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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pr 05. 2021

아이가 미울 때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정신건강 지표로 꼽았다. 육아란 그 두가지를 다 충족시킨다. 더없이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는, 더없이 뜻깊은 일.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육아가 제일 힘들다고 말할까? 일과 사랑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두가지가 분리되지 않고 같이 가기 때문에 그 둘이 충돌하고 내적갈등을 일으키고 나아가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정신과의사 정우열 선생님의 <엄마니까 느끼는 감정>에서는 때로 이 두가지를 정확하게 구분해야만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너무 힘들 때는 잠시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랑’을 멈추더라도 아이를 돌보는 ‘일’은 계속할 수 있으며, 오히려 잠시 사랑하지 않아야 더 빨리 사랑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다. 내 아이를 잠시 사랑하지 않는, 까만 마음까지도. 소화되지 않은 감정은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같은 감정이 자극될 때 이전 것들까지 뭉쳐서 커다란 눈덩어리가 되어 튀어나온다. 그러니 조금만 자극받아도 버럭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아이가 잘못한 상황이 아닌데도 쌓여있던 폭탄의 불똥이 아이에게 튀기도 한다. 다채로운 육아감정을 어느 하나 외면하면 안 되는 이유다. 쌓이지 않도록 매일 소화하고 해소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또 아이를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보다 ‘우리’를 중시하며 욕구와 감정을 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곤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우울증에는 자신의 기분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감정 억압의 달인이었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명목 하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억누르고 외면했던가. 미워도 미움을 느낄 용기가 없어서, 절망해도 절망감을 느낄 힘이 없어서, 느껴질 새도 없이 깜짝 놀라 황급히 덮어버리곤 했다. 그게 성숙한 사람의 자세라 생각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착각했었지.


감정은 억누르고 부정할수록 더 커지고, 느끼고 흘려보내야 자유로워진다. 감정 해소법의 두가지 중요한 요소는 ‘느끼고’ ‘흘려보내는’ 것이다.


먼저 나의 감정에 집중해 준다. 감정은 관종이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은 마음속에 계속 남아서 자신을 알아달라고 아우성친다. 아이를 달래듯 감정이 하는 말을 충분히 들어 준다. 급히 덮어버리지 말고 충분히 느끼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은 감정을 표현하며 흘려보낸다. 각잡고 일기를 쓰든, 대충 종이를 찢어 휘갈기든, 그냥 감정선을 따라가며 마구 적어 보자. 혼잣말로 내뱉는 것도 효과가 좋다. 마치 누가 들어주고 있는 양 중얼중얼거리며 흘려보내는 것도 기대 이상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정제되지 않은 날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자연스레 흘려보내자.


엄마들은 책임감이 강하다. 나만 바라보는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하고, 회사 일에 지친 남편 마음도 돌아봐야 한다. 정작 나 자신을 챙기는 것을 잊는다. 정작 내 마음을 읽는 법은 잊는다.


감정을 직시하고 입밖으로 꺼내는 데에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실은 지금도 꽤 많은 에너지가 든다. 아이의 감정에는 집중해 주면서 왜 나에게는 그러지 못했을까? 내 마음이 참 외로웠겠다. 혼자 견디느라 버겁고 속상하고 억울했겠다. 일상에서 이렇게 감정을 느끼고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점점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걸 느낀다. 나와 내가 편안한 사이가 되는 신기한 경험. 나답고, 자유로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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