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예민했던 나는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어린 동생을 돌보며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혹은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애어른으로 살았다. 손 갈 일 없는 의젓한 아이. 떼 한번 부리지 않는 빨리 철 든 장녀. 어느새 그게 내 정체성이 되었다.
그것이 '가짜 독립성'이었던 것을, 아이을 키우며 육아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자연스레 나타나는 의존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겉으로는 똑부러지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속에 해소되지 않은 의존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를 나쁜 것으로 인식하여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 또 누르며 외로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내 자식의 의존적인 모습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영아기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아기 티를 벗은 유아기가 되니 그 모습이 상당히 거슬렸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자립'이라는 멋진 말이 나를 불안하게 했던 거 같다. 아직도 어린 아이일 뿐인데, 자연스럽게 받아 줄 수 있는 귀여운 의존 욕구조차 괜한 불안으로 내치는 경우가 있더라.
- 엄마가 바나나를 잘라주는걸 좋아하는 아이, VS
- '바나나 정도는 스스로 잡고 까먹어야 주도적인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이제 학교도 가는데...' 걱정하는 엄마
진짜 별게 다 걱정일 때는, 옆집 새댁을 토닥이는 고운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 본다. "바나나 백번 천번 잘라 줘도 아이 잘 자라! 괜찮아, 새댁!"
그러네. 옆집 할머니의 마음에 쏙 들어가 보면 괜한 걱정들이 가시고 모든 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바나나 까짓 거, 잘라 주면 어때. 내친김에 입에도 쏙 넣어준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햇살같은 너의 웃음이 활짝. 그래! 이거면 됐다. 이 반짝이는 웃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너를 키워주겠지.
나도 이제서야 조심스레 친정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려 본다. 많은 짐에서 벗어난 엄마도 이제야 반갑게 나를 품는다. 나는 엄마의 친구 자리를 벗어나 엄마의 딸이 되어 본다. 갑옷을 벗고 미숙한 모습으로 용기 내어 칭얼거려 본다. 엄마에게 나의 보호자가 될 기회를 준다. 엄마의 품 안에서 안전함을 느낀다.
이런 거구나, 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