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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pr 24. 2020

모든 잘난척이 무너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육아

난 다를 줄 알았다.


임산부 시절 나는 자신만만했었다. 사랑하는 내 자식 키우는 게 힘들어 봐야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언제나 열심히 살았으며 열심히 한 만큼 성과를 내곤 했다. 육아도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육아가 힘들다는 건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은 자들의 푸념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난 임신 중에도 남편에게 과일 심부름 한번 시킨 적 없는 씩씩한 임산부였다. 아이도 잘 키울 게 분명했다.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나. 이미 모성애의 출발선부터가 달랐다. 뱃속 태동을 느끼며 둘만의 교감이 너무 행복한 나머지 아이를 낳는 것이 아쉬웠을 정도니 말이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은 순간 오만가지 감정이 몰려와 펑펑 울고 말았다. 처음 눈을 맞추던 순간 보석 같은 아이의 눈빛이 내 심장에 콕 박혔다. 처음 젖을 물리던 순간 나는 엄마라는 사람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나는 아이의 우주였고, 아이도 나의 우주가 됐다.


진짜 육아가 시작되었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녹초가 되는 날들이 지속됐다. 예상하고 각오했던 육아 일상이었으니 놀랄 것도 없었다. 나는 이에 ‘열심히’ 임했다. 먹이기, 재우기, 놀아주기 미션들을 하나씩 클리어한다고 생각하니 게임처럼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낌없이 나의 열심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육아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지 않았다. 잘 먹이고 재웠는데도 아기는 여전히 울었다. 왜 이렇게 잠을 못 잘까? 분명히 배부를 텐데 왜 자꾸 젖을 찾을까? 걸을 시기가 지났는데 왜 걷지 않지? 왜 마치 불안정애착처럼 불안해 할까? 아이는 고유한 존재였고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없었다. 하루하루 그 사실을 느낄수록 나는 당황했다.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심지어 나는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었다. 내 아이는 남들보다 더 못 잤고, 더 느렸으며, 더 많이 울었다.


육아의 팔할은 재우기라기에 미리 자체 준비를 마쳐 놓은 터였다. 밤새 여러 번 깬다고? 오케이, 난 밤샘 근무에 익숙하니까 문제없어. 안 자고 버틴다고? 오케이, 그럼 재우려 안달내지 말고 놀아주면 되지. 무지했던 나는 아기를 재운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아기는 잘 자야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그 미션에 번번이 실패했다.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나 버렸다.


모든 잘난척이 무너졌다. 그런 면에서 나를 단련해 준 아이에게 고맙다. 만약 나의 육아가 아주 수월했더라면, 육아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잠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나처럼 하면 잘 자는데’라고 생각했을 거고, 기질 문제로 어려워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다 키우기 나름인데’라며 자만했겠지. 육아란 무너지고 절망하고 견뎌내며 겸손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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