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100개쯤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일부터 새로 태어날거야. 그러니 오늘은 먹고 죽자.
시작부터 이미 마음이 찔리셨다면, 잘 오셨습니다.
저는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늘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내일부터 진짜 운동할 거니까, 오늘은 푹 쉴게요.”
“내일부터 공부할 거니까, 오늘은 마지막으로 놀게요.”
“내일부터 진짜 시작이니까, 오늘은 놀자·먹자·쉬자·죽자… 등등.”
그리고 다이어트 앞에서는 이 멘트가 유독 화려해집니다.
어쩐지 그날이 ‘마지막 만찬’이 된 것처럼요.
다이어트를 결심한 날, 저는 굉장히 진지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은 진짜 마지막으로 먹는 날이니까, 대충 먹으면 안 돼.”
마치 사형수가 마지막 식사를 고르는 것처럼 메뉴를 고르고 또 골라요.
치킨은 뼈? 순살?
피자는 페퍼로니? 고구마무스 추가?
탄산은 제로로 할까? 아냐, 오늘은 콜라도 풀로 마시자.
배달 앱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회의를 거듭하고, 배가 터질 만큼 먹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 이제 여한 없다. 나 내일부터는 진짜 다이어트 잘할 수 있겠다.”
그리고 다음 날.
정말로 샐러드를 아주 잘 먹습니다.
처음 3일은 진짜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버텨요.
쉬는 시간마다 물도 열심히 마시고,
계단도 한 번쯤 걸어 올라가 보고,
저녁에는 조금 배고픈 채로 누워봅니다.
3일째쯤 체중계 숫자가 0.7kg 정도 줄어 있으면,
“하. 역시 난 마음만 먹으면 하는 사람이었다니까.”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체중은 분명 줄어가는데, 함께 줄어드는 것들이 있어요.
인내심
말의 온도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점심에 동료들이 “오늘 뭐 먹을까요?”라고 묻는 순간,
물어본 동료가 괜히 미워지기도 합니다.
SNS에 누가 떡볶이 사진을 올리면 잠깐 ‘언팔’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이쯤 되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이 생기죠.
“이게… 사는 건가, 아니면 대사량만 높은 좀비인가…?”
물론 세상에는 진짜 강철 멘탈로 꾸준히 식단+운동을 지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심이 올라와요.
그리고 사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저.. 우리 초보 다이어터들의 고충을 아십니까…?”
저 같은 사람은 솔직히 다이어터라기보다 “마음만 먹는 사람”에 더 가깝거든요.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시작만 100번 한 다이어트 경력자”라면…
반갑습니다. 우리 동지 맞습니다. (동지야… 여기야 여기…)
가만히 생각해 보면요.
몇십 년 넘게 이 몸무게, 이 식습관, 이 생활 패턴으로 살아왔는데
5일, 10일 식단 조절했다고 인생이 확 달라질 리가 없죠.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 목숨이 한 개가 아니라 최소 100개쯤 되는 줄 알고 살았구나.”
매번 불타올랐다가 다시 부활하는 불사조 모드였던 거죠.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게 순리인데,
“오늘까지만 먹고 죽고, 내일부터 진짜 다이어트.”
를 외치며 또다시 부활하는 불사조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이제 불사조처럼 살지 말고, 그냥 동네 비둘기로 살아보자.”
불사조는 멋있지만 현실감이 없습니다.
항상 타오르고, 항상 새로 태어나는 상상 속 동물이니깐요.
비둘기는요?
순리에 맞게 살다가 배고프면 뻥튀기도 주워 먹고,
또 적당히 날아다니며 오늘 하루를 넘깁니다.
아, 그렇다고 비둘기가 편하게 산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람들한테 “훠이훠이” 쫓겨 다니고,
바닷가 비둘기는 갈매기·기러기랑 경쟁도 해야 하잖아요.
비둘기야, 너희를 무시하는 게 아니야…
상상 속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화려한 불사조 말고,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비둘기 같은 인생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물론 뚱둘기 말고요.(정색)
그래서 제가 요즘 연습하는 건,
거창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절반 전략’이에요.
밥도 한 공기 꽉 채워 먹는 대신, 절반만 덜어보기
운동도 한 번에 1시간이 아니라, 20분부터 시작해 보기
“이번에 안 되면 인생 끝이야” 같은 극단적인 생각도 절반만 믿기
뭘 해도 꽉 채워 먹고, 또 어떤 날은 아예 굶어버리는 대신
조금 덜어내는 것.
그리고 신기하게도, 살도 조금씩 빠집니다. (할렐루야.)
밥 한 공기 절반으로 덜어내는 거,
치킨 2조각만 먹고 멈추는 거…
이거 진짜 아무나 못 하는 고난이도 기술(?)인 거 아시죠?!?!
그래서요,
오늘 조금 더 드셨더라도,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사조처럼 타오르지 못해도,
완벽하게 지키진 못하더라도,
매번 다시 생각해 보고
조금씩 덜어보는 그 과정 자체가 진짜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건 다이어트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마음, 욕심, 책임감, 자책감…
살다 보면 뭔가를 절반쯤 덜어내야 하는 순간들이 분명 찾아오잖아요.
그때마다 ‘아예 포기’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연습과 용기가
참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맥주도 한 번에 가득 따라 버리면 거품이 넘쳐서 오히려 제대로 못 마시잖아요?
우리도 너무 꽉꽉 채워 넣거나 급하게 비워 버리면,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편하게 들이키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조금 덜어내 보는 연습을 해보려고 해요.
그럼에도,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죠?
“그래 그래 알겠고! 내일부터는 진짜… 다이어트해야지.”
괜찮습니다.
왠 줄 아세요?
저도 내일부터 다이어트할 거예요!!! 흥.
다이어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오늘도 조금 덜어내고,
조금은 가벼워진 삶이 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