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읗 Dec 06. 2020

망상

이번 주 내내 집에서 인디자인 작업을 했다. 처음 다뤄보는 작업이라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저번 주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받은 자료들을 참고하여 하나씩 작업했다. 2차 교정 교열함과 동시에 본문 글을 하나씩 옮겼다. 다시 오타 체크를 하고 문장 흐름에 맞게 조금씩 수정했다. 교정 교열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아마 다시 보면 또 고칠 게 분명하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꼬박 나흘이 걸렸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점점 하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단축키도 익숙해졌다. 디자인 작업물도 작가님이 생각보다 빨리해 주셔서 함께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마지막으로 목차를 만들고 쪽수를 넣으면서 대충 작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끝은 아니다. 다음 주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검사 맞고 책 표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 남은 숙제가 조금 더 있어서 오늘내일 해야 한다. 대충 글을 다 정리해 보니 220페이지 정도 나왔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누워서 유튜브 보다가 배고파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씻고 커피를 사러 나갔다가 산책이나 하고 오자 해서 경의선 숲길로 갔다. 서강대 앞에 섰는데 사람이 많았다. 수시 논술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학교 정문에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로 가득했고, 오토바이들은 ‘수험생 긴급수송’이란 푯말을 달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14년 전, 서울을 올라왔을 때가 생각났다. 친구 4명과 함께 수시 1차 면접을 보러 서울에 왔었다. 아마 내 기억으론 그때가 처음 서울을 왔던 것 같다.


수험생들 파이팅!!


 친구들과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과 경기도를 왔다 갔다 하며 면접을 봤다. 찜질방에서 자기도 하고, 친구 친척네에서 자기도 했다. 마치 여행처럼 느껴졌다. 나를 포함해 5명 중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은 친구는 1명이었고, 나와 나머지는 경남과 경북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었다. 서강대 앞에 서서 학교를 바라보니 만약 그때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면 내 인생도 조금 바뀌었을까를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 백수로 지내진 않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동시에 건널목 신호가 바뀌었다.


 날이 따뜻했다. 경의선 숲길을 따라 공덕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책을 출판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어느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제의를 받고, 그와 동시에 코로나가 종식되어 북 콘서트를 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주변 친구들과 은행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 등등 모두가 북 콘서트를 와서 축하해주는 장면을 떠올렸다. 옆엔 누군지 모르지만, 여자 친구도 있다. 꿈이고 망상이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생각하며 마스크 속 습기 찬 코를 스윽하고 닦았다.


한 40분 걸은 것 같다. 요즘은 산책을 자주 한다.


 엊그제인가 어제인가 엄마가 전화했다. 작업은 잘 돼가냐고 물었다.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거 해서 얼마나 돈 벌 수 있냐고 물었다. 난 돈 벌려면 책 쓰는 시간에 차라리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돈 벌려고 했으면 이 짓 왜 하겠냐고 했다. 지금까지 내가 들은 시간과 노력을 포함한다면 시간당 1,000원도 안 되는 돈일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마치 내가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시험해 보는 듯했다. 그리고 기대를 가지며 대박이 날지도 모른다고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난 결코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섣부른 기대는 오히려 절망과 좌절이 되어 돌아올 때가 많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때 받은 절망과 좌절은 기대보다 곱절로 클 것이다.



 

12월이다. 올해를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실패고 다른 하나는 기회다. 회사에서 잘렸다. 백수가 되었고, 내가 가진 불안과 막막함은 배가 되어 찾아왔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그리고 자주 가만히 있었고, 굴 속으로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밖을 나가지도 못하니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냈다. 집 속에서 난 침대에 누울지 책상에 앉을지를 항상 고민했다. 편함과 조금 덜 편함 사이에서 항상 갈등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기회가 찾아왔다. 올해 행복하고 좋았던 것은 바로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것 말고는 없는 것 같다. 가끔 친구들과 놀러 갈 때나 부산 갈 때 빼곤 항상 불행했고, 불안했다. 친구들과 놀 때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마음 한편에는 내가 지금 이렇게 놀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없어졌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써 올릴 때만큼은 온전히 즐겁고 행복했다. 모르는 사람이 내 글을 읽어 준다는 게 신기했고, 댓글까지 달리고 구독자 수가 올라가는 걸 보면 희망적이었다.


 올해는 그랬다. 작년엔 은행과 편의점에서 일하느라 한 해가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작년이 올해보다 더 힘들었을 텐데 체감상 올해도 작년 못지않게 힘들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힘이 들어도 그만한 보상이나 보람이 있으면 좋지만 나에겐 오히려 힘든 만큼 곱절로 더 불안했고, 불행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걸으며 내가 가장 행복할 것 같은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망상을 떨쳐 버리니 어느새 카페 앞이다. 그런데 정기휴일이었다. 그래서 원래 가던 곳이 아닌 다른 카페를 갔다. 1,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11,500원짜리 커피와 파이를 먹고 있다. 오늘 지출은 이걸로 끝.


집 근처 있는 카페에서 샀는데 파이 맛있더라 안에 소고기도 들었음!


 그래도 올해는 책을 만들 거니까 작년보단 그래도 좀 괜찮지 않나 생각해 본다. 뭐 그게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이 있을진 모르지만, 엄마 말처럼 돈이나 벌릴진 모르지만 안되면 뭐 편의점 알바를 하든 다른 비정규직을 구하던지 해야겠지. 내년엔 조금 덜 불행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행복할 것 같진 않을 테니까. 그냥 코로나나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코로나 덕분인지 몰라도 이번 달 카드값이 확 줄은 건 좋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 에세이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