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집에 있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집에선 주로 누워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떻게든 책상에 앉아서 글 쓰거나 출간 준비 중인 작품을 퇴고하는 일을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카페를 못 가는 요즘은 집에서 작업한다. 하지만 집에선 좀처럼 집중해서 하기 힘들다. 괜히 넷플릭스를 들어가 보고, 의미 없이 인스타 피드 스크롤이나 내린다. 유튜브도 뭐 잼있는 거 없나 뒤적거린다. 그러다 현타 오면 글 쓴다. 하지만 글도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코로나 덕분에? 독립출판 수업이 한 주 미뤄졌다. 원래라면 이번 주에 책에 들어갈 종이를 고르고, 책 표지 만드는 작업까지 완료했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주면 드디어 책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게 되는데 한 주 연기되는 바람에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덕분에 지겨운 퇴고를 한 번 더 하는 중이다. 퇴고를 몇 번을 했는데 할 때마다 오타는 계속 나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은 계속 튀어나온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이모가 김장김치를 보내주셨다. 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치를 세 포기나 보내셨다. 나 혼자 사는데.... 냉장고도 작은데.... 김치는 자르지 않은 상태 그대로 배달되었다. 부엌에 앉아 가지런히 놓여 있는 김치들을 집어 들고 손으로 죽죽 찢었다. 그냥 가위로 자르려 했는데 엄마가 김장김치는 원래 손으로 죽죽 찢어 먹어야 맛있다고 했다. 가위나 칼 쇠가 닿으면 맛이 변한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왠지 어릴 때 먹던 김장김치가 늘 맛있었던 이유가 아마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작은 믿음이 생겼다. 김치를 용기에 담다 보니 용기가 모자랐다. 그래서 커피도 사러 갈 겸 다이소를 가기로 했다.
집 밑으로 내려온 게 얼마 만일까? 그 사이에 주변은 많이 바뀌었다. 집 근처 대부분의 상점이 폐업했다. 특히 자주 가던 써브웨이마저 문 닫은 걸 보고 약간 충격이었다. 그 옆에도 또 그 옆에 가게도 다 폐업했다. 진짜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싶다. 전염병 때문에 죽거나 굶어 죽거나 죽는 건 매한가진데 그냥 밥이라도 먹고 죽으면 때깔이라도 곱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김치를 전부 냉장고에 넣으니 다른 반찬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난감했다. 어떻게든 비집고 꾸역꾸역 넣어뒀다. 당분간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싶었다.
어젠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는데 오늘은 글을 하나 썼다. 겨우겨우 썼다. 어제오늘 고민하고 생각한 시간 다 합하면 글 열 줄 쓰는데 거의 5시간은 넘게 걸린 거 같다. 지금 쓰고 있는 ‘50가지 마음에 대하여’는 이제 30가지를 썼다. 가면 갈수록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는 느낌이다. 처음엔 쓰기 쉬운 주제로만 썼다면 이젠 쓰기 어려운 주제만 남았기 때문이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 1에서 2를 올리긴 쉽지만 30에서 31을 올리는 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무조건 50가지 다 쓸 것이고, 이것도 독립출판으로 낼 생각이다. 내년엔 책을 두 권 이상 출판할 계획이다.
저녁을 먹고 마저 남은 퇴고를 하다 갑자기 또 현타가 왔다. 일주일 동안 사람을 아무도 안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그런데 괜찮았다. 그것에 또 현타가 왔다. 이대로 적응해 버리는 게 아닌지 좀 무서웠다. 혼자 살아도 괜찮아지는 단계가 온 것이다. 이러다 정말 평생 혼자 살 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일단 밖을 나갔다. 산책하러 또 경의선 숲길을 갔다. 공덕에 아는 형이 있어서 같이 산책이나 하자 했는데 형이 싫다고 했다. 귀찮단다. 뭐 추운데 밖에 나오는 게 귀찮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했다. 이야기 결론은 올해는 18이다였다. 그렇다. 올해는 정말 18 같은 한 해였다. 내년도 18 같으면 진짜 18...
산책하면서 생각했다. 곧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고 나면 다음은 뭘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50가지 마음에 대하여’를 출판해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은 또 뭘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여행기를 쓰고 있으니 그걸 또 출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써도 여행기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즘은 사람들이 여행도 잘 가지 못하기도 하고, 세계여행은 이미 너무 흔해져 버려 매력이 없다. 뭔가 다들 비슷비슷하고 그래서 딱히 특이점을 찾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별로다. 하지만 그중에도 그 사람만의 감성으로 잘 써진 작품도 있다. 진짜 글 잘 쓴다는 의미는 이런 시장에서도 빛을 보낸 게 진짜이지 않을까... 특히 난 생선 작가를 좋아한다. 그 사람만의 특유의 감성이 있다. 좀 우울하고, 뭔가 차분한 그런 느낌 말이다. 나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 여행기만 쓰면 자꾸 뭔가 지우고 싶은 욕구가 든다. 재미없다. 그래서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산책하러 자주 나가야겠다. 산책을 한 번 다녀올 때마다 글을 하나씩 쓰는 거 같다. 산책하니 사색을 할 수 있고, 사색하니 글감이 떠오르는 것 같다. 마치 글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이제 서울은 곧 추워진다. 지금도 춥지만 좀 있으면 존나 추워진다. 그러면 산책도 힘들어지니 그러기 전에 한 번씩 나가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