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죽도록 미워해요.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홍탕과 백탕 아니, 혼란의 도가니탕

by 조렁뚱땅

요즘 저는,

남의 집 싸움과 눈물 이야기를 일주일 내내 시청하는 관계 예능 애청자입니다.


TV를 켜면 부부 갈등, 자녀 고민, 연애 이야기까지 각종 ‘관계 예능’들이 쏟아지죠!!

제 일주일은 이 예능 편성표로 꽉 찬 상태입니다.

(“그..남의 집 말고… 너의 인생에 좀 더 집중해보는건 어때…?”)


인생이 예능 편성표처럼 느껴질 때


보다 보면 이게 참 인생 사이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기와 부모의 전쟁 같은 시기 : 금쪽같은 내 자식

설레고 복잡한 연애·결혼 시기 : 나는 홀로, 환승연인

“같이 사는 게 뭘까?”를 다시 묻게 되는 시기 : 이혼 숙려 캠핑, 각종 결혼·이혼 예능들

“아기 때부터 결혼, 이혼까지 생애 주기 풀코스 편성표네…” 싶은 구성이죠!


웃으면서 보다가도, 순간순간 가슴이 콕콕 찔릴 때가 많습니다.

분명 남의 이야기인데, 왜 자꾸 내 인생 예고편 같을까요??


‘금쪽이’를 보다가, ‘내’가 소환되는 순간


자녀 상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이런 말이 튀어나옵니다.

“아니 왜 저렇게 말을 안 듣지? 왜 저럴까, 진짜?”

그러자 돌아온, 어머니의 아찔한 멘트.

“너는 3배로 힘들었어. 저 정도면 양호한 거야.”


괜히 더 말했다가 제 유년기 흑역사가 편집본으로 재생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학대, 방치, 과한 통제, 혹은 너무 사랑해서 생긴 집착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 안의 눈물 버튼은 아주 성실하게 ON 됩니다.

(평소엔 감정 단무지인데, 이런 예능을 볼 땐 FFFFFFFF가 되는 사람…)


물론, TV 속 몇 장면만으로 모든 부모와 모든 가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보게 되고, 조심스럽게 말하게 됩니다.


“엄마를 미워해서 미안해요”라는 말


프로그램 속 심리극 연기자분들이 부모 역할을 대신하며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내가 미안했다.”

“널 사랑한다.”


딱 두 마디에,
수십 년 동안 부모를 미워하며 버텨온 사람들이 눈물을 쏟아내며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저도 사실 많이 사랑해요.”
“저도… 미워해서 미안했어요.”

한 사람의 일생에서,


그 장면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부모는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그리고 '엄마'의 역할과 정의는 무엇일까?


저 역시 학창 시절에도, 아니 지금도 가끔 '엄마'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반복해서 올라옵니다.

미움과 사랑 사이를 왕복하는 고속열차를 타는 기분이에요.
(중간 정차역 없음. 종착역도 없음. 그냥 계속 순환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가끔 미운 엄마

너무너무 미워하고 증오하지만, 마음 한켠에서 계속 사랑하는 엄마

보고싶은 엄마, 불쌍한 엄마, 든든한 엄마, 착한 엄마, 나쁜 엄마…

정말 각자의 사연만큼 엄마는 너무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떤 분들에게는,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너무 아프고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 글조차 불편하다면

그냥 내려두셔도 괜찮다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음보다 글이 먼저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 마음속의 ‘엄마’를 감히 누가 옳다, 그르다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저, 각자의 마음이 있는 자리에 조금이라도 안전한 숨 쉴 틈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라는 말의 양면


요즘 자주 보게 되는 문장도 있습니다.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야.”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하고, 살짝 복잡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엄마’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사랑과 함께 책임, 죄책감, 평생의 질문들이 따라옵니다.

(엄마 자격증 시험은 없는데, 왜 평생 자가 채점 시험을 보며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옆에는 늘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느끼지?”라는
자식의 질문도 나란히 서 있는 것 같아요.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아팠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엄마를 한 줄로 정의할 수 없어서, ‘까만 엄마’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엄마’라는 존재를 한 줄로 정의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 색깔로 정의했습니다.

나에게 엄마는 ‘까만색’이야.

햇살 같은 노란색,
먹구름 같은 회색,
분홍빛 기대,
보랏빛 슬픔

그리움, 고마움, 서운함, 미움, 연민, 웃음, 짜증이 다 섞이고 섞여서 결국 까맣게 보이는 사람


엄마를 완전히 좋은 사람으로도,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도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러 감정의 색이 섞여 까맣게 보이는 사람”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
“엄마를 미워해서 미안해요.”

이런 말들도 결국, 그 까만색 안에 섞여 있는 수많은 색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냥 이렇게 느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할 수 있고,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걱정할 수 있고,
서운하면서도 고마워할 수 있잖아요.


어떤 분에게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가장 정직한 마음일 수도 있고, 그 또한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꼭 훈훈한 재결합 특집으로 끝나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건 오류가 아니라, 그냥 인간 사용설명서 기본 옵션 같은 거라고 믿고 싶어요.
(현재, 정상 작동 중입니다…!!)


어쩌면 저처럼 이렇게만 인정해도 충분할지 모릅니다.

“아, 나에게 엄마는 한 가지 감정과 색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이 글은 사실 제가 저 자신에게 먼저 들려주고 싶어서 쓴 말들입니다.

“너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느끼니?” 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전에,

“그럴 수 있지.”

라고 한 번쯤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혹시 읽으시면서

“아, 나만 이런 마음인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이라도 드셨다면, 이 글은 오늘의 역할을 다 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일생에서 이렇게까지

미워하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자녀인 우리 모두가

조금 덜 미워하고,

조금 덜 죄책감 느끼고,

조금 더 편안하게 사랑하거나,

혹은 조금 더 안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흘러 흘러 생애 주기에 따라 어느새 엄마, 아빠가 되어버린 ‘나’에게도요.


너무 몰입해서 다치지도 말고,

그렇다고 완전히 회피하며 모른 척하지만도 말고,

각자의 속도대로.


오늘의 모순적인 내 마음과 감정을 조금씩만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힘들면… 예능 한 편 보면서 우리 잠깐 같이 웃다 울다 가요~


오늘 수요일이니, 뭘 봐야 하나~~ 보자 보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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