 아이인데, 이제 격정적인 거부 없이 잘 다니다 보니 까먹어버렸다. 아이가 얼마나 기특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원에서 에너지소모가 얼마나 많을지. 그런데도 얼마나 잘 버텨내고 있는지. 매일 아침 가기 싫은 마음을 이기고 그저 사랑하는 엄마의 말을 믿고 따라주는 어린 너의 대견함을 어느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 엄마와 있고 싶다며 칭얼거리는 마음을 좀 더 따스히 받아줬다면 좋으련만. 시무룩한 얼굴, 긴장된 표정으로 유치원에 들어가는 아이의 뒷 모습을 훗날 떠올리면 어떤 마음이려나. 하원 후 투정에 담긴 의미를 잊지말아야지.


돌이켜보니 내 육아 로망은 ‘독립적인 아이’ 키우기였다. 나는 타고나길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라 그런 점을 아이가 닮길 바랐다. 특히 아들이니까 내 남동생의 성장과정을 떠올리며, 내 아이도 당연히 그렇게 자율적이고 주도적이고 뚝심 있는 아들로 자랄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당연히 '내가 할 거야!'라며 고집부리고, 나가놀땐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다니고, 때가 되면 엄마를 내치고,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 그게 순리라 믿었지.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수용한다고 주장하며 아이의 불안과 의존 욕구를 케어해 주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만의 목표를 심었었나 보다. ‘넌 이 불안을 극복할거야’, ‘네가 지금은 의존적이지만 내가 잘 키워서 널 독립적으로 만들어 줄게’, ‘할 수 있어, 파이팅!’. 은연중에 이런 마음이 있었던 거 같다. 너의 욕구를 누구보다 잘 받아주면서도 ‘의존욕구를 받아줘야 독립적으로 큰대’, ‘불안을 받아줘야 불안이 적어진대’라는 등의 목표가 있었던 것.


아이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언젠가는 극복해내길 바라는 게, 이게 진정한 수용일까? 진정으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의 아이보다 내 상상 속 미래의 아이를 보고 있던건 아닐까?
 
 물론 아이가 타고난 약점들을 최대한 털어내고 편하게 살길 바라는 그 마음도 절절한 사랑에서 기인한 거지만, 아이가 느끼기엔 어떨까? 어떠니 아들? 지금은 어리니까 괜찮지만 나중에는 꼭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성장해야한다는 나의 이 강박도 너에겐 폭력이 아닐까?
 
 어쩌면 앞으로도 쭉 의지하고 의논할 상대를 찾으며, 언제나 특별한 누군가와 인생을 함께 걷는 것이 아이의 성향이자 행복일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 남편을 보며 생각해본다. 우리 남편은 어릴 땐 어머님께, 결혼해서는 나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 회사에서도 꼭 절친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게 잘못된걸까? 쿵짝 맞는 사람만 있으면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잘하는데, 또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데, 그것도 신이 만든 하나의 멋진 성향이 아닐까?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건데. 좀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래서 뭐? 완벽한 사람을 만드는게 육아의 골은 아닌데 말이다.
 
 의존적인 아이에게 자율성을 길러주려고 무진장 애썼고 그것이 내 육아 목표였다. 아무리 애써도 잘 안돼서 답답하고 기질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자립’이라는 말에 조급하고 숨이 막혔던 거 같다. 남의 눈을 의식했던 걸까? 참 어려운거 같다.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디부터 제한해야 하는지, 그건 정말 케바케고 정답이 없고 엄마의 영원한 숙제일듯.
 
 '멋지다'라는 칭찬에 '아니야, 나는 애기야!'라며 화내는 널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네가 자라서 리더가 되길 바랐던 거 같아. 내딴에는 너를 위해서였어. 내딴에는 그랬어, 내딴에는. 엄마가 생각을 바꿔보려해. 언제나 지금처럼 너의 성장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격려할테지만 그건 네가 선택해야 하는 길일 테지.
 
 이제는 어떠한 이상향 없이 있는 그대로 너의 욕구를 받아주고프다. 무게중심을 옮기자. 기질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먼저 기질대로 살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래, 인생에 자율성이 너무나 중요하다지만 네가 의존적으로 살길 선택하는 것도 너의 자율적인 결정일 수 있지.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일단 엄마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상대가 돼줄게. 너의 여린 마음을 예뻐해 줄게. 너의 의존성까지 사랑할게. 너를 위한 육아공부가 자연스런 우리의 관계에 방해가 되지 않게 단단히 마음을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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